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역사의 굴곡을 넘어 화해, 협력의 21세기형 통일로

지난 1월말 원광대학교 이재봉 교수(정치외교학)가 미국을 방문해 뉴욕, 워싱턴, LA 등 미주 순회 강연을 가졌다. <프레시안>에 연재되었던 ‘이재봉의 법정증언’을 최근 책으로 펴낸 이 교수는 국내 진보세력와 관련된 재판법정에서 소신 있는 발언을 해오신 분이고, 지난 12월 신은미 씨의 전북 익산 강연을 주최했다가 한 고등학생이 사제폭탄을 투척하는 바람에 부상을 당하기도 하셨다.

6.15미국위원회 초청으로 이루어진 이 교수의 강연은 분단 70년이 되도록 통일을 이루지 못하는 이유와 정전협정 62년이 지나도록 전쟁을 법적으로 끝맺지 못하는 배경에 관해 우리들의 인식을 새롭게 하는 내용이었다. 특히 강연 참석자들은 지금까지 한국에서 동포사회를 찾은 어느 강연자보다도 명쾌하고 통찰력있는 이 교수 강연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다.

이 글에서는 1월 29일 저녁 “해방 이후 한미관계 및 한반도 평화와 통일”이라는 주제로 원불교 LA 교당에서 열린 이재봉 교수의 강연 내용을 정리해 보면서, 앞으로 분단 70년을 극복하기 위한 시사점을 찾아보고자 한다.

분단과 전쟁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역사왜곡을 극복해야

▲ 1월 29일 저녁 미국 LA 원불교 교당에서 뉴욕과 워싱턴에 이어 LA동포사회를 찾은 이재봉 교수가 강연하고 있다. [사진 - 정연진]

<김일성을 ‘분단의 원흉’이라 보는 것은 모순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크게 1) 미.소의 일본군 무장해제를 위한 38선 국토의 분단, 2) 남, 북 각기 정부 수립으로 인한 체제의 분단, 3) 전쟁으로 인해 민족이 서로 원수가 되는 민족의 분단으로 나누어질 수 있겠는데, 1945년의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1945년 원폭 투하 후 일본이 항복의사를 미국 생각보다 너무 빨리 밝혀와 일본군 항복을 받기위해 38선 분단 결정을 하게 된 것이 8월 10일. 즉 해방되기 이전에 국토가 분단된 셈이다. 이렇게 보자면 38선 분단의 원인은 김일성이 아니다.

패전국 일본 대신 한반도가 분단의 희생양이 된 이유는 미국이 일본과의 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 조선은 당연히 미국이 차지했어야 할 전리품이었다. 그런데 소련이 자청해서가 아니라 미국의 끈질긴 요구를 받고 한반도로 내려오던 참이었으니, 미국이 전리품 조선을 소련과 38선으로 나누어 점령하게 된 것이다. 패전국 일본은 미국이 통째로 차지했다 일본은 미군정이 물러가는 바람에 분단되지 않았고, 전리품 조선은 소련과 나눠 점령하는 바람에 분단되고 만 것이다.

<신탁통치 결정에 대한 오보>

미국은 조선의 즉시 독립을 주장했는데 소련이 신탁통치를 주장했다고 알려진 <동아일보>의 보도는 엄청난 오보였다. 실상은 미국은 카이로 회담, 얄타회담, 모스크바 3상회의 등을 통해, 적어도 1943년부터 조선에 대해 줄기차게 신탁통치를 주장(40년간, 20~30년, 또는 5년씩 두 번 실시하자고 주장했었고) 소련은 5년 후견제를 실시하자고 했다. 소련의 제안대로 조선에 대한 5년 후견제 또는 신탁통치안이 채택된 것은 사실이다.

미국의 속셈은 될 수록 오랫동안 신탁통치를 실시하면서 자본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친미 정부가 들어서도록 하는 것이었다. 반면 소련은 당시 사회주의가 인기를 끌었던 상황으로 보아, 조선에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친소 정부가 들어설 것으로 전망했으므로, 조선의 즉각 독립을 바라며 신탁통치를 반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방법과 과정이 달랐을 뿐, 미.소 양국이 어떻게 하면 조선 땅에 자국에 의존적인 나라를 세울 수 있을까 하는 목표를 가진 것은 마찬가지였다고 볼 수 있다.

<6.25 전쟁의 명칭과 성격에 대해>

전쟁의 명칭도 6.25 전쟁이나 조국해방전쟁 대신에 한국전쟁으로 불러야한다.(정확히는 내전임을 암시하는 Korean War 가 아닌 War in Korea가 되어야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국전쟁은 ‘6월 25일 일요일 비가 부슬부슬 오는 새벽 4시에 북한군이 쳐내려 왔다’고 알고 있다. 그러나 세계사의 어느 전쟁도 전쟁 발발일을 날짜, 시간까지 기억하는 전쟁은 거의 없다.

