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소영 / 동국대학교 북한학 박사 졸업
 

평생 소원이 무엇이었던가
묘향산에 한번 노니는 것이었지
산 첩첩 천 봉 만 길에
길 층층 열 걸음에 아홉 번은 쉬네
- <묘행산시> 김삿갓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함께 묘향산을 빛내고 있는 것은 역사가 깊은 유적과 유물들이다. 특히 동국여지승람에는 묘향산에 360여개의 암자가 있었다고 했으며, 묘향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인 ‘비로봉(毘盧峰)’도 ‘모든 곳에 두루 비치는 부처의 몸의 빛’을 뜻하는 것으로, 금강산, 오대산 등과 함께 불교와 인연이 깊었던 대표적인 산이었다. 그 중 대표주자가 보현사와 서산대사라고 할 수 있다.

서산대사는 임진왜란 이후에는 대둔산의 대흥사에서 후학을 양성하여 큰 절로 만들기도 했지만, 서산대사의 ‘서산’도 묘향산의 별칭일 정도로 그의 뿌리는 묘향산에 있었다. 노년에 묘향산에서 기거하던 서산대사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70대의 나이에 묘향산을 중심으로 승병을 조직하였으며, 임진왜란이 마무리된 후에는 다시 묘향산에 들어와 보현사에서 입적할 정도로 묘향산과 깊은 인연을 만들었다.

지금도 묘향산에는 서산대사가 말년을 보냈던 냉천골의 자연굴인 금강암이 있으며, 그가 입적한 보현사에는 정조시기 만들어진 그의 추모사당 ‘수충사’와 서산대사의 사리를 보관하였던 부도의 비가 남아있다.(부도비는 한국전쟁시 폭격으로 파괴되었다)

서산대사만이 묘향산을 사랑한 것은 아니었다. 묘향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만들어진 상원암 중앙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작품이고, 조선 4대 명필이었던 양사언도 묘향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 상원암 근처 폭포에 필적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가사인 ‘향산별곡’은 묘향산의 아름다운 경치와 사찰, 사적들을 중심으로 330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3월의 묘향산을 금강산과 무릉도원에 비유하였다. 또한 소설 속 ‘장길산’이 구월산에서 첫 모임을 조직한 이후, 각 지역별로 조직을 확대하는데 묘향산은 그 험준한 산세를 바탕으로 ‘북쪽 산채’로 등장한다.

그림 . 묘향산 유적안내도
 보현사 전경

 

 

 

 

 

 

묘향산의 수려한 절경 그 한가운데 살포시 안겨 있는 듯 놓여있는 보현사는 고려시대 광종에 창건되었다.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관서지역 불교의 대표하는 243칸의 대가람으로 발전하였고, 지금도 북한 국보 40호로 지정되어 불교를 대표하고 있다. 보현사 가람 안에는 대웅전과 만세루를 비롯하여 명부전과 심검당, 영산전 등이 있고, 묘향산 주위에 상원암과 불영대, 불영암, 금강굴 등의 부속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또한 보현사에는 고려시대의 석탑이 남아있다. 그중 고려 초에 만들어진 8각 13층 석탑은 고구려 시대 유행했던 8각의 양식을 계승하고, 추녀마다 풍경 1004개를 매달 수 있게 만든 화려한 석탑으로 유명하다. 이처럼 고려 초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석탑 양식은 후삼국 시대 각 지역의 호족세력이 강해지면서 그 세력을 과시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묘향산에 있는 보물 중 하나가 달돋이가 향산 8경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그 절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불영대이다. 특히 불영대는 임진왜란 때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전화로 인해 춘추관과 상주, 청주에 있었던 사고는 소실되었고, 전주 사고에 있었던 마지막 실록이 정유재란에 묘향산으로 옮겨진 것이다. 묘향산 불영대에 보관된 실록은 전쟁 내내 보현사 스님들의 헌신으로 지켜냈으며 전쟁이 끝난 후에 조선왕조실록이 복원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임진왜란 후 조선왕조실록은 4부로 필사되어 오대산의 월정사와 정족산의 전등사, 태백산의 각화사, 묘향산의 보현사에 사고를 만들어 보관하였으며, 사고가 있는 사찰에는 실록과 사고를 지키는 책임이 주어졌다. 불영대의 실록은 이후 무주의 적상산 사고로 옮겨져 조선말까지 보관되다가 일제시대에는 창경국의 장서각으로 옮겨졌다. 한국전쟁 이후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김일성 종합대학의 도서관 서고에서 발견되면서 그 존재를 드러냈다.

북한 정권은 묘향산을 주민들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건설하면서 현재도 많은 북한 주민들과 외부인들이 묘향산을 찾고 있다. 묘향산역과 북신역 등 철도역을 이용하여 묘향산 관광전용열차와 여객열차, 급행열차를 운행하고 있으며, 평양에서 묘향산까지 관광도로를 건설하여, 중국에서 도입한 관광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또한 향산읍과 태평리, 향산읍과 묘향산을 잇는 시내버스를 정기적으로 운행하고 있다.

향산호텔

평양에서 관광버스를 타고 묘향산 입구에 도착하면 바로 보이는 건물이 향산호텔이다. 1986년 완공된 향산호텔은 14층 높이로 삼각형 모양으로 지어진 특급호텔이다. 주로 외국인 관람객이 이용하며, 묘향산에서 채취한 나물과 약재, 칠색송어를 이용한 요리를 제공하는 식당이 유명하다. 묘향산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보현사와 함께 국제친선관람관을 돌아보게 된다.

1978년 개관한 국제친선관람관은 700여개의 방에 27만여 점의 김일성과 김정일 등 북한의 지도자들이 국내외에서 받은 선물들이 대륙과 나라별로 전시되어 있다. 이곳에는 박정희, 노무현 대통령의 선물과 이후락, 이건희, 김우중, 정주영, 홍라희 등 남한 인사들의 선물들도 따로 진열되어 있다.

남북교류협력이 활발했을 때 묘향산과 보현사는 남한방문자들의 빠지지 않은 참관장소였다. 그만큼 묘향산은 평양과 가깝지만 다양한 볼거리와 수려한 풍치를 잘 간직하고 있고,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어 남북 관광교류가 진행된다면 우선 대상지로도 손색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