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대 / 동국대 북한학 박사수료


북한체제에서 지도자의 부재가 어떤 것인지는 반드시 북한 주민이 아니더라도 짐작할 수 있다. 1994년 7월 8일, 한반도의 절반을 강력한 권한으로 통치했던 김일성의 죽음은 당시 우리 사회에도 큰 충격이었다. 전쟁이 일어날 줄 알았다. 북한이라는 체제가 어떠한 내외부의 움직임에 의해 붕괴될 줄 알았다. 수많은 북한 주민이 남쪽으로, 혹은 중국으로, 해외로 넘어갈 줄 알았다. 필자는 당시 기억을 더듬어보면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사로 잡혀 있었던 것 같다. TV에 나왔던 평양 시민들이 보여준 ‘울음바다’를 많은 분이 기억할 것이다.

사람들은 경험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공포와 불안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1994년 7월 8일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2011년 12월, 두 번째 지도자 김정일의 사망에 대해 사람들은 이전보다 덤덤하게 반응했다. 오히려 죽음 자체보다는 세 번째 지도자의 통치력이 얼마만큼 가능한지가 논란거리였다. 통상 9월에 열리는 ‘제4차 평양영화축전’을 두 달 앞두고 벌어진 국가 지도자의 급사는 영화제 자체를 연기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4차 평양영화축전’은 1994년 9월 26일부터 10월 4일까지 평양에서 개최하였다. 지도자에 대한 추모의 열기가 채 식지도 않을 무렵이었다. 영화제를 준비한 ‘축전조직위원회’의 의도가 궁금해졌다. 영화제를 보름 정도 남기고 보도된 기사, 개·폐막식 관련 기사 내용을 종합해 보면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조직위원회는 김일성의 관심과 지도로 영화제가 ‘현명하게’ 성장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했다. 그렇지만 그런 지도자는 죽음을 맞았다. 영화제 참석자들은 ‘평양영화축전’ 참가뿐만 아니라 영화제 설립에 기여한 북한 지도자에 대해 ‘경의’를 표할 의무를 져야만 했다. ‘제4차 평양영화축전’ 폐막식에서 방글라데시 대표자의 축하 연설은 영화제 개최 의도를 함축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김일성은 비록 서거했지만, 그는 영원히 자기들(영화제 참가자들)의 심장 속에 살아있다. 이번 영화제가 국제적인 행사로 성대히 진행한 것은 김정일의 지도 아래 슬픔을 힘과 용기로 바꿔 나가는 조선 인민의 억센 의지를 과시한 것이다.”

결국, 조직위원회는 영화제를 통해 사망한 지도자를 제3세계 국가들 중 우두머리 반열에 올리고, 추모의 기운을 국제적으로 확장하고자 했다. 영화제의 성공은 지도자의 성공적 교체를 의미했다. 차기 지도자인 김정일은 ‘친애하는’ 대상이 아닌 ‘존경하는’ 대상으로 승격했다. 한편, 영화제의 성공은 국가적 슬픔을 용기로 전환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끝으로 영화제 시상식에서는 의외의 결과가 나왔다. 세 번의 영화제가 개최되는 동안 북한이 제작한 영화는 시상식의 높은 자리에 위치했다. 2차 평양(국제)영화제에서는 기록영화 부문에 <통일의 꽃>이, 3차 평양(국제)영화제에서는 예술영화 부문에 <민족과 운명 제1, 2부>가 ‘횃불 금상’을 차지했다. 4차 평양(국제)영화제에서는 예술영화 부문에서 <고마운 처녀>의 김경애가 연기상을, 기록영화 부문에서 <평양의 사계절>이 촬영상을 받는 데 그쳤다.

▲ 영화 <고마운 처녀>의 한 장면

 

▲ 영화 <고마운 처녀>의 한 장면

북한은 90년대 들어 젊은 세대의 사상을 강화화기 위해 ‘공산주의 미풍’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많이 제작했는데 <고마운 처녀>도 그 중 하나였다. <평양의 사계절>은 제목 그대로 평양의 여러 건축물, 행사 등을 사계절로 나누어 보여주면서 도시 평양을 선전하는 영화이다.

■ 예술영화 부문

시상명

3차 평양(국제)영화제(1992)

4차 평양(국제)영화제(1994)

횃불 금상

민족과 운명 제1, 2부(북한)

갈밭(베트남)

횃불 은상

레오 쏘니보이(스위스)

다시 돌아가다(인도)

횃불 동상

거지와 거만한 자들(이집트)

산골마을 교원들(중국)

연기상

남자: 13호 주택(이란)의 주인공 역 알리 레자 캄쎄

여자: 옷(인도)의 주인공 역 샤봐나 아즈마

남자: 신부(이란)의 주인공 역 아볼파를 푸르 아라브

여자: 고마운 처녀(북한)의 김경애

영화문학상

자식들(베트남)

로버트 여인(우즈베키스탄)

연출상

택시(인도네시아)

천사에게 보내는 편지(인도네시아)

촬영상

광증(중국)

달콤한 거짓말(쿠바)

 

■ 기록영화 부문

부문

시상명

3차 평양(국제)영화제(1992)

4차 평양(국제)영화제(1994)

횃불 금상

연기에 휩싸인 도시(폴란드)

허수아비(이집트)

횃불 은상

총련이 걸어온 영광의 길(조총련)

총련이 걸어온 영광의 길(조총련)

횃불 동상

생존(이집트)

물 문제 해결을 위하여(에티오피아)

구성상

-

그들에게 일자리를 준다(탄자니아)

영화문학상

히에나(세네갈)

-

연출상

총련이 걸어온 영광의 길(조총련)

우아한 생활(말레이시아)

촬영상

그날은 오리라(루마니아)

평양의 사계절(북한)


다음 시간에는 1996년 9월 16일부터 9월 24일까지 열린 제5차 평양(국제)영화제를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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