6.25 이전에도 남북 간의 교전은 끊임없이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자.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전쟁은 남침이 맞다, 그러나 북침이냐 남침이냐, 전쟁의 원인제공을 따지며 원한을 쌓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한국전쟁은 아직도 정전(휴전) 상태이고 이것이 지극히 비정상적이라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3년간 전쟁하고 60여년간 쉰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우리는 한국전쟁의 지극히 ‘비정상적’인 정전상태를 끝내야 한다.

<미군의 성격을 제대로 알자>

북한은 줄기차게 평화협정을 주장하는데도, 세계 평화를 수호한다는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역설 또한 주한미군 때문이다. 내가 조사했던 미국의 문서에는 한반도가 통일된다고 하더라도 주한미군은 유지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주한미군은 초기에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은 수퍼 파워가 되어가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종전협정이나 평화협정이 맺어지면 미군이 남한에 계속 머물러 있어야 할 법적 명분이 없어진다.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주한미군을 유지해야 하고, 주한미군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적으로, 깡패국가로 남겨놓아야 하는 것이다.

화해와 협력을 통한 21세기형 통일방안

▲ 현대사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주는 이교수 강연에 청중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다. [사진-정연진]

<북핵에 대한 해법은 단계적으로>

아이가 울면 무조건 때릴 것이 아니라, 왜 우는지 원인을 파악해서 대처해야 하듯이, 북핵문제도 북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밖에 없었던 배경을 파악해야 한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남한을 위협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며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이 크다고 본다. 1950-60년대 북을 둘러싼 주변 국가가 이미 핵을 가지게 되었고, 핵무기를 한반도에 먼저 들여온 것도 미국이었다.(미국은 1958년 핵무기를 남한에 들여왔다가 소련 붕괴 이후 1991년에 철수했다)

북이 핵무기/미사일로 맞서는 원인은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한 방어를 위해서이다. 이명박의 ‘비핵.개방.3000’(핵을 포기하면 국민소득 3천불이 되게 해준다)은 북이 핵을 왜 가지려 하는지 원인을 보지 못하는 실책이다. 근본적으로는 미국의 침입에 대한 위험을 없애는 것이 해결방안이다. 단계별로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o 1단계 - 북한이 이미 개발한 핵은 놔두고 더이상 개발하지 않는다. 주한미군도 유지한다.
o 2단계 - 신뢰가 구축되면 북한 핵무기 폐기하고 주한미군도 철수 할 수 있다.

북한이 원하는 것은 북미평화협정이지만, 미국은 어정쩡하게 ‘전략적 인내’로 버티거나 북에 제재를 가함으로써 붕괴를 유도하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붕괴될 가능성은 별로 없고 붕괴가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북도 변화하고 있음을 주목해야한다. 예를 들어, 연방제통일 방안은 1980년대까지는 남한을 적화하기 위한 공세적 통일방안이었으나, 1990년대부터는 남한에 흡수당하지 않기 위한 수세적 통일 방안으로 바뀌었다.

남에서는 북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6.15선언, 10.4선언과 같은 국가 정상 간의 공식적 합의를 깬 것은 오히려 북이 아니라 남쪽이다. 북한의 경제력은 남한의 50분의 1에 불과하다. 결국 가진 쪽에서 당연히 더 아량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나.

<통일의 방법은 점진적인 화해와 협력을 통한 21세기형 통일로>

통일로 인한 사회혼란과 경비에 대해 우려하는 것은 통일의 방법을 북한 붕괴에 따른 흡수통일에 고정시켜 놓고 있기 때문에 빚어지는 착각인 것이다. 북한 붕괴에 따른 급진적 흡수통일은 당연히 사회 혼란을 초래하고 천문학적 경비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나, 화해와 협력을 통해 국가연합이나 연방제를 거쳐 점진적으로 통일을 이루면 사회 혼란이 생길 이유도 없고 막대한 경비가 들어갈 까닭도 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나라 밖으로는 국경이 낮아지거나 무너지고, 안으로는 중앙에 집중된 권력이 지방으로 분산되는 세계화와 지방화 시대임을 감안하자. 같은 민족이어서 한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욕구 때문에 통일이 더디어 지고 있다.

지구상에는 약 2,000종의 민족이 200개 정도의 국가를 이루고 있으며 이른바 한 민족으로만 형성된 국가는 20개 안팎이다. 평균 10종의 민족이 1개의 국가를 이루고 있는 셈인데, 우리는 한 민족이 두 개의 국가를 갖고 있지만, 같은 민족끼리 한 국가를 만들겠다는 욕구 때문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 보자.

