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준(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


2015년 2월 현재 한반도 통일기상도는 매우 흐림이다. 이미 예견된 것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우울하다. 그 이유는 우울한 전망이 틀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자연의 날씨는 하늘의 뜻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인간의 날씨는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것을 조절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게을리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등장 이전부터 수많은 ‘맑은 날씨’를 예보하였다. 박근혜 후보와 정부를 지지한 사람이나 반대한 사람이나 모두가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희망은 점점 절망으로 변하고 있다. ‘맑은 날씨’는 고사하고 먹구름이 일어나며 뇌성이 울리고 있다. 곧 번개가 치고 벼락이 떨어질 기세이다. 물론 그것은 ‘인간의 벼락’이다. ‘인간의 벼락’은 인간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 인간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의 여하에 따라 벼락이 치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여기에서 왜 ‘인간벼락’이 박근혜 정부만의 책임이냐라는 반문이 일어날 수 있다. 옳다. 모든 것이 박근혜 정부만의 책임은 아니다.

북한, 미국, 중국, 일본 등도 일면 책임이 있다. 북한핵 문제가 정말 사활적인 문제라면 관련 정상들이 모든 것을 작파하고 북한핵에 매달려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관련국들이 북핵 문제가 다급하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핵문제를 이유로 북한과의 모든 대화를 끊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여기에서는 한반도 문제의 주도권을 쥐어야 할 박근혜 정부가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판단 하에 김정은 정권의 실상을 규명해 보고 왜 박근혜 정부가 좀 더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야 하는가에 대한 논의를 해보려 한다.

첫째, 박근혜 정부는 북한에 대해 ‘갑’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늘 남북관계의 비정상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북한을 혼내주고”, “남과 북의 갑을관계를 바로 잡았다”라고 자랑했다. 박 대통령도 이러한 입장에 서있는 것처럼 보인다. 북한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논리가 그 증거이다. ‘끌려다니지 않았다’면 ‘끌고 다녀야’하지 않을까? 이제 이명박 전 대통령 말대로 ‘갑’이 되었으면 ‘갑’답게 ‘을’을 다루어야 하지 않을까? 슬슬 피하면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 ‘갑다운’ 행동은 아니다.

그렇다고 ‘을’을 윽박지르는 것만이 ‘갑다운’ 행동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제사회로부터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처럼 비난받기 십상이다. 정상적인 ‘갑을 간’ 거래를 하라는 의미이다. 모든 협상은 ‘주고받기’라는 것은 상식이다. ‘밀고당기는’ 협상을 함에 있어서 ‘주는 것’을 패배로 여기고 끌려 다녔다고 인식하는 것은 협상의 기본을 모르는 것이다. 어차피 남북 문제도 협상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 우리도 준 만큼 받으면 될 일이다.

둘째, 김정은 정권의 변화 때문이다. 북한의 변화에 대해서는 평가가 엇갈린다. 그러나 적어도 김정은 등장 이후 그의 리더십 스타일은 김정일과는 다르게 개방적이고 주민들의 생활양식에도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령독재는 지속되고 있지만 최소한 ‘절차적 독재’를 수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군을 약화시키고 노동당에 의한 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이것은 김정일 때와는 크게 다른 모습이다.

지난 18일에도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가 김정은 등장 이후 세 번째로 열렸다. 김정은은 이 자리에서 정치사상 공세 강화, 유일적 영도체계 옹호고수, 세도.관료주의 및 부정부패행위 타파 등 3대 과제를 내세웠다. 부정부패 문제를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강조한 것은 그만큼 관료부패가 심하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시인할 것은 시인하자는 입장이다. 김정은도 관료부패를 청산하지 못하면 미래가 없을 것임을 안 것이다. 김정은은 장성택을 ‘종파와 부패수괴’로 몰아 처형하여 주민들의 환심을 샀으나 아직도 부패가 만연해 있는 것은 정치적 부담이 될 것이란 것을 간파한 것이다.

북한은 지난 1월 미국과의 싱가포르 접촉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에 대해 (훈련은 인정하되) 훈련 강도를 약화시킬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의 ‘교시’없이 일개 대표가 그런 제안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김정은 나름대로 큰 변화를 한 것이다. 북한은 자신이 남한에 비해 못산다는 것도 인정하고 있다. 김정은은 남한처럼 잘살기 위해 ‘포전제’를 개선하고 “잘살아 보세!”를 외치고 있다. 김정은은 이미 19개의 지방급 경제개발구를 만들고 외부투자를 원하고 있다.

한편으로 김정은 등장 이후 북한 주민들의 생활도 놀랍게 달라지고 있다. 경제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고 부동산 중개업을 필두로 전당포, 계주 등 자본주의식 다양한 직업이 생기고 있다. 주민들의 의식은 이미 자본주의 초입에 들어서 있다. 박근혜 정부가 정말 북한을 변화시킬 생각이 있다면 이러한 기회를 활용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은 점점 안정화되어 가고 있고 장기집권기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도 장기적인 포석과 전략하에 김정은 정권을 상대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 일은 반드시 보수성향의 박근혜 정부가 해야 하고 시간은 금년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는 일부 탈북자가 전하는 북한의 허상이 아닌 실상을 보고 정책을 펴야 한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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