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에서 남.북.해외 민간이 역사상 처음으로 합법적인 공동기구로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위원회’(이하 6.15민족공동위원회)를 출범시킨 지 10년을 맞았다. 6.15남측위원회와 6.15북측위원회, 6.15해외측위원회는 4일 10주년 공동결의문을 통해 “조국광복 70돌과 6.15공동선언 발표 15돌이 되는 뜻깊은 올해를 자주 통일의 대통로를 여는 역사적 해로 빛내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1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의 상황은 180도 달라져 있다. 발족 당시에는 남북을 오가며 진행된 6.15공동행사와 8.15공동행사가 당국대표단까지 참여하는 전 민족적 축전으로 치러졌고, 북측 대표단의 현충원 방문과, 남측 대표단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면담을 통한 경색정국 돌파 등 새로운 역사를 써나갔다. 민간통일운동이 통일의 과정에서 당당한 한 축을 담당하고 그 중심에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우뚝 서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2008년 금강산에서 6.15공동행사가 마지막으로 열린 이후 박근혜 정부 2년차인 지난해까지 6.15건 8.15건 제대로 된 공동행사 한번 열리지 못했다. 더구나 2010년 5.24조치 이후로는 아예 자잘한 교류마저 완전히 끊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존재하고는 있지만 당국의 ‘불허 장벽’에 가로막혀 사실상 유명무실화 되고 만 것이다.

6.15남.북.해외측위원회는 공동결의문에서 “오늘 내외의 분열세력들에 의해 남북선언들이 부정되고 그의 소중한 결실들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으며 온 겨레가 힘을 합쳐 열어놓은 하늘길, 땅길, 바다길이 모두 막히고 격폐와 대결의 장벽이 날로 높아가는 속에 전쟁의 불안은 더욱 더 짙어가고 있다”고 현 상황을 진단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15남측위원회는 물론 6.15민족공동위원회가 남측 당국의 ‘불허 장벽’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력화된 점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공동행사 중심으로, 그것도 당국의 허가 하에서만 진행할 수 있는 운동방식이 갖는 한계에 스스로 갇혀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출범 당시부터 해외측 위원장 선출 문제로 홍역을 치렀고, 이후에도 해외위원회 문제로 내연된 갈등도 아쉬운 대목이다.

어쨌든 6.15남.북.해외측위원회가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15돌과 조국해방 70돌에 남과 북, 해외의 각계층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공동의 통일대축전들을 성대히 개최하고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언론인, 종교인을 비롯한 계층별, 부문별, 지역별 단체들 사이의 왕래와 접촉, 통일회합과 협력교류를 활발히 벌여 나갈 것”이라고 낙관적 목표를 제시한데 대해 환영하며 적극 지지한다.

문제는 실천이다. 높은 현실의 장벽을 우회하거나 돌파해내는 지혜와 결집된 힘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답은 6.15남측위원회와 6.15민족공동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6.15남측위원회의 경우, 종교계도 시민운동도, 통일운동도 모두 망라돼 있다. 산하조직으로 우리 사회 주요 각 부문은 물론 광역지역별 본부들도 포괄하고 있다. 6.15남측위원회가 자신의 조직적 역량을 십분 가동하는 방법 외에 어느 누구도 대신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을 것이다.

정부는 얄궂게도 6.15민족공동위원회 발족 10주년인 바로 오늘, 국무총리 소속 민관합동위원회인 ‘광복70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공식 출범시켜 사실상 광복 70주년 사업을 관과 ‘관변 민간’ 주도로 진행하겠다는 구상을 분명히 드러냈다. 통일부 관계자는 전날 “민간차원에서 8.15와 관련된 광복70년과 관련해서 하는 행사는 원칙적으로 밀어준다는 생각”이라고 말했지만 6.15남측위원회의 민족공동행사가 여기에 해당하리라고 믿기는 어렵다.

온 겨레의 축복 속에 탄생한 옥동자, 6.15민족공동위원회가 채 자라지도 못한 상태로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지, 시련을 딛고 더욱 단단한 조직으로 새로운 통일운동 역사를 써나갈 수 있을 것인지 엄중한 갈림길에 서 있는 형국이다.

광복 60주년에 열린 금강산 결성식에서 남.북.해외 참가자들은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해외 공동행사준비위원회’의 결성은 민족수난과 분열의 100년사를 끝장내고 우리 민족의 새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선언”이라며 “우리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와 평화를 지켜내고 단합과 통일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자”고 당당한 포부를 밝힌 바 있다.

백낙청 당시 6.15남측위원회 상임대표도 “우리는 오늘의 준비위원회 발족을 통해 민간교류가 외부의 정세변화에 의해 중단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겨레 앞에 할 수 있게 되었다”며 “5천년을 이어온 자주적 전통의 숨결을 받아 우리 민족 통일역사에서 큰 일을 해 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후 남북을 오가며 열린 민족공동행사장에는 다양한 영역과 부문, 지역의 대표들이 서로 어울려 마음속 분단을 녹여냈으며, 헤어질 때마다 서로 눈물을 글썽이며 동포의 정을 나누었다. 특히 일본의 역사왜곡과 재무장, 독도 영유권 주장 등에 맞서 한목소리를 낼 때는 우리 민족의 미래를 단합된 힘으로 열어갈 수 있다는 벅찬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6.15남.북.해외위원회가 공동결의문에서 “우리는 6.15민족공동위원회를 결성하던 역사의 현장에서 뜨겁게 분출된 그 열정과 기개, 그날의 결의대로 뜻깊은 올해를 조국통일의 새 국면을 열어나가는 일대전환의 해로 빛나게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초심을 강조한 점에 주목한다. 정부도 ‘관변 민간’을 내세우는 얄팍함을 버리고 6.15민족공동위원회의 공동행사를 적극 보장하는 상식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 유한한 권력은 무한한 역사의 심판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통일을 향한 도도한 역사의 흐름은 피할 수 없는 우리 민족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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