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 전 통합진보당 당원, 전 진보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

나는 2014년 12월 19일자로 해산된 통합진보당의 당원이었다. 일반 당원도 아닌, 대의원이었고, 게다가 진보당 부설 진보정책연구원의 연구위원이었던 나는 헌재의 판결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아마 대다수의 당원들이 그럴 것이고, 대다수의 깨어있는 시민들이 그럴 것이다.

이 연재 글은 한 진보당 당원의 항변 글이다. 많은 법률가들이, 많은 지성인들이, 많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헌재 판결의 부당성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진보당 당원들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이 글이 모든 당원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글이 해산된 진보당 당원들이 자기의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작성자 주>

연재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① 헌재 판결이 정당하다면 진보당 전 당원 사법처리에 주저함이 없어야
② 특정한 내용이 없다던 진보적 민주주의가 위헌으로 둔갑한 사연
③ 진보당의 연방제 통일방안은 북한의 고려연방제 통일방안인가
④ 진보당은 왜 한미동맹 해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가
⑤ 진보당은 북핵을 옹호하는가
⑥ 종북론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 이대로 좋은가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등 한반도·동북아의 비핵·평화체제를 조기에 구축한다. 이와 연동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고 종속적 한미동맹체제를 해체하여 동북아 다자평화협력체제로 전환한다. 국군의 해외 파병을 금지하고, 선제적 군비동결과 남북 상호 군비축소를 실현한다.

통합진보당 강령 중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관련한 내용이다. 분명히 진보당은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진보당을 제외한 다른 진보정당들도 큰 입장 차이가 없다. 정의당은 “한미동맹을 탈냉전적 관계로 재편”, “주한미군의 단계적 철수”를 주장했으며, 노동당의 경우 강령에서 비록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으나 “미국 등 강대국 중심 국제 질서 극복”이라는 표현을 넣음으로써 큰 틀에서는 비슷한 주장을 하였다.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폐기를 주장해 온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평통사)의 한 간부를 ‘북한과 동일한 주장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이 기소하여 진행된 최근 한 재판에서도 재판부는 “북한의 주장을 수용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으며 대한민국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아마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했던 것일까. 헌재의 정당해산 판결문에도 한미동맹 해소와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해산의 근거로 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18차례에 걸쳐 진행된 변론기일에서 검찰은 끊임없이 한미동맹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정당해산의 중요한 논거로 주장하였다.

진보당이 주장했던 한미동맹 해소와 주한미군 철수 문제는 한국 사회를 진보와 보수로 가르는 가장 명확한 기준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비록 진보당은 해산되었으나 진보당이 주장했던 한미동맹 해소와 주한미군 철수는 한국 사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제도개선으론 한미 불평등 해소 하지 못해

물론, 정의당과 노동당 등 다른 진보정치세력들이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를 강령 등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긴 하지만 진보당만큼 이 문제를 명확하게 제기했던 정당은 없다. 그렇다면 왜 진보당은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를 강조했던가.

첫째, 진보당은 한미 사이의 불평등한 관계는 제도개선 등으로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고 본다. 미군 범죄, 환경 오염, 주둔비용 한국 부담 등 한국과 미국 사이에 불평등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소파 협정을 개정하고, 한미방위비분담협정 등에서 제도 개선 방안을 합의해 왔으며, 비록 한계는 있으나 과거에 비해 불평등성은 완화되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그러나 제도개선이 진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근원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2001년 1월 서울 녹사평역 지하수가 대량의 기름에 오염된 사실이 알려져 국민적 공분이 모아졌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5년 지난 2006년, 그 일대에서 발암 물질로 알려진 벤젠이 5개 조사 지점에서 기준치의 최저 14.8배에서 최고 1988배까지 초과할 만큼 큰 오염이 다시 발견되었다. 2001년 당시 미군은 오염원을 완전히 제거하고 정화했다고 발표했으나 ‘거짓말’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그러나 서울시는 미8군 기지에 대한 현장 확인조차도 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서울시는 자체 예산으로 지하수 오염조사 및 정화작업을 수행한 후 그 비용을 대한민국으로부터(주한미군이 아닌!) 소송을 통해 배상받고 있다.

2012년 7월경 평택에서 미군기지 밖 순찰을 돌고 있던 미 헌병 7명이 상가 앞에 주차된 차량이 퇴거 요구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대한민국 민간인 3명을 상대로 수갑을 채워 불법적으로 체포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평택 경찰은 가해 미군들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였다. 그러나 해당 미군들은 2013년 2월경 한국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2013년 6월경 "미군들이 적법한 권한을 넘어 민간인들을 불법체포했다"며 관련 미군들에 대한 전원기소 방침을 미군 측에 전달했다. 그러나 미군 측은 "공무집행 중에 일어난 일"이라며 '공무증명서'를 제출하였고 결국 2013년 12월 13일 법무부장관이 돌연 재판권불행사를 결정하였고, 검찰은 바로 '공소권 없음' 불기소 처분을 내려 사건을 종결지었다.

