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교보문고에서 느낀 씁쓸함

2014년 8월 어느 날, 교보문고에 들렀다. 서가 한 쪽 면을 장식한 책이 눈에 확 띄었다.

“THAAD(싸드)”

김진명 장편소설. 사드(종말단계 고고도 미사일 요격체계) 한국 배치에 대한 문제의식을 담은 작품이다.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우파 민족주의자로 불리는 작가가 장편소설로 사드문제를 수백 쪽을 써내고 있는 동안 대부분의 진보진영은 이에 대해 깊은 관심도, 지식도 없었다는 점 때문에. 소설 마지막 장면의 처연함이 자연스럽게 오버랩 되었다.

그로부터 1년도 안 되어 사드 한국 배치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은 연일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더니, 급기야 주한미군사령부가 한국에서 부지조사를 마쳤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기에 이르렀다. 미측 입장에서는 사실상 다 얘기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는 마당에 ‘요청이 없었기 때문에 협의도 없었고, 결정된 바도 없다’고 오리발을 내미는 박근혜 정부에 세게 한 방 먹인 것이다. 우리 정부 몰래 일방적으로 부지조사를 할 수는 없었을 테니, 이 말은 사실상 박근혜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폭로한 거나 다름없는 얘기다.

중국은 시진핑 주석을 필두로, 국방부장, 주한 대사, 외교부 부장조리 등이 총동원되어 사드 배치에 대해 명시적이고 강력한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중국 쪽 전문가는 “만약 한국이 미.일 주도의 MD(미사일방언 체계)에 가입하면 중국 인민해방군을 완전히 벼랑 끝으로 몰고 갈 것”이라며 “MD는 한.중 우호의 마지노선”이라고 주장한다.

박근혜 정부는 미.중 양국 사이에서 샌드위치 처지에 몰린 궁색한 입장을 ‘전략적 모호성’이라는 해괴한 논리로 포장하고 있다.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시간이 가기만 기다리면 문제가 해결되는가. 찢어진 우산을 들고 비 안 맞기를 기대하는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어제(17일)는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이 이에 반발하면서 ‘군사적 효용성’과 ‘국가안보 이익’을 고려해 판단할 것이라고 밝혔고, 같은 날 대니얼 러셀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한국과 한국 시민, 미국을 보호하기 위한 시스템을 고려할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한.미 당국이 찰떡공조를 과시하면서 ‘전략적 모호성’을 벗어던지고 사드 배치로 한 발짝 다가서는 형국이다.

북한 핑계로 중국 겨냥하는 사드

사드 한국 배치문제가 핵심적 안보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이 무기체계가 북한을 핑계로 하고 있지만 주로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한을 향해 발사되는 북한의 노동미사일을 잡기 위해 사드를 들여온다는 주장은 군사.기술적으로 타당성이 거의 없는 허구적 논리다.

사정거리 1000km가 넘는 노동미사일은 기본적으로 남한 공격용이 아니라 주일미군기지 등을 겨냥한 것이다. 사드 도입론자들의 주장처럼 북한이 사거리 1000km가 넘는 노동미사일을 발사각을 높여 발사하면 미사일의 비행시간이 길어져 상승단계에서 탐지와 요격이 쉽고 자세 제어가 어려우며 탄두의 명중률도 낮아진다.

사드체계는 레이더(AN/TPY-2)를 통해 중국 동북부나 북한 등에서 아태지역 미군기지나 미일 본토로 날아가는 탄도 미사일을 조기에 탐지해 미.일이 가지고 있는 요격체계를 통해 요격하기 위한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사드 레이더 체계가 전진배치용과 종말단계용으로 구분되며, 종말단계용은 탐지거리가 1000km 안팎이어서 대 중국용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탐지거리가 1000km만 되더라도 다렌, 베이징, 상하이 등지에 있는 중국 동북부의 중장거리 미사일 기지를 탐지할 수 있다.

더구나 종말단계용 레이더는 언제라도 탐지거리 2000km의 전진배치용으로 신속한 전환이 가능하여 중국 내륙 깊숙이 탐지할 수 있다. 따라서 전진배치용과 종말단계용을 구분하는 논리는 사드가 대 중국용이라는 비난을 피하려는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이 사드 한국 배치에 격렬히 반발하는 이유는 자국의 탄도미사일 능력이 무력화됨으로써 미국의 공격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동유럽 MD 구축에 강력히 반대하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럴 경우 중국은 사드가 배치된 주한미군 기지 등에 대한 타격 수단을 강화하게 될 것이다. 이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을 한층 높이고 최악의 경우 한반도가 중미 간 분쟁에 휘말려 참화를 입을 수도 있다는 걸 의미한다.

