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의 연두교서 못지않게 북한 최고지도자의 신년사는 국제사회에서 관심의 초점이 된다. 매해 신년 첫날인 1월 1일에 발표되는 북한의 신년사는 북한 내부는 물론, 남북관계 및 대미 문제와 관련 당해 연도의 목표와 입장을 밝히는 만큼 한국과 미국만이 아니라 유관국들도 흥미를 갖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최고지도자에 오른 뒤 2013년부터 올해까지 3차례에 걸쳐 육성으로 신년사를 발표했는데, 올해 유독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이유는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최고위급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는 이 한마디로 남북관계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요 며칠간 북한 언론매체에서 남한을 비방하는 내용이 사라진 것이 그 방증이다. 대화의 창을 열기 위한 분위기 조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올해 신년사에서 김 제1위원장이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한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게 있다. 다름 아닌 신년사를 통해 자기 목소리와 자기 스타일로 명징한 리더십을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김정은 시대’를 알렸다는 것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위주로 해서 보면, 김 제1위원장의 리더십이 갖는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위에서도 지적했듯이 남북 정상회담을 언급한 점이다. 아울러 정상회담에 이르기 위한 길로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회담도 할 수 있다”고 구체적으로 적시한 것이다. 2013년 신년사에서는 ‘남북 대결상태 해소’, 2014년에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분위기 마련’을 각각 촉구했지만 이번처럼 구체적인 개선 경로까지 언급하진 않았었다. 물론 각각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이처럼 대남 목표와 방법론까지 제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다른 하나는 김 제1위원장이 한국과 미국에 대해 관계개선에 걸림돌이 되는 것을 제거해 달라고 직접 주문한 점이다. 그는 한국에 대해서는 “외세와 함께 벌리는 무모한 군사연습을 비롯한 모든 전쟁책동을 그만두어야” 한다며 한미 합동군사연습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고, 미국에는 “시대착오적인 대조선 적대시정책과 무분별한 침략책동에 매달리지 말고 대담하게 정책전환을 하여야 할 것”이라며 대북 적대정책의 철회를 요구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한.미에 대해 이처럼 족집게로 콕 집듯 찍은 것 역시 처음이다.

김 제1위원장이 한국과 미국에 대해 총괄적이고 그래서 에두른 비난보다는 이처럼 구체적이고 직설적으로 요구한 것은 그가 그간 현지지도를 통해 보여준 리더십 및 스타일과 전적으로 부합한다. 북한은 2012년 4월 ‘광명성 3호’를 실은 로켓을 발사했지만 2분여 만에 공중에서 폭발했고, 이에 발사 4시간여 뒤 로켓 발사 실패를 인정했다. 이 같은 ‘솔직함’은 당시 새로운 지도자의 리더십으로 인식되었다. 현지지도에서의 ‘질책’은 이제 하나의 비판적 리더십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 5월 김 제1위원장은 평양의 놀이공원을 찾아 일꾼들에게 관리 부실을 들어 심하게 질타했으며, 지난해 11월경에는 평양 순안국제공항 2청사 마감공사 현장을 방문해 ‘민족성’을 살리지 못한 시공 방식을 질책하고 재설계를 지시했다. 잦은 군 수뇌부의 교체도 자신감 있는 리더십의 한 유형일 수 있다. 특히, 압권은 지난해 11월 미국이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주도하자 신천박물관을 찾아 미국에 대해 원색적인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이른바 ‘반미 교양의 거점’에서 “미제의 침략적 본성과 야수성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면서 미국에 대해 ‘살인귀’, ‘귀축’, ‘식인종’, ‘살인마’, ‘침략의 원흉이고 흉물’ 등 작심한 듯 거친 표현을 쏟아낸 것이다.

이처럼 김 제1위원장이 국제사회가 주시하는 신년사를 통해 자신의 리더십과 스타일을 유감없이 선보일 수 있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김정일 3년상’을 치렀기 때문이다. 상중(喪中)에는 아무래도 선대의 유훈통치에 기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탈상(脫喪) 뒤에는 홀로서기가 필연적이다. 지난해 말 3년 탈상(12월 17일) 뒤 북한의 언론매체들이 곧바로 김정은 최고사령관 추대 3돌(12월 30일)을 일제히 띄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본격적인 ‘김정은 시대’의 도래를 알린 것이다. <노동신문>은 12월 30일자 사설에서 “전당, 전군, 전민이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김정은 동지의 두리(주위)에 더욱 철통같이 뭉쳐 원수님의 사상과 영도를 충직하게 받들어나가야 한다”면서 “원수님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더욱 철저히 세우”자고 호소했다. ‘김정은 유일적 영도체계 수립’은 ‘김정은 시대’ 출발의 신호탄인 것이다. 특히, ‘김정은 시대’의 첫 시대어(時代語)로 김 제1위원장은 신년사에서 ‘백두의 칼바람정신’을 제시했으며, <노동신문>은 1월 4일자에서 “백두의 칼바람정신은 영원한 조선의 정신”이라고 정식화했다. 이제 김정은 식(式) 정치, 김정은 식 외교가 본격화될 것이다. ‘광복 70년, 노동당 창건 70년’을 맞는 올해 그 시금석으로 남북관계가 부상했다. 자기 스타일로 자기 리더십을 담은 2015년 신년사가 ‘김정은 시대’를 알리는 첫 일성(一聲)으로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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