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8개월 간의 좌고우면 끝에 27일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참여 의사를 중국에 공식 통보했다.

여러 채널을 통해 끈질기게 한국 정부를 설득해왔던 중국 정부는 즉각 "환영한다"고 밝혔다. 반면, '지배구조의 모호성', '투명성 문제' 등을 제기하며 '불참'을 종용하던 미국 정부는 26일(현지시각) "그것은 그들의 결정"이라며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정부 당국자도 27일 "'어서 들어가세요' 하는 입장은 아니"라고 미국 분위기를 전했다.

미.중의 상반된 반응은 이 문제가 가진 국제정치적 함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AIIB 문제의 분수령이 된 지난 12일 영국의 참여 선언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13일 "국제금융체제의 거버넌스에 관해 영국이 중국 편을 든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17일 'AIIB가 21세기 미중간 권력이동의 신호'라고 평가했다. 17일자 <뉴욕타임스>도 미국이 주도하던 '1945년의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유럽 측의 관전평을 전했다.

27일자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현재 총 37개국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24일 방글라데시, 브루나이, 캄보디아, 중국, 인도, 카자흐스탄, 쿠웨이트, 라오스, 말레이시아, 몽골, 미얀마, 네팔, 오만, 파키스탄, 필리핀, 카타르, 싱가포르, 스리랑카, 태국,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등 21개국이 'AIIB 설립양해각서(MOU)'에 서명했다.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올해 1월 뉴질랜드, 몰디브, 사우디아라비아, 타지키스탄, 2월 요르단, 3월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스위스, 오스트리아, 호주, 터키, 한국이 참여 의사를 밝혔다.

일본을 제외하고, 대서양과 태평양 건너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이 줄줄이 중국 주도의 국제금융기구에 가입한 것이다.

AIIB가 공식 출범하기까지는 지배 구조와 의사결정 구조 등을 둘러싼 '예정 창립회원국' 간 집중적인 협상과 서명, 각국 국내 비준절차 등이 남아 있다. 정부 당국자는 "하반기 중"이라고, 공식 출범 시기를 예상했다.

AIIB 출범은 북한 인프라 개발에 추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1990년대 초반 수교협상 이후, 북.일 간에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을 통한 대북 인프라 투자 구상이 꾸준히 거론됐으나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 미.일이 주도하는 ADB가 대북 투자에 나서기 위해서는 '핵.납치 문제 진전'이라는 문턱을 넘어서야 하는 까닭이다.

중국이 주도하는 AIIB의 경우, ADB에 비해서는 대북 투자의 문턱이 낮을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은 지난해 말부터 '3차 핵실험' 이후 냉각된 관계를 복원하자는 신호를 북한에 보내고 있다. 지난 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신 동북진흥구상'의 일환으로, 북한 및 러시아 등 주변 나라와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대외개방 수준을 높이라고 지시한 바 있다. 

북한 내 철도.도로.항만, 노후화된 발전시설과 송.배전선 현대화 사업, 북.러 사이의 철도.가스관 연결 프로젝트, 다국적 프로젝트인 '두만강 유역 개발사업' 등이 AIIB의 투자 대상이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확정된 것은 아니나 'AIIB의 회원이 되려면 IBRD(국제부흥개발은행) 또는 ADB의 회원국이어야 한다'는 쪽으로 얘기 되고 있어 북한이 회원국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전했다. 또 "AIIB의 초점은 주로 아세안(동남아)과 서남아에 맞춰져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만 "회원국이 아니면 수혜를 못받는 것은 아니"라며, "AIIB 이사회 등에서 '북한이 특별한 대상이니 투자하자'고 결정하면 투자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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