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에서 다큐 <60만번의 트라이> 상영과 '재일 조선학교 차별 실태와 한국사회의 역할' 토론회가 26일 열렸다. 이번 행사를 위해 일본에서 문옥선 학부모와 사노 미치오 교수가 방한했다. [사진제공 - 시민모임]

국회에서 특별한 시사회와 토론회가 26일 열렸다. 재일 오사카 조선고급학교 럭비팀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 <60만번의 트라이> 상영과 ‘재일 조선학교 차별 실태와 한국사회의 역할’ 토론회가 그것.

이날 행사를 위해 방한한 조선학교 학부모 대표 문옥선 무대연출가와 ‘고교무상화에서 조선학교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일본인 사노 미치오(佐野 通夫) 어린이교육호센대 교수를 이날 행사에 앞서 여의도 한 카페에서 만나 인터뷰를 가졌다.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며 민족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조선학교’는 일본 정부의 ‘고교 무상화 조치’에서 제외돼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고, 1945년 해방 전부터 일본에 거주해 ‘조선적(朝鮮籍)’이라는 특수신분을 대를 이어 유지하고 있는 조선적 재일동포들은 일본에서 괄시를 받는가 하면, 한국에서는 친북계로 낙인찍혀 입국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 처해 있다. 더구나 북한과 일본과의 관계도 나빠져 북한을 방문할 경우 일본으로 되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문옥선 연출가는 ‘우리학교’라는 애칭으로 불려지는 조선학교의 상황에 대해 “지역마다 학교들이 통합되고 있다”며 “최고 많던 시기에는 160개교 정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7,80개교 정도 밖에 안 된다”고 전했다.

사노 미치오 교수는 출산률이 낮아지고 조선적 동포들의 국제결혼(일본인과의 결혼)이 늘어난데다 일본사회 진출 기회 문제 등으로 인해 조선학교 학생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진단하고 “일본 사회가 조선학교를 학력으로 인정하지 않는” 문제를 주요하게 꼽았다.

문옥선 연출가는 “조선대학교도 정규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내 딸은 외국의 회계사 자격 국가시험이 있는데, 조선대학을 졸업했지만 못 봤다”며 “결국은 이중으로 돈도 들고, 시간도 걸리고, 공도 많이 들게 된다. 지금 그런 상황이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2010년부터 적용된 고교무상화 조치에서도 민족학교는 제외돼 있고, 지방자치단체가 교부하는 보조금도 각종 이유로 거의 끊기다시피 했다. 심지어 “어떤 데서는 보조금 예산이 있기 때문에 이걸 주면 (우익들이) 시위해서 말이 많이 나오니까 그 돈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납치 관련 책을 읽으라고 보내온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항의해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도쿄에서 금요행동을 전개하고 있고, 여기에 학부모들도 가세하고 있다. 오사카에서는 매주 화요일에 집회를 하는 등 일본 각지에서 정기적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여기에 힘을 보태기 위해 이번 국회 행사를 공동주최한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  등 국내 관련 단체들은 매주 금요일에 ‘금요 행동’을 개시하기로 25일 운영위회의에서 결정하기도 했다.

사노 교수는 “6천명이나 모여 집회와 시위도 했는데, 요새 일본에서 6천명이나 모이는 집회나 시위는 거의 없다”면서 “그렇게 큰 시위나 집회가 있어도 일본 신문은 전혀 그걸 보도하지 않는다”고 일본의 언론지형을 지적했다.

일본의 아베 정부가 국제사회의 권고까지 무시해가며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조치에서 제외시키고 있는 배경에 대해 사노 교수는 “지금 아베 정권의 자세는 ‘전쟁한다’는 그런 자세”라며 “역시 남북통일이 답”이라고 조언했다.

