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법달 /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1995년 3월 1일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최창무 주교)를 발족시켜 통일문제 내지는 북한 신자들에 관한 관심을 강화시키는 한편 1995년 11월에 뉴욕에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인 최창무 주교가 조선천주교인협회 장재철(1999년부터 장재언으로 이름을 바꾸어 사용함) 위원장 일행을 공식 접촉하였다.

남북해외 천주교인 뉴욕세미나(95.10.27~11.2: 뉴욕)는 미주동포 사제 및 신자들의 주선으로 남북의 사제와 신자들이 분단 후 처음으로 함께 만나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대주제로 하여 ‘조국통일을 위한 천주교인들의 역할’과 ‘남 ․ 북 해외 천주교인의 연대강화 방한’에 관해 양측 대표 2명이 발표하여 토론하였다. 이 모임에는 남쪽에서 최창무 주교 등 7명, 북쪽에서 차성근(평양 장충성당회당) 등 5명, 해외동포 신자 5명이 참가하였는데, “민족의 화해와 일치로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민족공동으로 노력하며 천주교인들이 자주 만나 연대를 굳게 하자”는 결의를 다지기도 하였다.

1995년에 서울대교구에 민족화해위원회(이하 민화위)가 설치된 것은 남북한교회의 화해와 교류를 본궤도에 올려놓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민화위는 3년 후인 1998년 5월에 교구장을 대신한 최창무 주교 등 위원 7명이 북한 조선천주교인협회 중앙위원회의 초청으로 방북, 평양 장충성당에서 북한신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사를 집전했다. 최창무 주교 일행의 방북은 천주교의 공식적인 남북한교회간 교류 협력의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여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민화위는 신앙적 차원에서 민족화해에 대한 신자들의 의식을 계발하기 위해 민족화해학교를 개설하는 한편, 민족화해를 위한 미사를 매주 봉헌하였으며,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전개하여 대북선교의 가능성 모색과 함께 민족화해의 실천적 지평을 열어 나가는 이정표의 역할을 해오고 있다.

서울대교구와 민족화해위원회는 북한 선교를 수행하기 위해 △남한교회 내지는 서울대교구의 신자들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추구하려는 마음 자세의 확립하고 △북한동포들이 겪고 있는 각종 위기 상황에 대한 원조하며, △북한의 신자들과 직접 접촉을 통해서 사목적 견지에서 북한 신도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 등 세가지 방향에서의 사업원칙을 수립하여 진행해 나갔다.

이중 북한의 신자들과 직접 접촉을 통해서 사목적 견지에서 북한 신도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장충성당 신자 활동 지원 : 1995년 장충성당 신자들의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서 1십5만$에 상당하는 마이크로 버스 1대를 미국지역의 한국계 신자들을 통해서 보내주었다. 그리고 2000년 3월에 평양의 장충성당에 장재언 위원장에게 직접 3만불에 해당하는 버스 1대를 기증하였다.

△1995년 10월 말 미국 뉴저지의 Fort Lee에서 북한의 조선천주교인협회 장재철 위원장을 비롯한 4인을 만나서 함께 미사전례를 갖고 상호 교류 방안을 협의했다.

△1997년 6월 초 중국 北京에서 장재철 위원장 등을 만나서 상호교류와 방문 및 지원에 관한 문제들을 협의했고, 1998년 3월에는 1998년 부활절 미사를 서울의 명동성당과 평양의 장충성당에서 민족의 화해와 일치 그리고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미사를 봉헌하기로 하였고,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최창무 주교 이하 위원 8인의 평양방문을 진행시키기로 합의하였다.

△1998년 9월 북한의 조선아세아태평양평화위원회 인사들을 만나 2000년까지 옥수수 1만톤을 지원하기로 하였고, 식량 분배시 투명성 보장에 관한 합의와 더불어 투명성 확인을 위한 북한 방문에 합의하였다.(합의서 및 의향서 작성)

△2000년 3월 중국 북경에서 북한의 장재언 위원장 등을 만나서 식량 지원후 방북자 확대문제(각 교구 담당자로 확대)와 지원 지역 확대 문제에 대해서 건의하였고, 북측도 이에 긍정적인 답변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각 교구의 대북지원사업에 대한 단일 창구의 역할을 주교회의 민화위에서 주관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고지하였다.

△방문
-사목적 방문: 1998년 5월 15일부터 22일까지 최창무 주교를 비롯한 8인은 북한의 평양 방문하여 평양 장충성당에서 미사 집전과 북한 천주교 유적지 실태 파악, 북한 성당 복원 문제 협의, 지원 물품에 대한 분배 확인을 하였다.
-분배 확인을 위한 방문: 1998년 12월 12일부터 15일까지 이기헌 신부를 비롯한 3인은 지원 식량의 분배 확인을 위하여 북한의 평양을 방문하였다. 1998년 9월 중국 대련에서 북한의 아태위원회와 합의한 옥수수 1만톤 중 98년 11월 25일 인천항에서 보낸 옥수수 3,000톤 해당 분에 대한 분배를 확인하였고, 의료 지원을 위한 사전 답사, 교회의 서류대장, 컴퓨터, 정진석 대주교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임명장 사본을 전달하였다. 또한 민족화해위원회는 1999년 12월 4~11일, 2000년 7월 8~15일까지 민화위 관계자들은 지원 식량의 분배 확인을 위하여 북한의 평양을 방문하였다.

1999년도 주교회의 추계 정기총회에서는 주교회의 전국위원회인 북한선교위원회의 명칭을 민족화해위원회로 바꾸고, 담당 주교도 함흥교구장 서리인 이동호 아바스에서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인 강우일 주교로 교체하였다.

민화위와는 달리, 2001년 11월에 조선카톨릭교협회의 초청으로 방북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조선카톨릭교협회와 함께 한겨레성찬제, 안중근세미나 등을 평양에서 공동 개최하였다. 천주교의 경우, 민화위와 같은 공식적인 창구를 남북간에 개설하여 교류를 하는 가운데,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은 별도로 북한의 조선카톨릭교협회와 지속적인 교류를 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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