이재봉 (원광대학교 정치외교학 교수)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의 모순

한반도 분단 70주년이 되는 2015년 현재 남한의 통일정책은 1991년 노태우 정부 때 만들어지고 1994년 김영삼 정부 때 조금 고쳐진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이라는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 이어 보수적인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1단계로 화해협력을 통한 공존공영을 이루고, 2단계로 2정부 2체제의 남북연합을 거쳐, 3단계로 자유와 민주가 보장되는 완전통일을 달성한다는 내용이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을 바탕으로 남북 사이에 적대적 관계를 끝내고 화해와 협력을 지향하되, 반세기 가까이 분단된 채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통일을 추구하자는 취지였다. 갑자기 또는 한꺼번에 국토와 체제 등 모든 것을 하나로 통합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이다.

1994년 당시 북한은 이를 거부하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흡수통일’ 전략이라는 이유였다. 남한 정부는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지만, 마지막 단계의 ‘자유와 민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주장이 맞다. 마지막 단계에서 ‘자유와 민주가 보장되는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것은 남한의 체제로 통합하겠다는 뜻이니 궁극적으로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것 아닌가.

북한은 1960년대부터 연방제 통일을 주장해왔다. 남과 북이 안으로는 지방정부로서 각각 자본주의 체제와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되 밖으로는 하나의 국가를 이루자는 내용이다. 1960년대엔 북한이 정치나 경제 또는 군사와 외교 등 모든 분야에서 남한보다 앞섰기 때문에 남한의 체제를 보장해주겠다며 ‘공세적 연방’을 제안했는데, 1990년대부터는 남북의 처지가 완전히 역전된 상황에서 남한에게 흡수당하지 않겠다며 ‘수세적 연방’을 주장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남한의 통일방안 2단계인 연합제와 북한의 연방제 방안이 서로 공통점이 있으니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기로 합의했다. 남한이 제안한 연합제는 남북이 각각 서로 다른 체제와 정부를 유지하며 협력관계를 발전시키는 국가연합의 형태로 두 국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북한이 제안한 연방제는 남북이 대내적으로는 각각 서로 다른 체제와 정부를 유지하되 대외적으로는 중앙정부 또는 연방정부를 만들어 하나의 국가가 되는 것이다. 남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지켜야 하고, 북한은 어떠한 경우에도 사회주의를 포기할 수 없다면, 두 체제를 평화적으로 통합할 수 있는 방안이 있겠는가. 없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이 나오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남한의 보수 세력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북한은 타도의 대상이지 화해와 협력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과 화해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주장 자체를 이른바 ‘친북’이나 ‘종북’으로 매도한다. 보수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가 6.15 남북 공동선언을 인정하지 않는 배경이다.

여기서 통일정책과 대북정책의 모순이 생긴다. 앞에서 얘기했듯, 남한의 통일정책 1단계는 화해협력을 통해 공존공영을 이루는 것인데, 이명박-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기본은 북한을 ‘주적’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주적’으로 간주하고 ‘친북’이나 ‘종북’을 처벌하면서 어떻게 화해협력을 통한 평화통일을 지향할 수 있는가. 평화통일을 지향하자는 통일정책과 북한을 주적으로 삼는 대북정책은 전혀 어울릴 수 없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다. 한 마디로 남북 사이에 교류협력과 신뢰구축을 통해 통일 기반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인도적 문제를 지속적으로 해결할 것을 추구하며, 대화 창구를 구축하고, 기존 합의정신을 실천하며, 호혜적 교류협력을 확대하고 심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무장지대 (DMZ)에 평화공원을 조성하고,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며, 동북아의 지속가능한 평화와 발전을 추구한다는 사항도 들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월 기자회견을 통해 “통일은 대박”이라고 선언했다. 평화통일은 대박이지만 흡수통일은 쪽박이라는 우려나 비판에 북한을 흡수의 대상이 아닌 협력의 대상으로 간주하겠다고 강조했다. 2014년 3월엔 독일을 방문해서는 이른바 ‘드레스덴 제안’을 내놓았다. 북한에 인도적 지원을 하며 이산가족 상봉을 정례화하고, ‘민생 인프라’를 구축해 북한에 ‘복합농촌단지’를 조성하며 남북 간 신뢰 축적에 따라 보다 큰 규모의 경제협력을 하고, 북한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며 북한 지하자원을 개발한다는 등의 내용이다. 참고로, 외교부는 지난 3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와 드레스덴 구상 등에 대해 박 대통령이 취임하기 오래 전부터 “치밀하게 전략적인 토론을 거쳐 설계된 비전이자 국가 대전략”이라고 했다.

