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헌 / 양심수후원회 명예회장

 

사람들은 해질녘 동녘하늘에 나타난 일곱 색 무지개에 환상을 느낀다. 물방울에 햇빛이 굴절 반사되어 나타나는 자연현상이지만 하늘 높이 이렇게 아름다운 여러 색깔의 홍예문을 보는 경이로움에 감탄하게 된다.

아무 색깔 없이 보이는, 날마다 마시고 쓰는 물에서 이렇게 다양한 색깔이 있는 것처럼 사람 사는 세상은 단조롭지 않다. 물이 있는가 하면 불이 있고, 산이 있는가 하면 강이 있다. 무한대의 우주공간은 아직은 미지의 세계이지만 지구촌만 해도 수천 수억의 동물과 식물이 살고 있고 그 동물 중에는 인류가 있다. 그 수십억 사람들 또한 저마다 다른 유전자(DNA)와 지문(指紋)을 갖고 있다.

따라서 그 수십억의 사람들은 미세한 차이지만 저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쌍둥이 형제·자매라 해도 아주 똑같지 않는 사고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모든 사물이 갖고 있는 다양성은 그것 자체가 자연현상이다.

어떤 종교에서 말하듯 인간을 점지했다는 절대자·전능자라 해도 사람들의 생각차이를 없애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인간이 문명사회로 발전되면서 사람들이 옳고 바르게,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사회를 꿈꾸게 되었다. 그런데 당대의 뛰어난 사상가 철학자 정치인들에서도 그 이상사회에 대한 꿈이 일치하지 않았다.

한 사례로 동양에서는 춘추전국시대 공자·맹자 등 유가(儒家)로부터 묵가(墨家:묵자) 도가(道家:노자·장자 등) 법가(法家), 명가(名家) 등 제자백가(諸子百家)의 다양성을 보였고 서양에서도 그리이스 고전문화시대 이오니아학파(탈레스 등) 피타고라스학파(피타고라스 등) 엘레아학파(크세노파에스 등)가 있는가 하면 소피스트철학(프로타고라스 등), 관념론자(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등)들이 있어 각기 색다른 철학과 학문 이상을 추구하고 있었다.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생각은 똑같지 않았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어떠한 사회적 조건에서도 자신만이 갖고 있는 고유의 유전자처럼 세상의 모든 사물을 보는 시각은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사람마다의 이러한 고유의 사고영역을 오늘의 인권개념에 대입하면 ‘인류사회의 모든 구성원의 고유의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여할 수 없는 권리’로 된다.

따라서 천부적인 이성과 양심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며 각자의 자결권에 기초하여 정치적 지위를 자유로이 결정하고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발전을 자유로이 추구할 수 있게 된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사회구성원 각자의 고유한 의견 그리고 자유로운 사고와 표현이 허용되는 정치적 견해의 다양성을 초석으로 한다.

그런데 오늘 이 땅에서는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상대방에 대한 비판을 넘어 증오하고 아예 말살하려는 전체주의적 살벌함마저 보이고 있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통일토크콘서트 행사장에 폭탄테러가 감행되었다. 더욱 놀라운 일은 그 폭탄테러가 마치 독립투사인양 일부세력에 의해 찬양되고 있었다. 그 피해자들이 테러정황을 밝히려는 기자회견마저 폭력으로 방해했다. 대통령까지 직접 나서 ‘종북콘서트’의 편향과 왜곡을 강조하며 현재 소환조사를 벌이고 있는 공안 쪽에 ‘수사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다. 북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은 용납할 수 없다는 오만과 독선이었다. 그뿐인가. 편향보도로 일관된 종편들과 다른 시각으로 사실보도를 해오던 인터넷신문 <자주민보>를 등록취소하고 있다.

얼마 전 해방공간에서 백색테러로 악명을 떨쳤던 ‘서북청년단’의 부활선언이 있었는가 하면 접경지역 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은 물론 자칫 남북사이 전면전으로 이어져 우리민족 절멸을 불러올 대북비방 전단살포가 가장 애국적인 양 당당하게 예고하고 감행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방관 내지는 조장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느 한쪽의 입장만 정당하고 다른 쪽의 의견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극단의 사례들이다.

‘관용’이란 말이 있다. 우리말에서는 용납·아량 등으로 해석되지만 프랑스에서의 톨레랑스(tolérance-관용)는 ‘정치, 종교, 도덕, 학문, 사상, 양심 등의 영역에서 의견이 다를 때 논쟁은 하되 물리적 폭력에 호소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뜻(이념)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 볼테르의 명구(名句)가 있다. ‘나는 당신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겠다.’