문 연출가도 최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혐한(嫌韓) 발언’ 등에 대해 “이런 것은 극단적 예이지만, 지금 일본사람들 머리 자체가 모두가 그러하다”며 “언론이 결국 그렇게 조장하고, 아베가 뒤에서 조종”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문 연출가는 “한국 사람들이 우리 재일동포들을 일본 사람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학교>와 <60만번의 트라이> 같은 영화도 그렇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학교와 우리 동포를 알아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노 교수는 “일본에 있는 조선인, 그들이 자유롭게 (남북을) 왔다갔다해야 한다”며 “한국사회에 그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문 연출가는 “제일 기쁜 것은 ‘일본 땅에서 민족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라며, 마지막으로 “언젠가 70년, 50년, 떠나간 세월을 한데 모아서 한국의 교과서에 우리 재일동포가 옳은 인식으로 실리는 날이 오길 기다린다”는 동료의 글을 빌어 자신의 심경을 대신했다.

다음은 26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문옥선 연출가와 사노 미치오 교수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는 사노 교수의 유창한 조선어 실력 덕에 한국어로 진행됐으며, 시민모임 관계자들이 배석했다.

학생은 줄고 학비 부담은 크고

▲ 국회 재일 조선인 관련 행사 참가차 방한한 문옥선 연출가와 사노 미치오 교수와 26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인터뷰에는 ‘우리학교와 아이들을 지키는 시민모임’ 관계자들이 배석했다. [사진 - 조천현]
□ 통일뉴스 : 최근 나고야조선초급(초등)학교를 방문했는데, 인근 세 초급학교가 통합해서 하나의 학교가 됐다고 들었다. 재일 조선학교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듣고 싶다.

■ 문옥선 : 나고야 만이 아니라 교토도 3개의 초급학교가 있었는데 한 개가 됐다. 지역마다 학교들이 통합되고 있다. 최고 많던 시기에는 160개교 정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7,80개교 정도 밖에 안 된다.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학생 수도 줄어들어 아무래도 운영하기 어려워져 많이 통합해 나가고 있다.

□ 통일뉴스 : 재정적으로 어렵고 학생 수가 줄었다고 했는데, 학생 수가 줄어든 이유는?

■ 사노 미치오 : 일본도 마찬가지로 출산율이 낮아졌다. 옛날에는 형제가 다섯, 여섯 있었는데 요새는 하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학교에 다니는 학생 숫자가 적어졌다.

그 외에 이전보다 일본 사람과의 국제결혼이 늘어났다. 아마 70년대까지는 거의 일본 사람과 결혼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는데, 요새는 80%가 일본사람과 결혼한다.

아이들을 일본 사회에서 조선 사람으로서 키울지, 일본 사람으로 키울지 생각하면 국적도 일본 국적이고, 역시 일본사회에서 살아야 하니까 일본학교에 다녀서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 문옥선 : 또 하나의 원인은, 우리 동포들 자체가 사대주의랄까 역사적인 비굴성이 있다. 계속 멸시를 받고 살아서 아이들에게는 그런 슬픔을 안겨주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다.

지금 엄마 세대들이 우리학교를 다녔을 때는 아주 차별이 심했고, 그런 고생을 아이들에게는 시키고 싶지 않다는 조금 잘못된 부모 심정으로 자녀를 일본 학교에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학교가 지금은 아주 좋아졌지만, 그래도 일본사회에 나가는 취업률은 역시 지금도 어렵다. 지금은 그나마 열려있는 데도, 동포들이 그렇게 생각해서 처음부터 일본학교에 넣는다.

■ 사노 : 일본 사회가 조선학교를 학력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예를 들면 중급(중)학교를 졸업해도 일본 고등학교에 들어갈 수 없다. 대학도 조금은 개선됐지만 역시 같은 상황이다.

