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 보약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말이 있다. 거꾸로 말하면 몸이 병들거나 부실하면 올바른 정신세계가 만들어지기 어렵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폐병을 앓거나 허기진 몸으로 창작을 하는 예술가의 모습을 떠올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것은 영화나 소설 속에 극적인 연출을 위해 등장하는 상상의 소산이지 현실과는 사뭇 다르다.

오랜 객지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몸이 아파 누워있을 때였다. 그 때는 정말 부귀영화가 다 싫고, 먹고 싶었던 음식도 역겹게 느껴졌다. 뛰어난 미모의 여성도 귀찮았다. 단지 가족과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서운한 생각만 들었다. 생각은 퇴행하여 단순해지고, 코를 훌쩍거리면서 이불을 꽁꽁 싸 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비참하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았다.
 
이런 조건에서 예술, 창작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최상의 컨디션에도 힘든 지경에 아픈 몸으로 뭘 한단 말인가.

사실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에너지와 체력이 필요하다. 비유가 적절할 지는 모르지만, 산모가 출산을 위해 필요한 체력 소모와 비슷하다. 작가가 개인전을 끝내고 몇 년의 휴식기를 가지는 것은 창작을 위한 재충전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정신적인 문제도 있지만 체력적인 문제도 함께 있다.

주변 작가들 중에는 과음이나 과로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건강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경우 창작을 하지 못해 정신적 고통을 많이 받거나, 혹 창작을 한다해도 지극히 개인적인 정서에 매몰되는 경향이 많다. 다시 말해 창작의 폭이 제한되는 것이다. 원하지 않는 육체적 고통을 통해 정신적인 세계가 깊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사람이 개를 물어 뉴스감이 되는 경우와 비슷하다.   

창작열이 왕성한 작가들은 체력관리에 많은 신경을 쓴다. 지속적인 운동을 한다든지, 혹은 단식이나 소식 따위의 식이요법을 활용해 건강을 다진다. 체력이 딸리면 대작이나 세밀한 집중력이 요구되는 작품을 창작하기 어렵다.

물론 이런 얘기는 예술세계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사회 모든 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깨끗한 도로에 지프차가 달리고, 안전도가 높은 중형차가 잘 팔리고, 영양제나 항생제 남용이 심하며, 몸에 좋다면 굼벵이 내장까지 빼먹는 현상은 육체적 건강의 필요성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일례일 뿐이다.

어찌 보면 육체적 건강을 위해 투자하는 것은 효과가 잘 나타나고, 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정신건강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관심하다. 현대는 튼튼하게 다져진 몸을 정신이 소모하는 형국이다. 극도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도 쇠약해진다. 멀쩡한 몸에 병든 정신이 들어가 있으면 어떤 모습이겠는가? 그것은 정신병원에 가보면 안다. 또한 원조매춘, 사기, 폭행 따위의 사회적 범죄는 몸은 멀쩡한데 정신이 병든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진다.

우리나라 정치나 경제가 개판인 것이 정치인이나 재벌 총수의 몸이 부실해서인가? 정신과 육체는 따로 놀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신건강은 어떻게 다질 것인가. 몸 건강을 위해 돈과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듯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마찬가지로 투자가 필요하다. 하지만 정신건강을 만드는 일은 언제나 3D 업종에 속한다.

철학, 종교, 학문 따위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정신건강의 보약이다. 직접 창작하지 않더라도 예술을 사랑하고, 교류하며 발전시키는 것은 정신건강을 다지는데 초석이 된다.

몸과 정신건강이 조화로운 사람과 사회가 필요한 지금, 당신은 정신건강을 위해 얼마를 투자하는가?

연필로 그린 여성

▶렴병옥/항만기중기운전공/연필화/70*100/1985

이번 작품은 <항만기중기운전공>이란 제목의 연필화이다. 북한화가 렴병옥이 1985년에 창작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무슨 전람회나 공모전에 출품하거나 입상한 작품은 아니다. 기본기를 다지기 위한 연습작품이나 혹은 큰 작품으로 옮기기 위한 초벌그림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이 그림의 미덕은 탄탄한 데생실력이다. 연필이라는 재료는 형태를 잡고 사물을 묘사하는 훈련을 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된다. 가격도 저렴하고 사용하기도 편리한 도구여서 연습용으로는 최고의 미술재료이다. 학교의무교육을 받은 사람 치고 미술연필을 잡아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북한도 예외는 아니다. 또한 색채 없이 흑백으로 표현된 작품은 깊이 있게 대상을 표현할 수 있으며,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작품의 내용은 단순하다. 항만에서 배에 들어가는 물건을 싣거나 내리는 기중기를 능숙하게 운전하는 여성노동자의 밝은 모습을 그린 것이다. 북한에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하다고 하는데, 남성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직업에도 여성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이를테면 군인, 중장비운전사, 전철, 버스운전사, 교통경찰, 어부 따위이다. 이 그림도 그런 여성노동자의 사회활동을 미화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육중한 항만기중기와 아리따운 여성의 이미지를 대비시켜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과격하게 달리는 총알택시 운전사를 보면서, 배차시간을 맞추기 위함인지 차선을 자주 바꾸며 질주하는 버스운전사를 보면서 여성이 운전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을 닮은 여성이 아니고 정말 여성다운 힘을 가진 여성이 말이다.

심지어는 정치인도 여성으로, 장교군인도 모두 여성으로 바꾸면 사회가 훨씬 덜 폭력적이고 부드러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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