그랬다.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관용’에 인색했다. 특히 정치적 의견이 다르면 상종 못할 적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냉전과 공안논리가 더해지면 종북이 되고 말살의 대상이 된다. 그 전형이 바로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기도였다. 이는 남북관계에서 다른 목소리를 용납할 수 없다는 폭탄테러나 <자주민보>를 등록취소하고 수많은 통일운동단체들을 이적단체로 규정 그 구성원들을 감옥에 보내고 있는 파쇼적 공안몰이와 본질면에서 다르지 않았다.

다 알려졌듯이, 지난해 11월 5일 박근혜정부는 통합진보당을 강제해산시키려고 이른바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안’을 차관회의도 생략한 채 서둘러 만들었고 해외나들이를 하던 박근혜 대통령이 한밤중에 전자결재 했다. 집권세력과 정치적 의견을 달리하는 정당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파쇼적 발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18대 대선후보 시절 종북몰이의 표적이 되고 있던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해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국민들이 불안하게 느끼는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사퇴가 안 되면 그렇게(제명조치) 가야된다고 본다’(2012. 6. 1)고 말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국회의원 한 사람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아 통합진보당을 아예 없애려한 것이다.

이렇게 법무장관을 청구인으로 한 이른바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안은 헌법재판소에서 1년이 넘게 청구인과 피청구인(통합진보당)이 제출한 방대한 양의 증거물을 조사하고 쌍방의 변론을 가졌으며 지난 11월 25일 제18차 변호기일을 마지막으로 양측의 공방이 마감되었다.

청구인 측은 변론기일을 통해 통합진보당(진보당)은 ‘북한을 추종하는 일부세력이 당을 장악, 민중주권을 표방하면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진보당의 강령과 정책 등은 ‘주체사상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북한의 대남혁명전략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에 불과’하며 당의 목적, 조직, 활동 그 어느 것도 민주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고 모함했다.

바로 목적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반민주적 반인권적인 북한식 사회주의를 지향’하고 조직에서도 ‘헌법까지 부정하는 세력들이 반민주적인 방법으로 중요 당직자나 당내 의사결정기구를 장악하고 있’으며 활동에서 ‘비례대표 부정경선’ 등을 들었다. 사실왜곡의 극치였다.

그들의 논리는 결국 진보당은 ‘반헌법적 정당’이기에 정당해산은 ‘헌법을 파괴하려는 세력으로부터 국민의 안전 및 국가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헌법적 결단’이라고 주장했다.

청구인은 또한 ‘특히 진보당의 해산과 관련하여 고려해야 할 점은 북한 공산집단의 위협과 도발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의 냉엄한 안보현실’임을 강조했다. 그리하여 ‘진보당은 자유민주주의 기본질서를 파괴하고 대한민국을 내부에서 붕괴시키려는 암적 존재’라며 ‘더 이상 정당해산이라는 수술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참으로 황당무계한 모함이었다. 수많은 조작간첩사건에서 보였던 냉전시각과 공안논리의 연장이었다. 청구인 측의 이 같은 진보당죽이기 모함은 오늘의 진보당뿐만 아니라 14년전에 창당했던 민주노동당의 강령과 정책 활동까지 샅샅이 뒤졌는가 하면 일부 당원의 사적인 활동이나 발언을 확대 왜곡시켰으며 특히 ‘진보적 민주주의’ ‘민중주권’ ‘코리아연방제’ 등 집권세력의 정책방향과 다른 부분은 마치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로 왜곡 둔갑시켜 진보당을 위헌정당으로 짜 맞추고 있었다.

또한 이러한 짜 맞추기에는 당의 강령과 당헌, 당규, 정책, 각종 출판물 등 공개된 자료와 활동에서가 아니라 드러내지 않은 ‘숨음 목적’이 따로 있는 듯이 지레 짐작, 추측, 왜곡, 유추해석 등을 끌어 모아 위헌성을 부각시키고 헌재로 하여금 ‘숨겨진 그림찾기’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민주노동당이나 진보당 활동과는 아무 연관이 없는 20년전 나름대로 변혁운동을 하다 변절한 자를 헌재 증언석에 세워 20년 전 시각으로 오늘의 당활동가들 성향을 증언케 했으며, 진보당원으로 활동하다 이탈하여 국정원 프락치가 된 자를 동원, 주요 당직자들의 사상검증을 한 것을 토대로 하여 NL계열-종북활동-반역정당으로 추론하였다.