남북이 국토나 체제를 하나로 합치지 않더라도, 적대 관계를 풀고 서로 협력하며 자유롭게 연락하고 오갈 수 있다면 이미 통일은 이루어진 것이나 다름없다. 이것이 내가 주장하는 ‘21세기형 통일’이다.

양쪽 통일 방안의 공통점을 취해서 화해와 협력을 통한 점진적인 통일로 나아가야한다. 남 북이 서로 조금씩 다가가면 된다. 남은 사회주의 평등을 실현하는 쪽으로, 북은 개방을 통해 자유의 가치를 실현하는 쪽으로 서로 다가가면 만날 수 있다. 남은 복지를 확대하고 있지 않은가. 벌써 이러한 변화는 이루어지고 있다.

후기: ‘종북 프레임’을 넘어서려면

▲ 이재봉 교수는 아직도 왼쪽 손목에 붕대를 감고 있다. 신은미 씨 강연에서 고등학생이 던진 사제폭탄을 손으로 막아냈기 때문에 입은 부상이 아직도 완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사진 - 정연진]
‘남은 사회주의 평등을 실현하는 쪽으로 북은 개방을 통해 자유를 실현하는 쪽으로 서로 다가가면 만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사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은 복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으니 이미 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이재봉 교수의 결론은 현재의 답답한 남북 관계에 희망을 가지게 했다.

이재봉 교수 강연을 AOK(Action for One Korea) 페이스북에 게재하자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셨다. 특히 앞으로 민간 통일운동이 위축되지 않으려면, 풀뿌리 통일운동 관련 활동을 밑도 끝도 없이 ‘종북’이라고 낙인찍는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대처 방안이 있을 것인가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미주 동포사회도 더하면 더했지 ‘종북’ 낙인찍기는 극성을 부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미주 동포사회에서도 민간통일운동에 ‘종북’이라는 딱지가 얹혀지면, 사람들이 우리 행사에 나오는 것을 기피하는 등 많은 직간접적인 피해가 생기고 심한 경우 동포사회에서 내쳐지게 된다. 어떻게 하면 ‘종북’ 프레임을 넘어 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AOK 페이스북에서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의견을 종합해 본다.

o 보수 언론에서 ‘종북’이란 단어로 정치적 기득권을 유지하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 여하에 관계없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사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종북 공세를 완화시키는 방법은 북한과의 관계가 발전되고 평화체제가 이뤄지는 것이 북한과의 적대적 대결구도보다 민족적 이익이 크다는 것을 다수의 국민에게 이해시켜야 한다.

o 대북화해협력정책을 꾸준히, 그리고 국민적 합의를 통해 추진할 수 있는 실력 있는 정당과 집권세력이 필요하다.

o 모든 것이 지구화, 국제화, 세계화, 개방화 되어 가고 있는데 유독 정신사상적 분야는 철저하게 폐쇄적이고 배타적이고 쇄국적인 반공주의가 독점을 하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병들게 하고 있다.

o 종북몰이 광기에 대해서 피하거나 물러선다고 해서,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한다.

o 경제에서 자유시장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사상에서도 시장자유주의를 강제해야 한다. 사상의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상이라는 시장에서 반공주의의 독점적 만행을 중단시켜야 한다.

o 또한 북한에 대한 정보(서적, 신문, 방송, 인터넷...)를 대부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더불어 북한 여행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서 민중 스스로가 보고 듣고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o 통일을 생각하는 우리들의 마음과 정신의 크기가 아주 아주 많이 커져야 한다. “종북이면 어때? 친북이면 어때? 사회주의면 어때? 공산주의면 어때? 사람 좋고, 사람과 세상을 행복하게 해 주면 되는 것이지...”하고 소신을 가지고 정면 돌파를 해나가자.

AOK 온라인 회원들의 의견은 한 마디로 ‘소신을 가지고 정면돌파 하자’는 것이 주를 이뤘다. 사실 대통령부터 조심해야 한다. 지난 달 한국 뉴스를 보니, 신은미-황선 씨의 통일 콘서트를 종편 언론이 대대적으로 악의적 선전을 해대며 쓰는 단어를 그대로 대통령은 ‘종북논란이 된 콘서트’라고 언급하고 있었다.

대통령께 간곡히 요청드린다. 진정 통일시대를 꿈꾸는 대통령이라면, ‘종북, 친북, 반북’ 이러한 편가르기 단어를 절대로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고. 작년 초 ‘통일은 대박’ 이라는 발언이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듯이 본인의 말 한마디는 일파 만파의 파장을 낳는 것을 대통령은 직시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그리고 동포사회가 통일 시대를 꿈꾼다면, 20세기 남북 간 증오와 원한 관계를 극복하고 21세기에 걸맞는 화해와 협력을 바란다면, ‘종북’이라는 단어는 입에 담지도 말고, 이러한 편가르기 발상 자체를 우리 사고에서 영원히 추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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