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 '꽃파는 처녀'의 첫 주인공인 최삼숙 씨(가운데)의 이산가족사연이 24일 소개됐다. [사진출처-통일화보]

정부가 제안한 설 계기 이산가족상봉행사 무산 가능성이 큰 가운데, 북한 매체가 ‘꽃파는 처녀’를 부른 인민배우 최삼숙 씨의 이산가족 사연을 소개해 눈길을 끌고 있다. 최 씨는 가수 남인수 씨의 조카이다. 

북한 무소속 대변지 주간 <통일신보>는 24일 ‘통일을 그리며 사는 명가수’라는 제목으로 전 영화 및 방송음악단 가수인 인민배우 최삼숙 씨의 사연을 전했다.

최삼숙 씨(64세)의 모친 김봉점 씨는 해방 이후 서울에서 반미운동을 펼쳤으며, 검거명단에 오르자 1948년 늦가을 1살, 3살 난 딸과 헤어졌다.

이후 한국전쟁 당시 김봉점 씨는 서울로 들어와 딸들과 만났지만, 다시 월북하는 과정에서 38선 부근에서 딸 삼숙 씨를 낳았다.

최삼숙 씨는 “그때 이야기를 하며 어머니는 만나지 못할 줄 알았더라면 데리고 왔을 걸 하고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후회했는지 모른다. 운명하는 순간에도 ‘남녘에 있는 자식들을 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한스럽다’고 했다”고 말했다.

신보에 따르면, 최삼숙 씨의 큰 언니는 프랑스, 둘째 언니는 남쪽에 거주하고 있으며, 최삼숙 씨는 현재 남동생 명원 씨와 함께 북쪽에 살고 있다. 하지만 두 언니의 이름은 밝히지 않았다.

북한 평양출판사가 2003년 발간한 ‘민족수난기의 가요들을 더듬어’에서는 최삼숙 씨는 가수 남인수(본명 최창수)의 조카로 밝혀져있다.

책은 남인수 씨를 소개하면서 “인민배우 최삼숙의 아버지인 최창도와 형제간임.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가 강씨네 집에 재가하면서 강문수로 이름을 고쳐 본명이 강문수로 기입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 최삼숙 씨. 현재 그의 큰 언니는 프랑스, 둘째 언니는 남쪽에 거주하고 있다. [사진출처-통일화보]

최삼숙 씨는 평양방직공장 방직공으로 공장예술소조에서 활동 가야금병창으로 전국노동자예술축전에서 1등을 차지했다. 이에 최 씨는 영화음악단 성악배우로 차출됐다.

영화음악단 소속 당시 최 씨는 197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꽃파는 처녀’ 주인공 역할을 맡도록 지시받았으며, 1972년 주제가인 ‘꽃파는 처녀’를 처음 불렀다.

또한 통일을 주제로 한 영화 ‘금희와 은희의 운명’에서 ‘아버지의 축복’을 불렀고, ‘열네번째 겨울’, ‘곡절많은 운명’, ‘도라지꽃’ 등 영화 주제가와 3천여 곡의 노래를 불렀다.

최 씨는 “갈수록 커가는 행복 속에 웃다가도 남녘의 언니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났다”며 “조국해방 일흔 돌이 되는 올해에 통일의 노래를 더 많이 부르며 자주통일의 대통로를 열어놓는데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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