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새겨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소원벽돌. 벽돌 글귀가 정대협의 2015년 사업목표와 맞닿아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2015년은 광복 70주년, 분단 70년, 한.일협정 체결 50년이 되는 해이다. 광복, 분단은 모두 일제 침략과 연관 있기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도 떼어놓을 수 없다.

일제 침략의 과거사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채, 50년 전 체결된 한.일 협정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등을 제대로 다루지 않아 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임에도 한.일관계는 여전히 긴 터널 속이다.

여기에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과거사 일부로 인식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한국사회의 인식도 한 몫 한다. 하지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위안부 제도 범죄의 근원에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권위주의, 여성에 대한 폭력, 차별주의 등 구조적 모순이 있다.

또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삶 속에는 전쟁의 상처와 함께 연합국의 승전에 따른 불완전한 광복과 분단의 피해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은 단순한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 법적배상에 그칠 수 없다. 완전한 해결은 권위주의와 가부장제 타파, 남북통일, 전쟁을 반대하는 평화주의 정착이어야 한다.

"2015년 위안부 문제 해결, 근본 틀 바꾸기"

20여 년 동안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운동에 청춘을 바친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상임대표는 25일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정대협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한 한국사회, 나아가 국제사회의 기존 틀 바꾸기를 강조했다.

▲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는 25일 서울 성산동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정대협의 2015년 사업목표를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정대협은 올해 사업으로 △제13차 아시아연대회의, △한일협정 50년 대응활동, △광복.분단 70년 등 시기에 맞는 굵직한 행사를 준비 중이다. 그리고 유럽, 미국 등지에서 캠페인을 펼치고, UN, EU 등 국제무대에서의 여론조성 등 일상적인 활동도 병행한다.

하지만 올해 사업과 활동은 과거와 다르다는 것이 윤미향 대표의 설명이다. "우리 운동이 거대한 이상 사회를 실현하는 목소리도 맞지만, 무엇보다 현실적인 운동이어야 한다. 생존자와 함께 가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썩은 뿌리를 잘라내야 한다고 외쳐야 한다"라는 윤 대표의 말은 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한 사회 근본 틀 바꾸기로 풀이된다.

그래서 정대협이 올해 역점으로 두고 있는 사업 중 하나는 '나비기금'을 통한 국제사회의 전쟁구조 타파이다. 지금까지 정대협은 '나비기금'을 통해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피해여성,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여성 지원사업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단순한 지원이 아니라 '왜 전시하 여성폭력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가', '어떻게 여성폭력에 대한 고리를 끊어낼 것인가', '전쟁발생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라는 근본 질문에 파고들 예정이다.

윤 대표는 "2차대전 종전 70년과 맞물려서 본다면, 지금까지도 계속 전쟁이 발생하고 있다. '나비기금'을 통해서 국제 시스템에 우리가 어떻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왜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가. 위안부 문제가 구조적인 부분에서 발생했듯이, '나비기금'을 통해 구조를 들여다보자는 게 올해 운동 중 하나"라고 말했다.

▲ 정대협은 '나비기금' 사업을 통해 국제사회의 구조적 문제 해결을 꾀할 계획이다. 사진은 지난 17일 베트남을 방문, 빈딩성 인민위원회와 만나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 문제 해결 운동을 논의한 모습. [사진출처-정대협 홈페이지]

일례로 윤 대표를 비롯한 정대협 관계자들은 최근 베트남 현지를 방문, 베트남 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성폭력 피해여성을 만나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이들의 문제해결 운동지원 방안을 모색했다.

그리고 '평화비'를 '소녀상'이라고 부르는,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사회의 정치적 시각을 바꿀 생각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높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삶 속에서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바라보고, 차별주의와 권위주의, 분단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평화를 외면하는 한국사회의 틀을 바꾸겠다는 각오다.

"위안부 문제 해결이 곧 통일의 원년"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만들어 낸 복잡한 근본적 구조를 제대로 읽지 못한 한 통일부 당국자는 사석에서 "위안부 문제는 한.일간 문제인데, 왜 북한을 끌어들여야 하느냐"고 반문한 적이 있다. 물론, 정부 당국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시민들도 위안부 문제와 통일을 제대로 연관시키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정대협은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 간 연대를 중시해왔고, 실제 1990년대 북핵 위기 당시에도 정대협 관계자들이 평양에 들어가 위안부 운동연대를 논의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0년대 남북 여성계와 역사학계는 끊임없이 교류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힘을 다졌다.

그 이유는 바로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삶에 있다. 평양 출신인 길원옥 할머니는 일제에 의해 위안소로 끌려갔고 해방된 조국의 인천땅에 도착했지만 고향에 갈 수 없었다. 전쟁이 끝났다고 하지만 38선이 자신을 얽어맸다.

