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욱 통일준비위원회 민간 부위원장이 10일 ROTC 중앙회 강연에서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외에 흡수통일에 대비한 통일준비 활동을 공개했다는 <중앙일보>의 보도 후폭풍이 거세다.
통일준비위원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공식입장인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과 '점진통일'외에 '비합의 방식의 통일', '체제통일' 등에 대한 정부차원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으며, 이를 공론화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최근 잇따라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도에 따르면, 정 부위원장은 강연에서 "정부내 다른 조직에서도 체제통일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며, "체제·흡수통일은 하기 싫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체제 흡수방식의 통일이 진행될 경우 "북한의 엘리트 계층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정부는 구체적으로 대책을 가지고 있다"며 "북한 엘리트 숫자도 상당하고 노동당원 등 성분이 다양하기 때문에 구분해서 처리해야 할 것"이라고 세부 지침에 해당할만한 발언도 서슴없이 한 것으로 전해졌다.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미리 숙고한 결과가 아니고서는 나올 수 없는 발언으로 보인다.
통일준비위원회는 11일 청와대와 통일부 출입기자단에 해명자료를 배포해 "정부는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부입장에 따라 통일준비위원회도 통일과정과 통합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사항 등을 연구해 오고 있"다고 밝혔다.
또 "해당 강연에서도 정 부위원장은 이러한 점을 설명하면서, 통일비용 측면에서도 합의를 통한 통일이 훨씬 부담이 적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고 피해나갔다.
이어서 정부가 흡수통일 준비팀을 만들었다는 제하의 보도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비합의 통일이나 흡수통일에 대한 팀이 통일준비위원회에 있다는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강력 부인했다.
강연내용은 인정하고 강조점과 뉘앙스는 다른 것이었다고 해명하면서 확인하기 어려운 '준비팀'의 존재는 강하게 부인한 것이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도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합의에 의한 평화통일, 점진통일을 추구한다. 그리고 그와 관련해서 통일과 관련한 여러 가지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에 나섰다.
"그러나 그 연구 내용이 어떤 것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확인해 주기 어렵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와 관련,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와 통일연구원이 지난달 25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북한의 변화와 통일준비'를 주제로 개최한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토론회가 뒤늦게 주목받고 있다.
박근혜 정부 3년차에 접어드는 날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최진욱 통일연구원장과 박찬봉 민주평통자문회의 사무처장의 사회로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와 김진하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소장이 각각 '점진적 변화의 전망과 통일준비'와 '전반적 변화의 전망과 통일준비'에 대해 발제를 했다.
김진하 소장은 이날 발표에서 북 체제의 점진적 변화와 합의 통일과정이 바람직하지만 "경험적으로 어떤 체제의 성격변화를 외부에서 유인하기는 지난하다는 점과 위기구조가 영속화된 북한체제의 구조적 모순과 위기를 감안할 때, 비상대비책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점진적 이행 전략과 자신이 '플랜 B'로 명명한 '전반적 변화'를 상호보완적 계획으로 병립해야 하며, 주된 계획인 점진적 변화의 실천을 위해 제도적·정책적 기제는 '플랜 B' 적용이 필요한 상항에서 전용될 수 있도록 호환적으로 설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날 토론회 역시 정부의 공식적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그리고 있는 화해·협력단계와 남북연합단계를 거쳐 통일국가 완성이라는 경로와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 공개적으로 다뤄졌다는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더욱이 각각 헌법기관과 정부출연연구소의 지위를 갖고 있는 민주평통과 통일연구원이 북의 전면적 변화에 맞춰 토론회를 주최한 것도 전에 없던 일이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이점을 의식해서인지 당시 두 기관의 원장과 사무처장이 사회를 보고 주요 주제 중의 하나인 오후 세션의 발제를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소장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료집에는 '이 자료집에 수록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및 통일연구원의 견해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라는 문구를 써넣어 참석자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