한국은 매년 거의 1조원에 달하는 방위비분담금을 주한미군 측에 ‘지불’해왔다. 그러나 주한미군은 이 비용을 ‘아껴’ 자신의 계좌에 적립해놓고 있으며, 이자까지 챙기고 있었다. 이자에 대한 세금도 ‘면제’되었다. 이 같은 사실은 이미 2007년 신동아 기사를 통해 확인되었으나 최근까지도 이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고 있다.

2002년부터 2013년까지 12년간의 이자소득만 대략 3,396억원으로 평가된다. ‘평가’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는 추정치일 뿐이다. 미군 측의 반대와 한국 정부의 소극성 때문에 정확한 조사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자소득이 3,000억원이 넘는다면 주한미군이 적립하고 있는 방위비분담금 미집행금은 수조원에 달할 것이다.

한미 양국은 2014년 1월 9차 방위비분담금 특별협정을 체결하면서 ‘제도개선에 관한 교환각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미국측은 방위비분담금 항목배정을 위한 논의도 거부하고, 인건비만 일방적으로 통고할 뿐 군사시설개선비나 군수지원비는 배정액조차 알려주지 않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 핵무기 배치와 사용에 관한 독점적 결정권

둘째, 진보당은 미국이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고, 실제 사용까지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1953년 7월 체결된 정전협정 13항은 한반도 평화 유지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13-ㄹ 항은 아래와 같이 규정하고 있다.

작전비행기, 장갑차량, 무기 및 탄약을 한반도로 증강하는 것을 중단한다. 단, 이들 무기들이 파손되었거나 손상을 입었거나 닳아 해졌거나, 다 사용되었을 경우, 같은 유형, 같은 성능의 무기류를 1 대 1 원칙에 기초하여 교체될(replaced) 수 있다.

즉 일체의 무기류는 한반도로 유입될 수 없으며, 파손되거나 완전히 사용되었을 경우에만, 동종, 동급의 무기를 1:1로 교환하는 것만 허용된다. 그런데 미국은 1957년 6월 21일 판문점에서 열린 군사정전위원회 회담에서 13-ㄹ 항의 폐기를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1958년부터 핵무기를 적재할 수 있는 신형 전투기들이 일본의 오키나와 기지에서 한국으로 이동배치되기 시작했다. 주한미군의 8군 산하 제7보병사단은 핵전쟁에 대비한 ‘펜토믹’(Pentomic) 사단으로 개편되었으며, 280mm 핵대포와 지대지 미사일인 어니스트 존(Honest John)은 말할 것도 없고, 핵을 장착한 마타도어(Matador) 크루즈 미사일 1개 비행중대를 한국의 미군부대에 상주시켰다. 1976년까지 한국에 배치된 핵무기 총수는 680개를 상회하였다.

이 같은 핵무기 배치에 기초하여, 1974년 존 맥그루거 당시 미 공군 장관은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한국에서의 핵무기 사용은 한정된 수의 무기를 극히 선택적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에서부터 타격을 상당한 강도로 집중시키는 경우까지, 게다가 방대한 지리적 구역 전체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경우까지, 여러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핵무기의 다양성이 요구된다.

이들 무기는 전투구역 전선 가까이있는 목표를 공격하는 데 사용하는 무기부터 넓은 지역 목표나 견고한 목표나 분산된 병력을 공격하는 데 쓰이는 무기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미국의 합참의장이었던 에드워드 마이어는 1981년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반도에서 핵무기사용에 대한 최종결정권은 미국 정부에 있으며, 한반도에서의 핵무기 사용결정은 15개국과 협의해야 하는 유럽보다 훨씬 용이하다.

미국은 핵무기를 일방적으로 배치하고, 핵사용까지 일방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발언들이다. 이같은 사고는 탈냉전 시기에도 이어졌으며, 실제 1994년 미국이 주도한 전쟁위기는 여러 매체를 통해 우리 국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한미연합군사연습은 방어훈련이 아닌 공격훈련

셋째, 진보당은 한미 양국군이 비록 방어훈련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북한을 공격하기 위한 훈련을 진행해 왔으며, 그 결과 한반도의 긴장이 조성되고 전쟁위기로까지 치달았던 역사를 잘 알고 있다.