자발적으로 위안소 문턱을 넘은 것도 아닌 피해자가 또 다시 타의에 의해 고향에 갈 수없어 70년 동안 이중의 고통스러운 삶을 안아온 것. 그리고 분단은 일제 침략의 산물이자 한국전쟁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전쟁없는 평화, 곧 분단선을 끊어내는 통일이 바로 위안부 문제의 근본 해결이라는 인식이다.

▲ 2007년 5월 서울에서 열린 '8차 아시아연대회의'에 참석한 홍선옥 북 최고인민회의 부의장과 길원옥 할머니가 악수하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윤미향 대표는 "할머니들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은 뭘까. 일본정부에게 국가 책임 인정하고 사죄 배상을 통해서 보상받는 것도 되지만, 동시에 할머니들의 원상회복이란 끌려가기 이전 고향에서 단절된 삶을 편하게 왔다 갔다 통일이 되지 않더라도 남북을 오가면서 가족도 만나고 하는 그런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분단 70년 원상 회복조치의 원년이 되지않을까"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정대협은 오는 5월 열리는 '제13차 아시아연대회의'에 북측을 초청,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연대하는 행사 중심의 형식을 넘어 피해자들의 삶과 연관 지은 남북연대를 이끌어낼 생각이다.

"한.일 국장급 협의..여론조성으로 문제해결 나설 것"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한 한국사회, 국제사회의 근본 틀 바꾸기라는 거대담론에 대한 고민에도 일반인들은 당면한 한.일 국장급 협의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여기에 정대협은 여론조성활동을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정대협이 생각하는 한.일 국장급 협의의 결과는 일본 정부의 공식사죄, 법적 배상이다. 이는 정대협 창립 25년 동안 변함이 없다. 어떠한 정치적 타결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최근 미국 정부가 한.일 양국에 위안부 문제를 해결에 압력을 넣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한.미.일 동맹관계에서 과거사가 발목을 잡고 있는 형국을 미국 정부가 가만히 두고 볼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대협은 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한.일 국장급 협의체 틀은 정대협이 제기한 헌재의 위헌결정의 결과물이고, 미국 정부가 움직인다는 점은 정대협이 그 동안 활약한 미국, 유럽 등 의회 결의안 통과가 한 몫 했기 때문이다.

▲ 지난달 25일 열린 제1167차 일본군'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사진출처-정대협 홈페이지]

즉, 피해자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의 운동이 한.미.일 3국의 정치권을 움직였다는 성과를 부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미국의 압력을 통한 한.일 간 정치적 타결을 그대로 보고 있겠다는 것은 아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여론조성을 더욱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윤미향 대표는 "미국 정부가 압력을 넣는다고 해서 정치적인 타결이 아니라 여론을 이용할 것"이라며 "조금 더 현명한 국제여론이 필요하다. 극단적인 목소리보다 온건하면서 강렬한, 다시는 전쟁이 없기 위해서 이런 아픔을 겪지 않기 위해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잘해야 한다. 그런 전례를 남겨야 한다"면서 한.일 국장급 협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정대협 창립 25년, 사람이 희망이다"

2015년 11월 정대협은 창립 25년을 맞는다. 수많은 활동과 성과를 낸 정대협은 올해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열정을 바친 사람들에게 눈을 돌리려고 한다. '사람이 희망이다'라는 말처럼 이제 정대협도 사람을 통해 치열한 역사 속에서 한 호흡 길게 내쉬려고 한다.

▲ 윤미향 정대협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조정훈 기자]
윤 대표는 "지금까지 정대협 운동이 사건 중심으로 평가되고 정리됐다. 사건 중심으로 되니까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며 "얼마나 많은 여성이 심혈을 기울였는지 보이지 않았다. 위안부 문제를 한국사회 내 중요한 인권문제로 제기하면서 애쓴 노력. 사람을 찾아보자. 사람을 위로 올려보자는 취지로 25년을 형성해가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25주년 심포지엄도 사건과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땀을 기록해보려고 한다"며 "초기에 어떤 사람들이 어떤 운동을 하고 역사적 삶을 살았고, 이 사람들이 왜 위안부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느냐라는 사실 등을 담아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침내 해방을 이루다!"

이 밖에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 특별전(5월) △제3차 세계일본군'위안부' 기림일(8월)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20년(9월), △위안부 인권교육주간(12월) 계획도 올해 사업의 한 부분이다.

물론, 여기에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의 숨결이 담겨있다. '나비기금' 조성에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 몫하고, 동일본대지진 당시 모금 운동도 피해자들이 먼저 제안했듯이, 위안부 문제 해결을 통한 틀 바꾸기의 힘은 피해자들에게서 나온다.

이런 힘을 바탕으로 정대협은 '광복 70년을 해방의 원년, 분단 70년을 통일의 원년, 종전 70년을 평화의 원년'으로 만들 포부를 갖고 있다. 그래서 윤미향 대표는 "마침내 해방을 이루다!"를 올해 정대협 사업의 구호로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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