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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협력 강화'와 '신형 국제관계'[친절한 통일씨] '반둥회의 60주년 행사'에 투영된 국제정치
이광길 기자  |  gklee68@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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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4.27  15:3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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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오전 인도네시아 반둥 소재 사보이-호만호텔에서 '게둥 메르데카'까지 도보행진하는 각국 정상들. 중앙 시진핑 주석과 조코위 대통령. [사진 출처-반둥회의 60주년 기념행사 홈페이지]

지난 24일 오전 9시(현지시각), 인도네시아 반둥 소재 사보이-호만 호텔 앞에 나란히 선 조코 위도도(일명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각국 정상과 대표들이 '게둥 메르데카(독립청사)'까지 걸어서 이동했다. 60년 전 수카르노와 자와할랄 네루, 저우언라이, 가말 압둘 나세르 등이 걸었던 길을 되짚으며, 6일에 걸친 '아시아-아프리카회의(반둥회의) 60주년 기념행사'를 마무리한 것이다.

이번 행사에는 21명의 정상을 비롯한 91개국 대표들과 15개 업저버국 및 10개 국제기구 인사들이 참석했다. △반둥 메시지 2015, △'신(新) 아시아-아프리카 전략 파트너십(2005)' 진흥 선언, △팔레스타인 연대 선언 등 3개 문서를 채택했다. 매년 4월 24일을 '아시아-아프리카의 날', 반둥을 '아시아-아프리카 연대의 수도'로 선언하고, '아시아-아프리카 센터'를 건립하기로 했다.

참석자들의 면면과 채택된 문서들은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이 마주하고 있는 냉엄한 국제정치 환경을 잘 보여주고 있다.

조코위와 시진핑, 아베 신조, 김영남

올해 행사에서 가장 돋보였던 인사는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인도네시아 관계는 반둥회의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반둥회의 60주년 기념 행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1954년 4월말 실론(현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에서 모인 인도네시아, 인도, 파키스탄, 실론, 버마(현 미얀마) 정상들이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을 향해 '반제국주의-반식민주의' 기치 아래 미.소 어느 진영에도 기울지 않는 독자적 진로를 모색하자고 제안했다. 특히, 이들은 그해 '제네바 정치회의'에 중국의 참여를 지지했다. 제네바 회의 의제는 한반도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문제였다. 한반도 문제에서는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인도차이나 문제 관련해서는 '제네바 협정'이 나왔다. 1955년 반둥회의에 중국과 남.북 베트남이 초청되고, 남.북한이 배제된 배경이다.

중국이 반둥회의에 참가하기까지는 몇 단계의 사전작업이 있었다.

우선, 중국과 인도가 1954년 4월 '중국의 티베트 지역과 인도 사이의 통상.교통에 관한 중국-인도 협정'을 체결하며 티베트 문제를 봉합했다. 협정 서문에 '평화공존 5원칙'이 명기됐다. 다른 하나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관계 정상화 문제였다. 수카르노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953년 5월 베이징에 초대 대사를 파견했으며, 그해 12월 중국과 무역협정을 맺었다. 중국도 '모든 화교는 중국인'이라는 통념을 포기하고, 이중국적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인도네시아와의 관계를 정상화했다. 이에 따라, 저우언라이 총리가 세계인의 관심 속에 수카르노 대통령과 나란히 서게 된 것이다. 저우 총리가 주창한 '평화공존 5원칙'은 '반둥 10원칙'의 모태가 됐다. 그러나, 1965년 '친화교.친중' 성향의 인도네시아공산당(PKI)이 일으킨 '9.30 사태'를 인도네시아 군부가 유혈진압하고 수카르노 대통령이 실각하면서, 중국-인도네시아 관계도 냉각됐다. 이는 1962년 중국-인도 전쟁, 1965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실각과 더불어 반둥회의가 동력을 잃게 된 주요 원인이다. 중국-인도네시아 관계 정상화는 냉전이 끝난 1990년 9월에야 이뤄졌다. 2005년 4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등이 참여한 가운데 '반둥정신'의 소생을 추구하는 '50주년 행사'가 개최되고 '신 아시아-아프리카 전략 파트너십 선언'이 채택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주목을 받았다.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은 1955년 반둥회의에 과거 식민종주국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한 나라다. 다카사키 경제심의청(뒤에 경제기획청) 장관이 일본측 대표로 참석, 경제 협력에 집중했다. 이를 디딤돌로 삼아, 일본은 1956년 소련과 관계정상화를 이루고 유엔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이를 진두 지휘한 인물이 '55년 체제'의 주역이자, 일본 '자주외교'의 기수인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다.

