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환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


최근 일본 도쿄에 다녀왔다. 몸담고 있는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과 조선대학교 조선문제연구쎈터, 리츠메이칸대학 코리아연구센터, 연변대학 민속학연구소가 함께 주최한 ‘2014 통일인문학 세계포럼’ 참가가 주목적이었다.

11월 29일 오후 조선대학교 기념관 강당에서 ‘동북아시아에서 우리 민족정체성의 계승과 변용’을 주제로 한.중.일에서 온 동포 연구자들이 열띤 발표,토론을 한 뒤, 30일에는 조선대학교 교원들의 인솔 아래 도쿄의 몇몇 장소를 답사했다. 서울에는 바로 다음 날 돌아왔다.

그런데 서울에 도착한 직후부터 기묘하게 몸이 아팠다. 겨우 3박4일 출장에 탈이 날만큼 몸 상태가 나쁘지는 않았었다. 몸살이 확실하다면 아예 푹 쉴 텐데 그 정도는 아니라 일을 본답시고 돌아다니다보면 온 몸의 맥이 자꾸 풀렸다. 평소 자주 만나던 이의 이름이 잘 생각나지 않고, 조금 전에 하고자 마음먹은 일도 한 걸음 떼면 생각나지 않았다. 도대체 왜 이럴까? 도쿄에서 찍어온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나름의 이유를 찾았다.

도쿄 외곽에는 언젠가 조국에 묻히기를 원하며 돌아가신 재일조선인들의 유골을 안치해둔 국평사(國平寺)라는 절이 있다. 30일 아침 우리 일행을 맞이한 윤벽암 주지스님은 먼저 사찰 이름에 담긴 뜻(조국의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이름 붙였다고 한다), 사찰 역사 등에 대해 알려준 뒤, 우리를 납골당으로 안내했다.

스님을 따라나선 내가 처음 본 건 100여 기가 훨씬 넘는 유골함들이 맨바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광경이었다. 의아해하는 우리에게 스님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들려줬다.

“이곳에 있는 유골들은 지금은 찾아올 가족, 친지가 없는 무연고 재일조선인 유골들입니다. 본래 납골당에 안치해두었었는데 남북관계가 ‘좋았던 시절’에 남북 당국이 무연고 유골들을 가져가 DMZ(비무장지대) 부근에 모시려 한다는 말을 듣고 이곳으로 꺼내 놓았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남북 사이가 나빠지면서 그 일에 더 이상 진척이 없었고, 그러다보니 이곳에 계속 놓아두게 됐습니다.”

▲ 도쿄 외곽 국평사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무연고 재일조선인 유골들. [사진 - 김진환]
처음 듣는 얘기라 흥미롭기도 하고, 남북 당국이 이 유골들을 DMZ 어디에 안치하려 했을지 궁금해 하기도 하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시간이 그리 넉넉지 않았기에, 가까이에서 유골함 딱 한 기만 찍고 가자고 마음먹고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 어린 넋이 내게 찾아왔나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어린 넋이 나를 자신의 유골함으로 이끌었던가보다.

아이는 일제가 가쁜 숨을 내쉬며 최후 발악을 하던 1944년 4월 22일 일본에서 태어났다. 일제 식민지 시대에 나고 자랐을 부모가 새 생명에게 붙여준 이름은 김정자(金貞子)였다. 식민지 종주국 일본에서 신산한 삶을 꾸려가던 부모에게 정자는 분명 살아야 하는 이유이자 희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름처럼 곧은 마음가짐으로 무럭무럭 자랐어야 할 정자는 세 돌을 갓 넘긴 1947년 7월 8일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아! 어린 정자는, 그의 부모는 얼마나 원통하고 비통했을까? 정자의 부모는 아마도 해방된 조선에 돌아가 생활을 꾸려나갈 형편이 못 되어서, 또는 일본에 머물러야만 하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또는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빠져들던 해방공간 조선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일본에 남았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일본에 남은 정자네 가족이 맞닥뜨린 전후 일본의 현실은 가혹했다. 전후 일본의 황폐함과 경제난, 그것보다 더 정자네 가족의 삶을 힘겹게 했을 재일조선인에 대한 극심한 민족차별. 그 와중에 필시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입다 짧은 생을 마감했을 어린 정자와, 자식을 가슴에 묻었을 그의 부모는 얼마나 원통했을까? 얼마나 비통했을까?

