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
세월의 강물
- 장 루슬로
다친 달팽이를 보게 되거든
도우려 들지 말아라
그 스스로 궁지에서 벗어날 것이다.
당신의 도움은 그를 화나게 만들거나
상심하게 만들 것이다.
하늘의 여러 시렁 가운데서
제 자리를 떠난 별을 보게 되거든
별에게 충고하고 싶더라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라.
더 빨리 흐르라고
강물의 등을 떠밀지 말아라
강물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니 보따리까지 내 놓으라'고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는 인간성에 대한 예리한 통찰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었다가 보따리까지 내놓으라는 요구에 황당해한 경험이 여러 번 있다.
나는 그때마다 그 사람들을 원망하고 은혜를 모르는 세태에 분노했는데, 나중에 깨달은 게 있다.
내가 '물에 빠진 사람들을 구해준 게 잘못'이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지나친 동정심이 있다. 아마 어릴 적 불우하게 자라나 '애정 결핍'에 의해 그런 증상이 나타났을 것이다.
애정에 목말라 하던 나는 물에 빠진 사람만 보면 그와 나를 동일시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구해 줄 때마다 의기양양해 했지만, 그들은 나로 인해 혼자 힘으로 물에서 벗어날 기회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보따리까지 내놓으라고 한 것이다.
산길을 가다 다친 달팽이를 본 적이 있다. 개미들이 상처에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달팽이는 지쳤는지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는 그를 잠시 동안 들여다보다 홀가분하게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지금 자신의 운명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다. 결과는 하늘만이 아는 것이다.
그가 살아난다면 그에게 개미를 이기는 힘이 조금이라도 축적될 것이다. 그 미약한 힘들이 대대손손 전해져 언젠가는 달팽이들이 개미를 이기게 될 것이다.
나는 내 길을 가면 된다. 진정으로 내 길을 갈 때만이 나는 남을 도와주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나의 감상적인 마음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내 안에서 어떤 큰 힘이 속삭여준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