통일부는 올해 광복 및 분단 70주년을 맞는 2015년을 ‘한반도 통일시대 개막의 해’로 설정하여, 실질적으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해 ‘평화통일 기반 구축법’을 만들기로 했다. 남북 당국 간 대화를 통해 이산가족,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 등 인도적 문제 해결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광복 70주년 남북공동 기념위원회’를 구성해 공동 기념행사를 개최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나아가 서울에서 신의주와 나진까지의 한반도 종단열차 2개 노선을 올해 안에 운행하는 방안도 구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나아가 지난 4월 ‘2015년도 남북관계 발전 시행계획’을 국회에 보고했다. 통일부가 관계부처와 함께 작성하고 남북관계 전문가 등의 의견을 수렴하여 남북관계발전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마련한 것이라고 한다. 광복 70주년 남북공동행사, 통일박람회 2015, 평화통일상 제정, 한반도 국토개발 마스터플랜 수립, 공공부문 통일인력 양성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렇듯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인 ‘햇볕정책’보다 더 진전된 구체적 방안으로 포장되어 있다. 이미 통일의 문턱에 와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대통령을 비롯해 정책 담당자들이 조금이라도 진정으로 실천할 의지를 지니고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정책을 펼치겠다는 순서 또는 조건이 문제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는 속된 말로 북한에 퍼주면서 북한의 변화를 이끌겠다고 했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야 퍼주겠다는 것 아닌가.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우리 안보의 최대 위협이라며 세계 최대 규모 최장기간의 한미합동 군사훈련을 벌여왔다. 한미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을 넘어 일본까지 끌어들여 한미일 대북 공조를 강화하려고 한다. 게다가 남한은 미국의 핵우산을 제공받는 한편 핵무기를 잔뜩 실은 미국 잠수함이나 항공모함이 동해와 서해를 수시로 들락거리고 있다. 이런 터에 북한이 ‘무조건’ 그리고 ‘먼저’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을까. 박근혜 정부의 빛 좋은 대북정책이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핵심은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북한을 압박해 체제를 무너뜨리고 흡수통일을 성취한다는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워 남북관계를 발전시키겠다고 하면서, 속으로는 북한 체제 붕괴를 통한 흡수통일 전략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2014년 1월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이 ‘2015년 자유 대한민국 체제로의 조국통일”을 외친 배경이요, 2015년 3월 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비합의 통일’이나 ‘체제 통일’을 준비하는 부서가 있다고 밝힌 배경 아니겠는가. 아울러 2014년 초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서부터 2015년 초 통일부의 업무 보고와 통일준비위원회 설치 및 정종욱 부위원장의 발표에 이르기까지 북한이 조금이라도 호응하기는커녕 “반민족, 반통일적 대결 각본”이라고 격렬하게 비난하는 이유일 것이다.

북한 붕괴 및 흡수통일에 관해

나는 1990년대부터 북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은 가능성도 낮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해왔다. 북한이 무너질 것 같지 않고, 붕괴되더라도 남한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지 않으며, 흡수통일 되더라도 대박보다 쪽박이 되기 쉬우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1990년대 초부터 끈질긴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 붕괴론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첫째, 1980년대 말부터 동유럽 사회주의체제가 몰락하면서 1990년 동독이 무너지고 서독에 흡수되자,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동독보다 못한 북한도 머지않아 무너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둘째, 1994년 김일성이 죽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50년 동안 통치해온 지도자가 사라졌으니 북한 체제도 곧 사라질 것이라는 얘기가 떠돌았다.

셋째, 1995-96년 북한 식량난이 세상에 알려지고 굶어죽는 사람들이 속출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곧 식량폭동이 일어나 무너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 무렵 미국의회에서는 “북한 붕괴는 가능성의 문제가 아니라 시기와 방법의 문제일 뿐”이라는 증언이 나왔고, 이를 받아 남한 학계와 언론계 일각에서는 “북한은 지금 붕괴되고 있는 중”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넷째, 1997년 평양의 지식인들과 외교관들까지 탈북 대열에 합류하는 가운데 주체사상을 다듬었다는 황장엽의 망명은 마르크스가 공산주의체제를 탈출한 것과 마찬가지라며 주체사상에 의해 지탱되는 북한이 더 이상 버틸 수 있겠느냐는 전망을 낳게 했다. 그 때 김영삼은 남북 사이에 체제경쟁이 끝났다고 선언하며, “통일이 예기치 않은 순간에 갑자기 닥쳐올 수도 있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다섯째, 2008년부터 김정일의 건강 이상설이 퍼지면서 10여년 만에 다시 북한 붕괴론이 조성되기 시작했다. 2010년 이명박이 “통일은 도둑같이 올 것”이라며 뜬금없이 ‘통일세’를 언급했고 통일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통일 항아리’ 사업도 전개했다. 역시 북한 붕괴를 내다본 것이었다.