한미 연합군사연습에는 다양한 상륙훈련이 포함되어 있다. 2006년 3월 진행된 한미연합전시증원(RSOI) 연습 및 독수리 훈련의 일환으로 만리포에서 진행된 한미연합상륙전 훈련 당시 <오마이뉴스>가 촬영한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브리핑 내용이 나온다.

북한군을 격멸하고 북으로 공격 중에 있으며, ○○은 동부지역에서 계속 공격, 전과 확대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공군 구성군사령부는 전구 내에서 공중우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해군 구성군사령부는 서해안 상륙작전 지원을 위해 해상우세를 북으로 확장 중에 있으며, 한미연합해병사령부는 평양 고립을 위한 서해안 상륙작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2006년 4월 7일자 보도.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21491&CMPT_CD=SEARCH)

2003년 12월 한국군 합동참모본부가 발간한 <합동연합작전군사용어사전>은 상륙작전(上陸作戰, Amphibious Operation)을 “함정, 주정, 또는 항공기에 탐승한 해군과 상륙군이 해양을 통하여 적 해안에 군사력을 투사하는 공격작전”으로 기술하고 있다. 이 사전에 따르면, 상륙작전의 목적은 “적 종심지역의 주요 목표 공격 및 교란, 차후 전투작전수행, 해군 전진기지, 또한 해군기지의 획득, 지역 또는 시설의 적 사용 거부 등”이다.

한국 법원이 한미연합군사연습의 북한 공격적 성격을 인정한 사례도 있다. 바로 위에서 언급했던 2006년 'RSOI/FE' 연습의 일환으로 진행된 '만리포 한미상륙훈련' 당시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기습 '기자회견'을 진행했고, 군 당국에 의해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고소되어, 재판이 진행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한미군사연습’의 공격성에 대한 공방이 진행되었는데,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각 증거물에 의하면, 만리포상륙훈련은 작계 5027-04 3단계 2부에 근거해 실시된 것으로, 전쟁발발 후 65일이 경과된 시점에 한미연합사령관이 평양을 직접 압박하고 고립시키기로 결심한 후 북한의 서해안 지역을 상정하여 실시된 훈련임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 판결문에도 나오는 작전계획 5027은 한미 양국이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전쟁계획이다. 물론 이 전쟁계획은 ‘북한의 남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5027은 ‘북한의 남침 격퇴’에 그치지 않고 한미연합군이 북한으로 침공하여 북한을 수복한다는 내용까지 포함되어 있다. 5027은 다음과 같은 3단계로 북한의 공격을 격퇴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1단계: 전진 방어로 서울 사수
▶2단계: 주요 지역을 장악, 북한 군사력을 파괴하며 추가 공격 저지
▶3단계: 미 지상군과 한국군, 북한 원산 상륙작전 및 북진 작전을 개시하며 북한 정권 궤멸

한미연합군사연습이 방어 훈련의 요소를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미 훈련은 대북 공격적 요소 또한 갖고 있다는 점에서, 북한을 불필요하게 자극하고,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역효과를 만들어 냈다.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에 대한 합리적 토론 이루어져야

진보당은 아래와 같은 주한미군 단계적 철수 방안을 2012년 대선 정책공약으로 제시한 바 있다. 진보당의 철수 방안 역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연동되어 설계되었다. 즉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속도에 맞춰 주한미군을 단계적으로 철수한다는 방안인 것이다.

 

당시 진보당이 이 같은 공약을 내세웠던 목적은, 진보당의 미래비전을 제시하자는 것도 있었으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활성화시키자는 것이었다.

진보당이 적극적으로 제기해왔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과 관련한 이슈는 한국 사회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비록 이 문제에 대한 진보적 의견을 ‘종북’으로 매도하고 있기는 하지만, 집단적 자위권으로 대표되는 일본의 군사주의화, 도광야회 기조에서 벗어나 ‘굴기’하고자 하는 중국의 적극적 대외 전략, 과거 제국의 부활을 꿈꾸면서 극동으로의 진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는 러시아 등 최근 강화되는 주변국들의 적극적인 대외정책 속에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 외교를 좌우하는 중요한 쟁점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급변하는 동북아시아 환경 속에서 우리는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지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갖고 있다. 진보당처럼 동맹 해체와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것에서부터 보수수구세력처럼 동맹 강화와 미군 영구 주둔을 주장하는 것에까지 다양한 논의와 토론이 활발하게 전개되어야 한다. 그 속에서 한국의 바람직한 외교 방향과 전략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한미동맹과 주한미군을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건강한 사회의 척도는 건강한 토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진보당은 해산되었으나 진보당이 제기했던 한미동맹과 주한미군 철수 문제에 대한 논의는 더욱 활발하게 진행될 수 있는 건강한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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