정자의 넋은 자신의 원통함과 비통함을 이렇게나마 이야기해달라고 내게 찾아왔던 것이다. 육신의 편안함에 젖어 재일조선인의 서글픈 역사를 알리는 걸 게을리할까봐 내 몸을 아프게 했던 거다. 물어보지도 않고 조국으로 데려가주겠다며 잘 지내던 납골당에서 꺼내놓고선, 남과 북이 티격태격 싸우느라 몇 년째 자신을 맨바닥에 놓아둔 ‘분단조국’을 꾸짖어달라고 그 어린 넋은 내게 찾아왔던 것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 강제로 조국을 떠나야 했던 코리언 디아스포라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통일조국’을 만들어달라고 그 어린 넋은 내게 찾아왔던 것이다.

▲ ‘재일조선인 김정자’의 유골. [사진 - 김진환]
이처럼 사연 많은 국평사를 뒤로 하고 우리가 찾은 곳은 ‘도꾜조선중고급학교’였다. 도꾜조선중고급학교는 재일조선인들이 1946년 10월 개교한 이래 지금까지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의 온갖 탄압 속에서도 꿋꿋하게 꾸려왔고, 현재는 도쿄에서 유일하게 고급과정을 운영하는 참으로 소중한 민족교육 기관이다.

생각해보니 만약 ‘아이 김정자’가 무사히 자라 아이를 낳았다면 지금쯤 김정자의 손주가 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노인 김정자’가 도꾜조선중고급학교에 손주를 보냈더라도 그리 마음이 편치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노인 김정자’의 생애 내내 괴롭혔을, 일본사회의 재일조선인 차별이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현재 일본 정부는 고교 무상화 제도 적용 대상에서 오직 ‘조선학교’만을 부당하게 제외시키고 있다. 이번에 찾아간 도꾜조선중고급학교 복도에는 “우리 학교에도 배울 권리를!”이라는 구호 아래 고교 2학년 학생들의 결심이 적힌 횡단막이 걸려 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우리가 곁에서 함께 할게”라는 다짐 아래 조선학교 차별반대, 고교 무상화 적용 서명운동에 참가한 한국인 5,550명의 명단과 사진을 걸어 놓았다.

아래에 옮긴 재일조선인 작가 서경식의 말처럼 조선학교는 식민지배와 민족차별을 찬성하는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세력 간 투쟁의 최전선에 당당히 서 있었다.

“조선학교는 항상 식민지 지배 책임을 부인하고자 하는 일본 지배층들에게 상징적인 표적이 되어왔다. 그 압력에 대한 저항은 조선반도 남이든 북이든 재일이든, 분단 이데올로기를 넘어 전 민족적으로 공유해야 할 과제다. 학생들이나 부모들에게 그런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서, 조선학교는 이 투쟁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최전선에 선 사람들을 고립시켜서는 안 된다.” - <『조선학교 이야기: 차별을 딛고 꿈꾸는 아이들』(지구촌동포연대 엮음, 선인, 2014), 서경식 ‘추천의 글’ 중에서>

조선학교 아이들은 일본에서 짧은 생을 마감한 재일조선인 김정자의 후예들이다. 어린 정자를 가슴에 묻은 채 통한의 세월을 살았을 정자 부모의 후예들이기도 하다. 바로 이 조선학교 재학생.졸업생들이 매주 금요일 도쿄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 모여 부당한 민족차별,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맞서 싸우고 있다. 12월 5일부터는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서 조선학교 아이들에 대한 차별 중단, 조선학교에도 고교 무상화 제도 즉각 적용을 요구하며 또 하나의 금요행동에 돌입했다.

도쿄와 서울의 금요행동에는 일본에서 돌아가신 재일조선인들의 넋도 함께 할 것이다. 죽은 자는 산 자를 이끌고 산 자는 죽은 자를 달래줄 것이다. 이게 바로 반성과 사죄를 모르는 일본 정부와 우익세력을 혼쭐내줄 생과 사를 초월한 연대다.

▲ 도꾜조선중고급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는 소녀상. 자존감과 당당함이 느껴지는 이 소녀상을 보며,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또 다른 소녀상이 떠올랐다. [사진 - 김진환]
 

▲ 도꾜조선중고급학교 복도에 걸려 있는 고교 무상화 투쟁 결의 횡단막. [사진 - 김진환]

▲ 조선학교 차별을 반대하는 한국인 서명자 명단과 사진. [사진 - 김진환]


 
국민대학교에서 법학을, 동국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H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 밖에 조계종 민족공동체추진본부, 경실련 통일협회,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같은 통일 관련 단체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학교 이야기: 차별을 딛고 꿈꾸는 아이들』(2014, 공저), 『평화와 통일의 사건사』(2014, 공저), 『동북아시아 열국지 2: 팍스 아메리카나의 뒤안길』(2013), 『동북아시아 열국지 1: 북·미 핵공방의 기원과 전개』(2012), 『구술사로 읽는 한국전쟁』(2011, 공저), 『북한위기론: 신화와 냉소를 넘어』(20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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