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놀이를 하는 곳에서만 인간이다 (쉴러)



- 요시노 히로시

정년으로 회사를 그만둔 사람이
-잠깐 놀러 왔어
하며 나의 직장에 얼굴을 내밀었다.
-심심해서 말야
-팔자 좋군 그래
-그게 글쎄, 혼자 있자니까 엉덩이가 굼실거려서
예전 동료의 옆 의자에 앉은 그 뺨은 여위고
머리에 흰 것이 늘었다.

그가 위로를 받고 돌아간 다음
한 친구가 말한다.
놀랍군, 일을 하지 않으면
저렇게 늙어버리는 건가
맞은 편 동료가 잘라 말한다
-인간은 역시, 일을 하게 돼 있는 걸세
듣고 있던 내 안의
한 사람은 수긍하고 한 사람은 부정한다.

그런 그가 다른 날
싱글벙글 웃으면서 나타났다.
-일자리를 찾았어
-조그만 가내공장인데

이것이 현대의 행복일지도 모르겠지만
어쩐지 나는
한때의 그의 여위었던 얼굴이 그리워서
아직껏 내 마음의 벽에 걸어놓고 있다.

일자리를 얻어 되젊어진 그
그건, 무언가를 잃어버린 뒤의 그가 아닌가 싶어서.
진정한 그가 아닌 것만 같아서.


뒷산 약수터 근처 한 원두막에 노숙자 두 사람이 터를 잡았다. 나중엔 텐트 두 개를 치고 다정한 이웃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벌써 몇 개월이 된 것 같다.

겨울이 되어 혹한기에는 잠시 떠났다가 날씨가 조금 풀리자 다시 왔다. 가끔 막걸리를 사들고 그들 집에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난다.

그들에겐 '원시인 같은 인간성'이 보존되어 있을 거야! 나는 그들에게서 인간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약수터에 오는 사람들 중에는 혀를 끌끌 차며 "일하기 싫어 저러지. 요즘 세상에 어디 가서 일해도 먹고 살 수는 있을 텐데......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싫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다. '한평생 일만하며 산 당신들 진정으로 그들보다 나은가?'

호이징거는 '인간은 유희적 존재'라고 말했다. 일을 하는 건 인간의 본성이 아닌 것이다.

일하는 동물은 없다. 인간이라고 특별한 동물이 아니다. 어쩌다 인간이 일을 하게 되었을까?

무언가 죄를 지어 일을 하게 된 게 분명한 것 같다.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일을 하며 살았다. 그러다 36세가 되던 해에 일을 그만두었다.

그때는 인문학 지식이 짧아 인간이 유희적 존재라는 걸 모를 때였다. 그런데 몸이 알았나 보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계속 일을 하다가는 돌아버릴 것만 같았다.

아내와 상의했더니 '마음대로 살라'고 했다. 나중에 어떻게 그렇게 하라고 했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될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때부터 나는 '백수 생활'에 들어갔다. 인생이 무언가 알고 싶어 온갖 공부를 했다. 그동안 하지 못한 것들을 했다. 패싸움을 하여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하고 술 마시고 길에서 비틀거리며 걷다 아무데나 꺽꺽 토하기도 했다.

문학을 공부할 때는 수시로 밤새워 뒤풀이를 했다. 어느 날, 깊은 밤 한강 고수부지에 주저앉아 나는 환희에 젖었다. '아, 하늘에 별이 떠 있구나! 강에 물이 흘러가는구나! 여기에 내가 있구나!'

용돈만 벌고 사는 백수 생활을 10여년 했다. 시민단체 활동가, 지역 신문사 편집국장, 문화원 사무국장...... .

그러다 '글을 쓰고 글을 강의하는 일'에 정착하게 되었다. 하지만 글을 쓰고 강의하는 것이 내게는 놀이다.

그냥 신나서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그렇게 하여 돈이 생기니 돈은 목적이 아니라 결과물이다.

나보고 글 쓰고 강의하지 말하고 하면 나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참으로 행운이다. 이렇게 놀이를 하며 사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되겠는가?

얼마 전에 모 중학교에 가서 '작가를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강의를 했다. 나는 글 쓰는 것에 신이 난다면 작가의 길을 가라고 말했다. 글만 써서 먹고 살기는 힘들어도 강의를 하면 먹고 살만큼은 돈을 벌 수 있다고.

이 시대의 노숙자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그들은 온 몸으로 이 시대를 증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만하며 사는 인생은 진정으로 사는 게 아니라오. 우리를 혐오스럽게 보는 당신들 눈을 돌려 자신들을 되돌아보시오. 그 모습이 진정으로 인간인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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