물론, 조선대학교도 있지만 거기에는 다 있는 것이 아니니까, 일본에서 대학 간다면 중학교, 고등학교부터 일본학교에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 문옥선 : 극단적 예로 우리학교 학생들이 고급(고등)학교를 졸업해도 일본학교의 고졸 인정시험을 쳐야 한다. 그러니까 고급부 졸업 정도의 실력을 인정받는 시험이다. 그건 고급학교를 다니지 않은 일본 사람들이 치는 시험인데 우리 아이들이 그런 것을 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은 대학 문호가 많이 열렸지만 국립대학도 못 들어간다. 결국 정규학교로 인정이 안 돼 이중삼중으로 고통받고 있다. 인정시험을 안 거치려는 학생들은 외국계의 고등학교에 돈으로 입학해서 거기서 졸업증을 받아야 인정을 받을 수 있다.

■ 사노 : 그런데 옛날에는 그 시험도 볼 수 없었기 때문에, 고등학교 통신제나 야간고등학교에 재학하다가 그 시험을 봤다.

■ 문옥선 : 그리고 또 하나는, 조선대학교도 정규학교가 아니기 때문에 내 딸은 외국의 회계사 자격 국가시험이 있는데, 조선대학을 졸업했지만 못 봤다. 졸업하고 또 다른 대학에 들어가서 학점을 받아야 시험을 칠 수 있다. 결국은 이중으로 돈도 들고, 시간도 걸리고, 공도 많이 들게 된다. 지금 그런 상황이다.

□ 질문 : 이런 추세가 앞으로 특별한 상황 변화가 없으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 하나?

■ 사노 : 우리가 일본 정부를 고쳐서 민족학교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도록 하지 않는 한 상황은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 특히 경제적 부담도 크다고 말했는데, 학비를 국가가 지원해주지 않으면 학부모들이 다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학비에 대한 체감도가 어떤가?

■ 문옥선 : 부담이 크다. 나는 딸이 셋인데, 지금은 둘이 졸업해서 그래도 나은 편이다. 셋이 학교 다닐 때는 내가 번역 등으로 1년간 번 돈을 죄다 학교에 바쳐서 통장에 ‘0’이 찍혀 있기도 했다. 어떤 날은 학비를 내고 나면 지갑 속에 천 엔밖에 없는데 다섯 식구가 3일을 버텨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리고 학교의 시설이 변변치 못하니까 특히 수영 같은 경우, 일본학교에는 다 수영장이 있는데, 우리학교에는 없어서 따로 보내야 한다. 그러니까 학비 외에도 또 돈이 들고, 시설도 좋지 못하니까 시설비도 들고, 돈이 많이 든다.

□ 질문 :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학교에 보내는 이유는?

■ 문옥선 : 따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우리학교를 졸업해서 정말 우리학교는 단지 학교가 아니고 ‘우리나라’ 노래대로 ‘고향’이다.

■ 사노 : 『조선학교 이야기』라는 책에 신가미 씨라는 분이 쓴 글이 있는데, 자기는 일본학교 출신이어서 ‘애들을 왜 조선학교 보내느냐’ 고민도 있었다는 것이다. 왜 일부러 돈까지 내면서 학교에 보내는지.

그러나 일본학교에 가면 괴롭힘이나 차별도 있을 수 있으니까, 일본학교 다니는 조선 아이는 그런 고민도 아주 많으니까.

■ 문옥선 : 우리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똑똑하다. 밖에 나가면 차별도 있기 때문에 집단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자기들이 문제를 찾고 자기들이 어려움을 뚫고 나간다. 인사성도 바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시 우리말이 좋다. 아무래도 우리말은 우리학교에서밖에 배울 수가 없다. 또 어떤 동포들은 ‘초급학교만 우리학교 보내면 우리말은 쓸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우리말에는 말만이 아니고 그 속에 여러 가지 것들이 다 깃들어 있다.

6천명 집회해도 일본 언론 보도 안해

▲ 사노 미치오 교수는 일본인으로서는 드물과 재일 조선인 문제에 대해 일관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의 조선어 실력은 인터뷰에 무리가 없는 정도였다. [사진 - 조천현]
□ 질문 : ‘고교무상화 제외 조치’에 대해서 강력한 반대운동을 전개해 온 걸로 아는데, 현재 상황이나 성과는 어떤가?

