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법달 / 종교문화연구원
 

(1) 불교 관련 용어의 사전적 의미 변화

불교에 대한 관점의 변화도 상당한 진전이 있다. 북한의 철학사전에서는 불교를 종교로서보다는 일종의 철학 또는 종교철학으로 보는 견해가 있으며, 그 교리 내용에 대한 설명은 ‘비과학적’이며 ‘미신적’인 황당한 논리라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항 목

현대조선말사전(81년 발간)

조선말대사전(92년 발간)

 

기원전 6세기 무렵에 인도에서 발생해서 동방의 여러 나라들에 퍼진 종교이다. 불교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다 고통이 있는데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부처를 믿고 현실생활을 잊어버리는 데 있다고 설교한다. 불교의 반동성은 사람들에게 불행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압박자들을 반대하여 투쟁하는 대신 모든 욕망을 억제하고 운명에 순종하여야 한다고 하며, 죽어서 ‘극락세계’로 가기 위해서는 현실세계에서의 모든 고통을 참고 견디어야 한다는 노예적인 굴종사상과 무저항주의를 설교하는 데 있다.

불교는 낡은 사회에서 지배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복무하였으며, 특히 봉건제도를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불교는 봉건시기 우리나라에도 들어와 봉건지배계급의 사상적 지배도구로 이용되면서 인민대중의 계급의식과 투쟁의식을 마비시키고 우리나라의 문화와 과학발전에 막대한 해독을 깨쳤다.

동방에 퍼져 있는 세계 3대 종교의 하나, 불타(부처)석가모니의 교리를 따르며 그를 교주로 숭상한다.

고대인도에 노예소유자 사회가 완성되던 역사적 환경에서 기원전 6세기경에 인도의 갠지즈강 중류지방에서 생겨나 인도 전국과 아세아에 급속도로 퍼져 오늘에 이른다. ‘불타’(석가)는 범어로 ‘진리를 깨달은 자’또는 ‘슬기 있는 자’라는 뜻이다.

‘인간을 고뇌에서 해방’하며 자비심을 베푸는 것을 이념으로 하고 속세를 떠나 도를 잘 닦으면 ‘극락세계’에 이른다고 설교한다. 여러 유파로 갈라져 있다.

부처

불교를 믿는 사람들이 종교미신적으로 숭배하는 우상.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자를 이르는 말.

불경

불교의 반동적인 교리를 적은 글이나 책.

불교의 경전.

극락세계

인간세계에 대비하여 죽은 뒤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계라는 뜻으로 인민들을 착취사회의 비참한 현실에서 외면하려는 목적으로부터 꾸며낸 가상적인 세상을 말한다.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곳으로 죽은 뒤에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극락정토가 있는 세계를 인간세계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불교를 미친 듯이 믿는 자로서 절에 속해 있으면서 불교를 퍼뜨려 착취계급에 복무하며, 종교의 탈을 쓰고 인민을 착취해 기생생활을 하는 자.

집을 떠나 절에 들어가 불교교리를 전문적으로 닦고 선전하는 사람.

 

중들이 부처를 놓고 종교의식을 지내는 집. 불교를 퍼뜨리는 거점으로 인민을 기만하고 그들을 착취하여 기생생활을 하던 곳.

중들이 부처를 놓고 종교의식을 지내면서 살고 있는 집. 불교를 퍼뜨리는 기본거점이다.

 

불교와 관련된 승려를 비롯한 사상가들은 대부분 관념론자로 단정하고 있고, 관념론 자체를 “종교를 철학적으로 각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현대조선말사전의 관점에서 92년판 『조선말대사전』의 불교 내지 종교 전반에 대한 부정적 견해가 시정되어 중립적이고, 객관적 입장에서 정의하려고 노력한 것을 철학사전의 기술 내용과 비교를 통하여 쉽게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극락세계에 대한 설명에서 “아미타불이 살고 있는 곳으로 죽은 뒤에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극락정토”라고 하여 불교의 교리적 설명을 충실하게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불교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를 바꾸어 객관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유물론적이거나 정치적 견해를 제거한 『조선말대사전』의 표현 내용은 크게 긍정적으로 변화하였다.

이후 2000년판 『조선대백과사전』을 보면 불교에 대해 “온갖 집착을 버리고 자기가 추구하는 지향을 억제하며 정신 수양을 통해 모든 것을 해탈하고 열반에 도달해야 한다고 설교한다.”라고 설명되는등 객관적 정의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사전류 이외 글에서의 불교에 대한 인식

사전류를 제외하고는 북한에서 불교사상이나 교리를 직접 다룬 글들이 거의 없다. 김일성과 김정일의 문헌들에서 간혹 불교에 대한 언급이 있으나 그 내용은 극히 초보적 수준이며 왜곡된 부분도 많다.

김일성 전집에서 “절간은 불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세운 것입니다. 불교교리에서는 사람이 부처를 믿고 《착한 행동》을 하면 죽은 다음 《극락세계》에 가서 행복을 누린다고 하였는데, 우리는 죽어서 《극락세계》에 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국땅 우에 인민의 지상락원을 건설하기 위해 힘껏 일하여야 합니다.”라고 불교를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김일성의 불교에 관한 언급에서는 불교보다는 불교 문화재의 가치를 중시하고 그 보존과 이용을 강조한 경우가 많다. 예컨대 불교의 유적과 유물이 우리 선조들의 훌륭한 건축술과 기교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든지, 그것들을 통해 근로자들에게 조국을 사랑하는 정신을 키워주는데 도움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하는 것 등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의 사찰과 스님(중)의 존재를 인정하도록 하고 있다.

김일성 전집에서 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동무들이 관음사에 있는 중을 봉건사회의 중과 같이 보아서는 안됩니다. 중들이 공화국의 륭성 번영을 위해 념불을 외우고 나라의 문화 유적과 유물들을 잘 관리한다면 그들을 나무람하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에서 고적들을 관리하기 위하여 관리인원을 따로 두지 않고 중들이 그것을 관리하게 하니 자기의 손때 묻은 고적들을 잘 관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중들에게 식량을 공급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적과 유물의 관리 임무가 불교와 스님들을 존재를 인정하고 있는 주요 이유가 되고 있으며, 식량 배급의 사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팔만대장경󰡕을 보존하고 그 번역과 해제본의 발간도 유물의 보관과 관리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보현사가 복원되면서 1984년에 팔만대장경 보존고를 만들었고, 1988년에 팔만대장경의 번역이 완료되어 󰡔팔만대장경 해제본󰡕으로 1989년에 발간되었다. 북한에서 이미 60여 개의 사찰을 복원했고 그 사업을 계속 추진하고 있는 것도 불교의 진흥이나 발전을 위한 것이기 보다는 문화재의 보존과 이용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말하자면 주체사상의 입장에서 북한 불교의 가치는 불교라는 종교보다는 그 종교가 관리하는 유적과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주체사상에서 대부분의 종교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불교도 압제와 예속에서 벗어나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척하려는 인간의 본성적 요구를 반영하여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불교가 봉건통치계급에게 이용되어 피통치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왜란 때의 승병들의 투쟁도 높이 평가하지만 불교의 부정적 측면도 자주 거론된다. 예를 들면, ‘부처’라는 말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용되는 경우가 많다. 곧 “부처”는 ‘일하지 않고 먹기만 하고 가만히 않아 있는 사람’을 비겨 이르는 말”로 조선말 대사전의 부처의 정의중 설명되는 부분도 있고, 김일성 또한 그런 의미로 부처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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