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철은 유난히 굴 등 조개류와 명태, 도루묵 등 생선이 맛있습니다. 이들은 그 추운 날씨에 어떻게 나설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너무도 추운 날씨에도 자식이나 손자를 위해 나선 어머니, 아버지들의 마음까지 담겨져서인지 겨울철의 차갑고 신선한 맛을 자랑합니다. 때문에 겨울철은 유독 회나 매운탕 등 생선으로 만드는 요리를 즐기기 좋은 계절입니다.

평양출판사가 2005년 출간한 <조선의 사계절 민속>에도 겨울철은 도루묵, 명태 등의 생선이 제철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북녘에서는 도루묵을 ‘도루메기’라고 부르는데요, 김일성 주석도 “도루메기는 맛있는 물고기입니다”고 꼽을 정도로 도루묵은 북녘에서 인기 생선입니다.

<조선의 사계절 민속>에 따르면 동해의 바닷가 사람들은 음력 10월부터 11월까지를 ‘도루메기철’이라고 하였습니다. 9월 하순에 도루메기가 알을 낳기 위해서 바다기슭으로 나온 이후부터 시작하여 도루메기잡이가 성황을 이루는 것입니다.

찬물을 좋아하여 깊은 층에서 사는 도루메기의 생활습성에 맞게 흘치개(바다 밑바닥에 있는 물고기떼를 둘러싸서 잡는 주머니모양의 그물), 덤장(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을 막고 몰아넣어서 잡는 그물), 걸그물(물고기가 다니는 길목에 쳐서 그물코에 걸리게 하는 띠처럼 생긴 그물) 등으로 잡으며 불빛을 잘 따르는 습성을 이용하여 잡기도 합니다.

도루메기는 몸길이가 15~20cm밖에 되지 않는 그리 크지 않은 물고기이지만 맛이 좋아 고급한 반찬감으로 되었으며 도루메기잡이는 겨울철 바다 물고기잡이에서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사계절 민속>은 다음과 같은 도루묵과 관련한 전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 옛날부터 먹성이 좋은 이 물고기를 ‘메기’라고 불러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동해안쪽으로 피난길에 올랐던 왕이 밥반찬으로 오른 이 물고기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길을 다그쳐오느라고 지치기도 했거니와 배도 여간 고프지 않았던지라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지만 그 물고기의 맛은 각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상을 물리고 나서 고기이름을 물어보니 ‘메기’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맛좋은 물고기이름을 좋지도 못하게 메기라고 부르다니 하면서, 왕은 그 이름을 ‘은어’(銀魚)라고 고쳐 부르게 하였습니다. 이를 두고 <조선의 사계절 민속>은 이런 추세라면 ‘금어’라고도 했을 수 있겠다고 농담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 후 서울의 왕궁으로 돌아온 왕은 날마다, 끼마다 진수성찬이라 아무리 별식이고 별미라 하여도 다 귀찮고 보기도 싫어했습니다. 도대체 그의 입맛에 맞는 것이 없었고 그러던 중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으니 바로 피난길에 동해안에서 맛보았던 ‘은어’였습니다.

즉시, 왕의 명령이 내려 말이 달려가고 달려왔으며 동해안의 물고기가 왕궁에 입궐하여 왕의 밥상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왕이 배가 고팠을 때에는 그것이 맛이 있었지만 이제 가져온 것을 먹어보니 도저히 먹을 만 한 것이 못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이게 ‘은어’가 옳긴 옳은가”하고 따졌고 “이렇게 맛이 없는 고기를 감히 ‘은어’라고 부를 수 없다”며 “도루(도로)메기로 부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왕의 은총을 입어 일약 ‘은어’로 승격하였던 동해의 보배고기가 다름 아닌 그 왕의 버림을 받아 ‘도루메기’로 되어버린 것이라고 책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후 사람들은 제대로 잘되어가던 일이 다시 잘못되는 경우를 두고 ‘도루메기 되었다’는 말을 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던 간에 도루메기는 고기와 알이 다 맛좋고 또 북녘의 앞바다에 많은 고기이므로 북녘 주민들은 도루메기철을 놓치지 않고 많이 잡았으며 식생활에 널리 이용해 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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