■ 사노 : 아, 어렵다. 우리가 강력한 운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지만, 일본 사회 전체가 지금 아주 어려운 상황이다.

31년째 대학에서 근무하는데, 내가 원래 대학 교원이 될 때부터 조선 문제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강의에서 여러 이야기를 해왔다. 물론 학생들이 내가 강의하는 것을 다 이해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교수가 그렇게 말하니까 반발이 없었다. 그런데 2년 전부터는 학생들이 직접적으로 반발을 한다.

리츠메이칸 대학이나 히로시마 시립대학에서는 한국인 강사가 했던 수업에 대해서 학생들이 <산케이신문>에 말해서 그 강사들이 아주 곤란을 당한 일이 있다.

요즘 일본사회 전체가 아주 어려운 상황이니까, 예를 들면 지금 일본 중의원 선거가 있는데, ‘차세대당’이라는 우익정당은 ‘생활보호는 일본인에 한정한다’는 정책까지 내걸고 나온 상황이다.

이런 시대니까 고교무상화 배제라는 것도 생겼지만, 11월 14일 (중의원) 선거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 관심이다.

■ 문옥선 : 2010년에 우리 딸이 고급학교 1학년이었는데, 그 해에 고교무상화가 시행됐다. 우리는 처음 1월에 고교무상화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됐을 때는 아주 기뻐했다. 그때는 조선학교도 포함돼 있었으니까.

‘아, 이걸로 조금은 가슴을 펼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고급부 입학하니까 우리학교만 제외돼 있었다. “무상화 하라!” 그렇게 요구하면서 3년을 보냈다. 그 사이에 보조금도 끊어졌다.

(지자체) 보조금이 뭔가 하면 도쿄도 그렇고 오사카도 계속 조건을 내온다. 우리학교에 관해서 ‘이걸 하면 보조금 내주겠다. 이걸 하면 내주겠다’. 그래서 우리학교 측에서는 응했다.

예를 들면 도쿄 같은 곳에는 체육관에 큰 강당이 있는데, 그걸 어른들도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어른들은 일체 사용하지 못하게 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렇게 했는데도 결국 보조금이 끊겼다.

오사카도 이북의 지도자 초상화를 내리라고 해서 내렸다. 그 후에도 여러 가지 조건을 내놓아서 그것에 응했는데도 내주지 않는다. 보조금을 끊는다.

그리고 어떤 데서는 보조금 예산이 있기 때문에 이걸 주면 (우익들이) 시위해서 말이 많이 나오니까 그 돈으로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납치 관련 책을 읽으라고 보내온다. 그럴 정도다.

그래서 지금 조선대학교 학생들이 도쿄에서 일어났다. 금요행동이라고 하는데, 아버지 어머니들이 같이 하고 있다. 그리고 오사카에서는 매주 화요일에 하고, 히로시마도 그렇고 다른 데서도 정기적으로 그런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이것도 실은 큰 힘은 아니고 미력이다.

■ 사노 : 우리도 6천명이나 모여 집회와 시위도 했는데, 요새 일본에서 6천명이나 모이는 집회나 시위는 거의 없다. 그렇게 큰 시위나 집회가 있어도 일본 신문은 전혀 그걸 보도하지 않는다.

■ 문옥선 : 그 시위가 있기까지 학교 졸업생 한 사람이 계속 문부과학성 앞에서 플래카드 들고 일인시위를 해왔다.

□ 질문 : 계속 시위도 하고 정기 행동도 하고 있는데, 사법 절차도 진행 중인 걸로 안다.

■ 사노 : 그렇다. 소송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요새 문무과학성과 교섭하면 대답은 “지금 재판하고 있으니까 판결 내리면 (협의)하자”는 거다.

■ 문옥선 : 학생들이 원고가 돼서 재판을 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생들을 그런 데에 서게 해 부모로서 아주 미안하다. 왜 아이들이 그렇게까기 해야 하나?