여섯째, 김정일 2011년 12월 죽고 젊은 김정은이 최고통치자가 된 뒤 2013년 12월 자신의 고모부이자 최고 실세였던 장성택을 공개적으로 처형하자 북한 사회의 불안과 동요에 따라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주장이 다시 나왔다. 이 무렵 박근혜는 ‘통일 대박론’을 외쳤고, 남재준은 “자유민주주의로의 통일”을 자신했으며, 미국과 남한 군부는 ‘1-3월 북한 도발설’을 흘리며 군사훈련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던 것이다.

북한 붕괴론은 북한 상황에 대한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에 의한 예상이 아니라, 북한은 망해야 한다는 적개심이나 증오심에 바탕을 둔 희망사항이었던 셈이다. 북한 붕괴론은 대개 미국과 남한의 정보나 국방 분야 책임자들이 그들의 밥줄을 지키기 위해 퍼뜨리는 듯하다. 냉전 종식 이후 러시아의 군사 위협이 줄어들면서, 관련 부서들의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예산 삭감을 막기 위해 북한 붕괴론을 이용해 왔다는 뜻이다. 북한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면 남침 가능성이 높아지고, 전쟁이 일어나면 정보국이나 국방부의 예산이 늘거나 최소한 줄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3-4월 무렵 의회에서 예산을 심의하는데, 이에 앞서 청문회를 열어 관련부서 책임자들의 증언을 듣는다는 사실도 참고하기 바란다.

그런데 북한 체제나 국가가 무너지게 되더라도 남한에 고이 흡수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 때문이다. 북한이 붕괴 위기에 맞닥뜨리면 미국과 남한은 이른바 ‘북한 급변사태 대비계획’을 가동해 북한을 점령하려 하겠지만, 중국이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까. 미국은 북한 핵무기의 안전한 관리를 구실로 그리고 남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이유로 북한 점령의 명분을 내세우겠지만, 중국은 안보와 경제를 이유로 북한에 먼저 들어갈 것이다. 약 1500km의 국경을 마주하며 북한 구석구석에 엄청난 투자를 해놓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를 세운지 1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1950년 세계 최강 미국에 맞서 한국전쟁에 개입했던 중국 아닌가.

북한이 무너질 정도의 위기에 처하면 군부 강경파의 결사항전에 따라 제 2의 한국전쟁 또는 최소한 게릴라투쟁이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100만이 넘는 병력과 첨단무기를 가지고 있는 북한 지배층이 남한에 순순히 투항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남한 지도자들이 통일 되면 북한 통치자들에게 응당한 처벌을 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하는 마당엔 더욱 그렇다.

만에 하나 북한이 붕괴 위기에 처해, 다시 만에 하나 중국이 개입하지 않거나 무력충돌이 빚어지지 않더라도, 남한이 흡수통일을 이룬다 한들 대박이 터질까. 우리는 혼란을 수습할 능력도 부족하고 탈북자들을 껴안을 의지도 부족하다. 예를 들어 3만 명에 가까운 탈북자 가운데 약 70%가 극심한 빈곤으로 정부의 기초생활 보호를 받고 있는데다, 남한 사람들의 편견과 차별 그리고 냉대 때문에 심리적 고통을 더 심하게 겪고 있다. 이들 가운데 거의 절반이 현재의 남한 생활에 큰 불만을 품고 있다. 캐나다나 호주 등 다른 나라로의 이민을 바라는 사람들도 많고, 합법적으로 북한에 돌아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렇듯 3만 명 안팎의 탈북자도 제대로 껴안지 못하는 터에 북한이 붕괴되면 생길 2천만여 명의 ‘빌어먹을 사람들’을 어떻게 수습하겠는가.

북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은 대박보다 쪽박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따라서 가능성이 크지 않은 북한 붕괴와 바람직하지 않은 흡수통일을 추구하며 중국과의 무력충돌까지 빚을 수 있는 대북 압박 정책은 바꿔야 한다.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만 진짜 대박이다.

* 이 글은 2015년 4월 29일 <통일을 준비하는 사람들> 초청으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강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 필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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