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법달 /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사회주의적 종교론’에서 살펴 본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종교가 북한사회주의체제 내에 존재하고 있고,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체제적 성격과 그 한계를 인정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 종교를 ‘사회주의형 종교’ 내지는 ‘국가 지배형 종교’로 분류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분석은 체제적 성격의 변화를 대입시키기 위한 것으로, 북한이나 중국의 경우처럼 사회주의체제가 수립된 이후에 불가피하게 따라온 결과를 나타내 보여준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북한 종교가 국가로부터 지원과 활동의 통제를 받고, 정치적으로 활동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하다. 따라서 이런 형태를 단순히 ‘어용 종교집단’이라든지 ‘위장종교집단’으로만 폄하하는 것은 그 체제적 속성을 도외시한 접근으로 현실성을 결여할 위험이 있다.

물론 특정 종교의 관점에서 본다면, 국가 지배형 종교를 원론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그 실체를 부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단순히 실체의 부정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면, 보다 적극적으로 그 체제적 속성과 한계를 면밀히 분석하여 그 존재양식을 규정하고, 이에 따른 상호인식의 길을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북한의 종교뿐 아니라 북한 사회의 존재양식을 객관화하여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이런 노력은 70년에 이르는 분단 구조 속에 쌓여 온 맹목적 불신을 극복하고, 남과 북 서로 간의 이해와 접근이 가능한 신뢰의 탑을 쌓아 나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이런 이해와 접근이 가능해 진다면, 똑같은 의미에서 우리 사회 내의 소모적인 남남갈등의 골도 메워 나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북한 사회의 존재양식이 1970년대 이후 상당한 변화를 나타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인식은 북한 사회도 변화가 가능한 사회라는 점을 전제한다. 만약 “북한 사회는 어떤 일이 있어도 변하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을 앞세우게 되면, 북한 종교의 존재양식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분명 북한 종교는 그 나름의 변화를 겪어 왔다. 예를 들면 분단 직후 북한 사회에서의 종교는 사회주의혁명 초기 단계의 치열한 이념투쟁과정에서 체제건설을 위한 반혁명적 요소 제거의 대상으로 부각되었고, 그 속에서 체제건설에 동조할 수 있는 종교만을 온존시키는 극한적 대립구조 속에 존재했다.

더구나 6·25전쟁 직후에는 미소 양극체제와 냉전적 대립구조 속에서 기독교가 반미투쟁의 상징으로 부각되어 종교가 체제에 직접적인 위협으로 간주됨에 따라 아예 존재론적 근거를 상실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미·소 양 진영 사이에 데탕트 바람이 불면서 국제환경이 변화함에 따라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오히려 종교를 활용할 가치를 인식하게 되었고, 이미 이때에는 북한에서도 종교가 북한 사회 내부에 조금이라도 위협이 될 만한 힘과 요소를 모두 상실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후 북한 당국은 종교를 상황 변화에 필요한 모양새대로 활용하며 이를 체제에 적용시켜 나가는 행태를 취해 온 것이다.

따라서 오늘의 북한 종교는 북한 체제 내에서 체제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애국적 봉사활동을 주된 활동으로 펼치며 그 현실적 의미와 한계 속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해 나가고 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다. 북한의 정치적 상황이 중국과는 차이가 있지만, 중국의 종교에 관한 다음과 같은 언급은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즉

“남미의 신학이 사회적 투쟁에 의한 해방의 사상적 무기인 것에 비해 중국은 이미 정치적, 사회적 해방을 달성했기 때문에 중국신학은 해방을 위한 무기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다르다. 중국신학은 이제 남은 문제인 화해를 목적으로 한다. 즉 전에 인민과 괴리되었던 그리스도교도들이 다시 인민과 하나가 되어 화해하고, 나아가서는 하느님과 멀어진 사람들이 ‘말씀이 사람이 되신’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 화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주1)

는 것이다. 물론 이 언급은 그 자체로 정치적 의미를 내포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중국과 북한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주의체제 속의 종교가 지니는 새로운 의미구조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즉 ‘화해의 도구’로서의 종교라는 측면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북한 종교를 민족적 화해와 협력을 위한 ‘화해와 평화의 도구’로 바라볼 수 필요는 없을까? 사실은 이점에서 북한 종교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가능성과 남북 종교교류의 현실적 의미가 발견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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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임금자, ‘중국그리스도교 3자애국운동에 대한 이해’, 『신학사상』, 통권95호(서울:한국신학연구소,1996), p,104.

 
동국대에서 북한학을 공부하고 서울디지털대학교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종교문화연구원 연구위원, 한반도 종교평화네트워크 연구위원,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대의원, 원불교 평화통일포럼 연구원, 민주평통 종교분과 상임위원등의 활동을 통해 한반도 통일과 종교의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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