현재 대학생들이 원고다. 소송은 작년에 고등학교 2,3학년에 재학하는 학생만으로 원고를 구성했다. 공부하고 동아리 활동 다 하면서 재판 가서 발언도 하고 아이들이 상상 못한 경험을 하고 있다.

한국 사람들, 재일동포를 일본 사람으로 알아

▲ 본인은 물론 딸 셋을 조선학교에 보낸 문선옥 연출가는 조선학교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사진 - 조천현]
□ 질문 : 국제사회의 권고도 무시하고 아베 정부가 계속 고교무상화 제외 조치를 고수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 문옥선 : 아베가 머리가 나빠서 그렇다. (웃음)

■ 사노 : 지금 아베 정권의 자세는 ‘전쟁한다’는 그런 자세다. 국제적인 협력 또는 세계 평화가 아니고 ‘우리가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는 것이 아베정권의 목표니까 당연히 ‘국제사회가 뭐라 해도, 우리는 우리나라 식으로 간다’는 것이다.

나쁜 선조들처럼 명치시절의 못된 짓을 다시하려 한다. ‘조선도 우리 식민지’로 해보겠다는 것이다. (아베 총리가) 할아버지의 영화를 자기도 누리고 싶어하나 보다.

□ 질문 : 현재 여러 노력을 하고 있는데, 실제로 고교무상화가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 특히 한국에 있는 동포들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 사노 : 역시 남북통일이 답이다.

■ 문옥선 : 내가 한국에 와서 느끼는 것도 그렇고, 내가 영상 번역을 하면서 봐도 한국 사람들이 우리 재일동포들을 일본 사람으로 알고 있다. 일본에 있으니까 응당 일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우리학교>와 <60만번의 트라이> 같은 영화도 그렇고,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학교와 우리 동포를 알아줬으면 한다.

어떤 분이라도 일본에 와 우리학교를 찾아와 주면 한눈에 반한다. 아이들을 보면 한순간에 다 녹아난다. 내가 ‘몽당연필’ 사업을 같이 하고 있어서 잘 아는데, 그분들이 오면 완전히 아이들에게 반한다. 그래서 중독처럼 몇 번 계속 오게 된다.

정말로 한국 사회에서 많이 알려서 인식을 가져줬으면 한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경위는 일제시기에도 있지만, 나는 한일조약이 아주 크다고 생각한다. 그 때 박정희 대통령이 역사적인 배상 문제를 돈으로 다 해결했지 않느냐. 다르게 말하면 우리 동포들을 돈으로 팔았다. 그때 실은 한국사회에서는 우리를 버렸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는 생각 안 하고, 우리들은 우리들 대로 살아갈 수 있고 살아가고 있다.

그렇지만 거기서부터 잘못됐기 때문에 내년이 한일조약 50돌이니까, 조금이라도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줬으면 한다. 조국광복 이후 70년 동안 우리는 완전히 떨어져 있다. 서로서로 접근할 수 있으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 질문 : 고교무상화를 해결하기 위해서 남측 동포들이 도울 수 있는 길은?

■ 문옥선 : 우리학교 학생들을 한국에 불러 달라. 내가 12년 전에 재일동포 예술단으로 학생들 공연을 연출하러 왔다. 그때 동포들, 한국 시민들과 많이 접촉했는데 우리 아이들을 모르고 있었다. 직접 만났을 때 그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나는 눈으로 보아 잘 알고 있다. 그때 미디어에도 많이 나갔다.

우리학교 예술단 초청공연이나 학교끼리의 교류도 있을 수 있고, 국회의원 같은 높은 분들이 우리학교를 직접 찾으면 화제가 될 것이다. 아마 아주 어려울 수도 있지만, 상황이 좋게 되면 그런 방식도 가능할 것이다.

■ 사노 : 12년 전에는 그런 것도 할 수 있었는데, 요새는 일본 정부가 재일조선인을 한국적과 조선적으로 나눠서 조선적 사람은 한국에 들어갈 수 없게 돼 있다. 이런 것을 고쳐야 한다.

