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 오후 원자력협정 가서명 직후 환영성명을 발표하는 리퍼트 미국 대사. [사진-통일뉴스 이광길 기자]

박노벽 외교부 원자력협력대사와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22일 '대한민국 정부와 미합중국 정부간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관한 협력협정(한미 원자력협정)'에 가서명함으로써 4년 6개월여에 걸친 개정협상이 타결됐다.

2010년 10월 개정협상 개시 이후, 한.미 양국은 11차례의 정례협상을 거쳤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농축.재처리의 길을 터놓아야 한다'는 입장에 따라 개정협상에 강한 의욕을 보였다. 지난 2013년 2월 한.미는 협정 유효기간을 2년 연장하면서 집중적인 협상을 벌여왔다.

협정의 주요 내용과 의미, 향후 절차를 살펴본다.

◇ 주요 내용 : 1974년 6월 발효된 현재의 협정을 대체하는 이번 협정은 전문과 본문 21개 조항, 그리고 협정의 구체적 이행에 관한 합의의사록과 고위급위원회에 관한 합의의사록 등 2개의 부속문서로 구성돼 있다.

한국이 개정협상에 임하면서 중점을 둔 분야는 △사용후핵연료의 효율적 관리,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 수출 증진 등이다.

특히, 한국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포화상태에 이른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였다.

외교부 당국자는 "사용후핵연료 핵폐기물 처리에는 중간 저장과 재활용/재처리 기술 적용, 영구 처분, 프랑스 등 외국 재처리 시설에 위탁하는 등 다양한 방식의 처리를 원활하게 할 근거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재활용/재처리 기술'과 관련해서는 "파이로프로세싱(Pyro Processing, 건식처리)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 비확산전문가들은 건식처리 과정에서 핵물질이 생산될 수 있다고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확산 저항성이 없다'는 것이다.

미래에 한국이 추진할 가능성이 있는 건식처리 활동에 대해서는 한미 고위급위원회에서 합의를 거치도록 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가 2011년부터 공동연구 중인 파이로프로세싱의 경우, 양국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기준과 절차를 적용해서 협의하고 최종 합의를 거치는 구체적인 추진경로(pathway)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기술 개발과 관련하여, 한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연구시설에서 미국산 사용후핵연료를 이용한 '조사후시험(Post-Irradiation Examination)', '전해환원(Electro-Reduction)' 등 형상.내용 변경 활동을 할 때, 미국의 사전 허가절차가 필요 없도록 '장기 동의'를 받았다.

조사후시험은 사용후핵연료 등 방사성 물질의 특성을 확인해 데이터를 내는 공정으로, 사용후핵연료 저장 등의 처리 방안을 모색하는 데 기초가 된다. 전해환원의 경우, 파이로프로세싱의 첫 단계 공정을 한국 내 시설에서 직접 연구한다는 의미가 있다. 이 단계에서는 핵분열성 물질이 생산되지 않아 확산 우려가 없다는 평가다.

'원전 연료의 안정적 공급' 관련, 국제 원전연료시장이 안정적이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연료 수급에 큰 지장이 없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예상치 못한 연료 수급 문제에 대비하여"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미국산 우라늄을 20% 미만으로 저농축하고자 할 때에는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합의 추진할수 있는 메커니즘도 도입했다.

한.미 원자력산업계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하는 원전수출 증진을 위해 "원자력 산업 협력을 강화하고 원자력 교역을 촉진하기 위한 별도의 조항"도 마련했다.

현행 협정(41년)과 달리, 신협정 유효기간은 20년으로 대폭 단축됐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 간 원자력 협정의 안정을 보장하는 동시에 우리 원자력계의 역동적인 발전 가능성과 우리의 장래 연구개발 추진계획, 장기적 원전연료 공급 전망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의미 : 외교부 당국자는 "3대 중점추진분야를 중심으로 국익을 확보하고 자율성도 확대되게 되었다"며, "과거의 일방적 의존과 통제체제에서 벗어나 현재의 당면한 여러가지 제약을 풀면서,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선진적.호혜적 신협정을 마련한 것"이라고 자평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부터 강조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확대할 수 있게 선진적이며 호혜적으로 개정"해야 한다는 표현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당초 목표로 설정했던 '농축.재처리' 확보와는 거리가 먼 결과라는 평가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정부는 '농축.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골드 스탠더드'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 '고위급위원회 합의를 통한 장래 건식처리 활동이나 저농축 추진 경로 마련' 등을 성과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 조항들이 미국이 '농축.재처리'를 허용했다는 뜻은 아니다. 상호 입장 차이가 분명한 사안에 대해 추후 논의 절차를 마련해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봉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현 협정이 미국에 의존적 일방적으로 돼 있다 불평등하다고 하는데, 모두 해소했다"고 말했다. "제약 요소를 풀어냈고, 갈 길을 충분히 열어뒀다"며 "그 실현을 위해 산업계, 과학계와 국민의 기대 열망을 담아 실현할 희망과 가능성을 가진 신 협정"이라고 강조했다.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는 가서명 직후 기자들과 만나 "협정은 두 나라 원자력 산업의 경쟁력을 지지하고 연료의 안정적 공급 관련 협력을 촉진하면서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다루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 원자력협정에서, 두 정부는 원자력 협력의 초석으로서 비확산 및 핵안보 공약을 강하게 재확인했다"고 강조했다.

◇ 향후 절차 : 이날 가서명 절차가 완료됨에 따라, 정부는 대통령 재가 이후 국회 비준 절차를 거치게 된다. 미국도 행정부 내 검토와 대통령 재가 이후 의회 승인절차를 거친다. 양원 연속회기 90일 이내 불승인공동결의안이 채택되지 않으면 자동 통과된다.

양국 내 절차가 끝나면 각서 교환을 통해 신 협정을 발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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