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선호하는 한국음식으로 비빔밥이 1위로 뽑혔습니다. 그만큼 비빔밥은 세계적인 음식으로, 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꼽히고 있는데요, 북녘에서도 비빔밥을 우리 선조들의 창조적 지혜와 근면성이 낳은 우수한 민족음식의 하나라고 하며 비빔밥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습니다.

조선료리협회가 발간한 <조선료리> 2009년 1호는 ‘비빔밥의 유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비빔밥의 역사와 지역별 비빔밥의 특징 등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조선료리>에 따르면 옛날에는 비빔밥을 ‘골동반’ 또는 ‘화반’이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골동’은 오래되었거나 미술적으로 값있는 도구나 기물인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음식을 섞은 것이라는 의미이며 ‘화반’은 밥 위에 얹은 가지가지 음식들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것이 그야말로 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문헌상으로는 비빔밥이 1800년대 말기의 ‘시의방’에 처음으로 나오지만 이용되는 음식 재료들과 만드는 방법이 매우 구체적이고 또 일찍이 밥이 우리 주민들의 기본주식으로 되어있었다는 사정을 놓고 볼 때 상당히 오래전부터 우리 주민들의 식생활에 등장한 음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옛날부터 비빔밥은 반병두리(양푼과 모양이 같으나 썩 작으며 뚜껑이 있는 놋그릇의 한 가지)나 대접에 담아 나박김치와 따끈한 장국을 곁들여 먹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었는데요,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식사를 할 때 남이 먹는 비빔밥이 더 맛있어 보여 한술두술 나누어 먹다가 ‘함께 비비자’고 밥을 모아 비비는 경우도 있었는데 여러 가지를 넣고 함께 비빔밥을 너도나도 떠서 먹는 기분은 참으로 좋았다고 합니다.

그만큼 비빔밥은 정답고 소탈한 느낌을 갖게 하는 음식의 하나인데요, 비빔밥이 생겨나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우리 주민들의 근면한 노동생활과정에 생겨난 음식이라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농민들은 봄철의 씨뿌리기를 할 때면 아침 새벽부터 별이 뜰 때까지 논밭에서 부지런히 일했습니다. 그리하여 농가의 여인들은 씨뿌리기를 할 때에는 남성들의 점심식사와 새참을 싸들고 들로 나가곤 하였습니다.

그런데 음식을 나르는 여인들에게 걱정스러운 것은 밭길을 걸을 때 그릇에 담은 찬들이 쏟아져 흩어질 수 있는 것이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바로 오늘날에도 비빔밥으로 불리는 음식입니다.

여인들은 옹배기 같은 그릇에 밥을 담고 그 위에 여러 가지 찬들과 고추장을 올려놓은 다음 그 밥그릇을 광주리나 바구니에 넣고 들로 나갔는데 이렇게 하니 밭길을 걸을 때 크게 근심하지 않아도 되었을 뿐 아니라 밥과 찬을 비벼먹는 것 또한 별맛이었습니다. 이렇게 생겨난 비빔밥은 점차 훌륭한 민족음식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설은 우리 주민들이 한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저녁에 1년을 무사히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면서 묵은 음식이 해를 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두 모아 한 그릇에 담아 먹던 관습으로부터 비빔밥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운데 잡지는 “어느 설이나 다 우리 민족과 주부들의 영특하고 깐진(성질이 깐깐하고 끈기가 있는) 생활기풍이 엿보이는 이야기”라고 설명합니다.

한편 비빔밥은 어느 지방에서나 다 만들어 먹었지만 특히 이름난 것은 해주, 진주, 전주지방의 비빔밥이었습니다.

해주지방의 별식으로서 해주교반, 골동반이라고도 불리는 해주비빔밥은 다른 지방의 비빔밥과 만드는 방법은 비슷하였으나 특이하게 수양산의 고사리와 이 지방에서 많이 나는 김을 섞어 만드는 것으로 하여 유명했습니다.

또한 진주비빔밥은 다른 나물이나 반찬과 함께 고기회를 밥 위에 올려놓고 선지국(소피를 널고 끓인 국)을 반드시 같이 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아울러 전주비빔밥은 3년 묵은 장, 콩나물과 함께 달걀을 까서 얹고 기름기를 모두 걸러낸 소머리국물로 밥을 비비는 것으로 하여 해주나 진주의 비빔밥과 마찬가지로 이채를 띠는 지방음식으로 손꼽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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