아베 총리는 하토야마와 함께 '55년 체제'를 건설한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이다. '부상하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오바마 미 행정부가 추진하는 '아.태 재균형 전략'의 첨병을 자처하는 그는 미국 방문을 앞두고 리허설 무대로 '반둥회의 60주년 행사'를 택했다. 60년 전 하토야마 총리가 일본을 국제사회에 재등장시키는 장으로 반둥회의를 활용했다면, 아베 총리는 일본을 '보통국가화'하는 디딤돌로 '60주년 행사'를 이용한 것이다. 지난 22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동은 많은 뒷얘기를 낳았다.

   
▲ 반둥회의 참석차 인도네시아를 방문한 북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회담을 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도 눈길을 끌었다. 22∼23일 아시아-아프리카 정상회의 기간 중 그는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 쯔엉떤상 베트남 국가주석,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등과 만나 관계강화에 대해 협의했다. 김 위원장은 연설을 통해 '남남협조 심화'를 촉구했다. 25일자 <교도통신>은 북한이 아세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에 '아세안과의 공식 파트너십'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외교의 다각화'를 추구하고 있다. 한국을 대표해서는 외유성 남미 순방을 떠난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 황우여 부총리가 참석했다. 초청대상에서 배제됐던 60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지만, 60년이 흘러서도 남.북한은 여전히 주요 행위자가 아니라는 냉정한 현실을 확인한 셈이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의 불참도 눈에 띈다. 60년 전 주인공 중 한 명이 네루 인도 총리였다는 사실과 비교된다. 과거 네루 총리는 '세속주의'와 '중립주의' 이념, '반둥 10원칙'에 기초하여 비동맹운동을 주도했다. 반면, 모디 총리는 힌두민족주의 정당 출신으로, 올해 1월 '공화국의 날'에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을 주빈으로 초청했다.

'남남협력 강화'와 '신형 국제관계'

이번 행사의 성과를 압축한 '반둥 메시지 2015'의 키워드는 '남남협력 강화'와 '신형 국제관계'라고 할 수 있다. 이 메시지 7항은 "우리는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 사이의 연대의 표출이자, 남북협력의 대체가 아닌 보충으로서 남남협력의 중요성을 재확인한다"고 명시했다. 이어 "우리는 남남협력 강화가 자신의 전략적 이익에 복무하고, 신형 국제관계에 윈-윈 협력 특색을 반영함으로써 두 지역에 호혜적임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정치적 불안정과 빈곤, 세계은행(WB)와 국제통화기금(IMF)을 앞세운 미국과 유럽의 간섭에 시달리는 대다수 아시아-아프리카 나라들에게 '남남협력 강화'는 영원한 숙제다. 독일 일간지 <디 벨트>는 지난 23일자 분석기사를 통해, "반둥회의 기간 각국 대표단은 긴밀한 협력과 서방 종속에서 탈피 의지를 표현했"으나 청소년 교류 외에 아시아-아프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별다른 교류 프로그램도, 제도화된 경제협력의 틀도 없다고 지적했다. 행사 주최자들도 이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3일 정상회의 폐막연설에서 △2년 마다 유엔총회 계기에 아시아-아프리카 외교장관회의 개최, △기술협력과 역량구축 구상.프로그램을 통한 남남협력의 중요성 관련 합의가 도출됐다고 보고했다.

그는 전날 개막발언에서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촉구했다. 신흥경제국들에게 더 개방적이되, 이제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브레튼우즈체제'를 넘어설 것을 요구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아시아-아프리카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신형 국제관계'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구상에 일정하게 호응한 것으로 평가된다. <디 벨트>는 아프리카의 정상과 대표들이 이 회의장을 찾은 주요 이유는 아프리카 대륙과의 무역 규모가 2천억 달러에 이르는 중국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인도네시아는 일본과 '해양 분야 협력'을 강화하는 해양 포럼을 설립하기로 했다. '부상하는 중국'으로부터 과실을 취하면서, 한편으로는 견제 장치도 마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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