사드 한국 배치는 단지 하나의 무기체계를 들여오는 의미를 넘어선다. 미국 MD체계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사드체계를 들여오는 것과 함께 미국은 일본과 한국을 끌어들여 군사전략과 작전, 훈련과 무기체계에 이르기까지 MD공동작전을 추구하고 있다. 작년 말에 체결된 한.미.일 군사정보공유 약정은 중국이나 북에서 발사되는 탄도미사일 정보를 실시간으로 한.미.일이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사드 배치 문제가 일단락되면 곧 바로 미국 MD의 또 다른 핵심 요소이고 미.일이 공동 개발중인 스탠더드 미사일(SM-3) 도입이 가시화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한(미).일 물품및서비스상호제공협정 체결도 본격화될 것이다. 이는 북.중.러를 겨냥한 한.미.일 삼각MD의 완성, 나아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 구축이 구체화된다는 뜻이다. 이 같은 한.미.일 MD와 삼각동맹 구축은 미일의 대중국 포위전략에 한국이 구조적으로 편입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남북관계나 북미관계의 개선, 평화협정 체결과 통일, 동북아 평화안보체제의 구축은 요원한 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중 마늘 분쟁과는 차원이 다른

2000년 한중 마늘분쟁이 터졌다. 한국 마늘 농가의 피해를 우려한 정부가 중국산 냉동마늘과 초산조제 마늘의 관세율을 30%에서 최고 315%까지 대폭 올리자 중국이 한국산 휴대폰과 폴리에틸렌 수입 중단으로 보복조치에 나선 것이다. 결과는 사실상 한국의 백기투항.

2000년에 312억 달러이던 교역규모는 2014년에는 3천억 달러에 이르고, 중국인 관광객 수는 2000년의 44만여 명에서 2014년에는 600만 명을 넘어섰다. 한중 경제관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대중국 경제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자국 안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여 강력히 반대하는 사드를 한국이 들여오면 어찌될까. 중국 입장에서는 ‘돈은 중국에서 벌면서 미국에서 무기를 들여와 중국을 위협할 수 있느냐’는 항변이 나올 법도 하지 않은가.

그리고 사안이 중차대한 만큼 2000년의 마늘분쟁 때와는 차원이 다른 대응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중국이 만약 강력한 경제적 제재조치를 취한다면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되지 않을까. 정작 사드를 배치하는 미국은 이로 인해 이익을 취하는 반면 우리만 피를 보는 게 아닐까.

민족의 평화와 이익 지키는 평화행동을

한미 군사당국이 북핵 미사일 위협을 핑계로 사드를 들여오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그 위협이 근본적으로 해소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위협의 근원적 해소는 상호간의 군사적 신뢰구축과 군축, 평화협정, 남북 간의 통일이라는 총체적 과정을 통해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관련 당사국들은 이 방향으로 움직여왔는가. 결코 그렇게 말할 수 없다. 특히 한.미 당국은 북과의 대등한 협상을 통해 상호 위협을 해소하려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북의 일방적인 굴복을 요구해왔다. 오히려 군사.경제.정치외교적 압력을 통해 북의 날카로운 반발을 야기함으로써 위기를 키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핵 미사일 위협’이 커져야만 미국의 동북아 군사패권 유지와 사드 등 미국 무기 판매에 유리하므로. 한미당국이 한반도 비핵화와 대북 적대정책 폐기를 연동하여 단계적으로 해결하는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해법을 한사코 외면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드 한국 배치는 미국 패권주의자와 군산복합체, 한국 고위 군부 등 친미사대주의자들에게는 이익일지언정, 우리 국가이익과 민족이익, 주권과 평화에는 전적으로 반하는 백해무익한 일이다. 지금 우리는 동북아 안보지형의 근본적 전환기 속에서 우리 민족의 이익과 평화를 지킬 수 있느냐, 또다시 외세의 침탈에 우리 민족의 운명을 맡기느냐의 역사적 기로에 서 있다.

이제 김진명 소설의 주인공처럼 세종대왕상 앞에서 외로이 1인 시위를 벌일 때는 지났다. 사드 한국 배치가 소설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서 목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또한 사드 배치가 나라와 민족의 장래를 망치는 일이라는 각성이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사드 한국 배치를 반대하는 평화행동이 전국 각지로 퍼지고 있다. 명청 교체기와 구한말의 치욕과 설움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각성된 민중의 평화행동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평화.통일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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