그러나 이와 같은 진보당죽이기 모함은 하나하나 무너지고 있었다. 청구인 측이 처음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때 핵심전제였던 이른바 ‘내란음모사건’은 항소법원에서 ‘내란음모’ 무죄, ‘지하혁명조직(RO)’ 실체없음으로 판단했다. 사실은 이 항소심 결과만으로도 위헌정당해산심판청구는 곧바로 철회되었어야 했다.

또한 ‘진보적 민주주의’가 해방공간 ‘이북에서 김일성이 주장한’ 것을 도입하여 ‘북한식 사회주의 추구’의 숨은 목적이라고 모함했지만 1945년 4월 1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정원 38회 회의속기록에 “임시정부 헌법이 진보적 민주주의 기초위에 수립된 것”이라고 천명된 사실도 역사학자의 헌재 증언에서 확인되었다.

주한미군철수, 평화협정체결, 국가보안법폐지 등 주장은 진보당만의 주장이 아니라 많은 시민사회단체와 학계에서 민족문제해결과 인권문제 측면에서 일관되게 요구해온, 헌법사항이 아닌 민주적 기본질서의 정책사항이었다. 북에서 주장했다 해서 무조건 동조라고 매도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와 통일에 대한 겨레의 염원을 짓밟는 반인권, 반민주, 반통일 행패일 뿐이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최후변론을 하면서 “(정책위원장과 당대표를 하는 기간) 당의 모든 토론은 법안과 정책공약, 현안대응, 통합과 연대방침 문제로 채워졌을 뿐 ‘민족해방민주주의혁명’이니 ‘식민지반자본주의론’이니 그 어떤 혁명이론도 토론의 주제가 된 일이 없었다”며 “당은 혁명론을 정립하는 곳이 아니고 폭력혁명을 꿈꾸거나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고 청구인들의 ‘북의 대남혁명론에 입각한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한다는 모함을 반박했다.

이제 통합진보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정당심판이 다가오고 있다. 4월혁명을 비롯하여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을 통해 이만큼이라도 발전시켜온 이 땅의 민주주의와 인권이 다시 압살당하고 짓밟히느냐 아니냐를 가르는 순간이 헌법재판관 9명의 양심에 따라 결정되게 되었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강제해산기도는 박근혜정부의 민주적 다원성의 불용에서 비롯되었다. 가진 것 없고 덜 배워 더욱 빈곤해지는 악순환의 사회를 바로 잡고 외세에 의해 분단된 조국을 우리민족끼리 평화통일하려는 정치세력을 용납하지 않는데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반대세력을 ‘종북’으로 낙인찍어 마녀사냥에 들어간 것이 바로 이석기․김재연 의원 종북척결시도였고 이어 이른바 내란음모사건이었으며 마침내 진보당을 아예 없애버리려 시도한 것이다.

통합진보당에 대한 강제해산기도는 민주주의 말살행위이면서 헌법정신의 파괴이기도 하다. 박근혜정부는 헌법 8조 4항을 근거로 통합진보당을 없애려 하지만 이보다 앞서 8조 1항은 ‘정당설립의 자유와 복수정당제를 보장하고 있고 국가로부터의 보호와 정당운영의 필요한 자금을 받게 돼 있다.(3항) 정당해산항목은 오히려 이승만 독재정권에 의해 불법적으로 강제 해산된 옛 진보당의 참화를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정당의 해산여부는 국민들의 지지여부로 결정될 일이지 국가권력이 강제할 수 없다.

국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정당활동의 자유는 기본권중에서 매우 중요한 내용으로 된다. 그래서 국제적으로도 정당해산요건은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정당해산과 관련된 ‘베니스위원회’의 가이드라인이 그것이다. 바로 ‘정당이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사용하거나 폭력사용을 주장하는 경우에만 정당해산이 정당성을 갖는다’고 했다.

그러나 진보당은 민주적 기본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어떠한 폭력을 사용하거나 주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회주의를 존중하고 선거에 의한 집권전략, 민주주의와 인권을 중시해오고 있었다.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등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위해 헌신해 왔으며 전쟁을 반대하고 생명․평화를 위해 힘써왔다. 일하는 사람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 보편적 복지를 처음으로 주장하기도 했다. 바로 평등세상, 자주통일 등 우리민중이 선택할 진보의 가치를 위해 헌신해 왔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켜주는 최후 보루이다. 민주주의와 인권, 정의와 평화, 사회구성원 모두의 안전과 행복을 지키는 데서 어떠한 권력과 압박으로부터도 독립하여 양심에 따라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할 것이다. 기본권을 직접 지키려는 거대한 국민저항을 미리 막는 역사적 심판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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