내가 가르치는 대학에서, 한국에서 실습하는 유학 기회가 있다. 그런데 작년 2명, 올해 1명이 조선적이어서 한국에 입국할 수 없었다.

□ 질문 : 현 상황에서는 우리학교 학생들의 국적이 조선적이라 초청해도 입국할 수 없는 상황 아닌가?

■ 사노 :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이번에도 문 선생이 다행히 한국여권을 가져서 올 수 있었는데, 이런 역사적 기회에 오고 싶어하는 동포들이 많지만 올 수 없다.

■ 문옥선 : 오고 싶어한 어머니들이 많았는데 못 왔다. 지금 고치려고 해도 시간이 너무 걸리고 한국 국적을 주지 않는 형편이다.

■ 사노 : 한국 국적도 1년짜리 여권 밖에 안 준다고 들었다.

■ 문옥선 : 그럴 수도 있다. 왜냐면 조선적을 가진 사람들은 한 번도 못 들어왔기 때문에 이(남)쪽에 호적을 두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결국 이쪽에 온 적이 없으면 임시여권, 1년짜리 밖에 받을 수 없다.

그리고 조선적으로부터 한국 국적으로 바꾸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나마 허가가 안 나오는 사람들도 많다. 영사관이 아주 나빠서 그런 결과도 말 안한다.

북.일협상 “실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

▲ 사노 교수는 일본의 군국주의화 세태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사진 - 조천현]
□ 질문 : 최근 일본에서 새로운 문제로 ‘혐한(嫌韓) 발언’,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 등이 대두되고 있다고 들었다. 이같은 적대행위가 실제로 체감하기에는 어떤가?

■ 문옥선 : 도쿄 신오쿠보에 가면 계속하고 있다가 최근에는 없어졌다. 한두달 정도는 잔잔해졌다. 일본에서 강하게 비판하고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사카 즈루하시에서는 계속 하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에서 동포들이 제일 많이 사는 곳이다.

이런 것은 극단적 예이지만, 지금 일본사람들 머리 자체가 모두가 그러하다. 말은 안하지만 결국 재일동포들에 대해 싫어한다. 언론이 결국 그렇게 조장하고, 아베가 뒤에서 조종하니까.

■ 사노 : 일본 서점에 가면 그런 책이 아주 많이 있다. 조선이나 한국을 제대로 이해하려고 하는 그런 우리가 만든 책은 거의 없고, ‘한국은 바보다’ 류의 책만 많다.

■ 문옥선 : 정말로 옛날에 ‘한국은 낮으니까 우리들이 장악해야 한다’는, 옛날로 돌아가는 분위기다. 영화는 계속 전쟁영화 일색이다.

■ 사노 : 대학 속에서도 학생들이 아시아에 대한 역사 이야기를 하면 반발한다. 아시아에 관한 역사는 대학교원들이 다 그렇게 말하는데도 학생들의 반발이 아주 크다고 한다.

어떤 중국 교수 밑에는 중국 유학생 밖에 없다고 한다. 일본 학생이 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한국이나 조선만이 아니라 중국에 대한 혐오감도 아주 크다.

□ 질문 : 아베 정부가 북한과 ‘납치자’ 문제를 매개로 협상에 나서고 있는데, 북.일협상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그리고 그 결과가 재일 조선인 사회나 조선학교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나?

■ 문옥선 :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다. 조(북).일 관계도 2,3일 전에 차갑게 되었고, 결국은 그것은 정치적 수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사이좋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는 속셈을 다 볼 수 있으니까 나는 실은 기대하지 않고 있다.

이번에 공화국(북)에서 일본에 있는 유골을 받으러 오겠다고 두 노인이 신청했는데 동행자들은 허가가 안 나왔다. 사실상 오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형편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기대 안한다. 아베 총리가 좀더 머리 좋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브레인들도 군국주의자 많다.

■ 사노 : 그런 사람에 투표하는 일본 사람들이 많으니까 문제다. 오사카의 하시모토 시장은 지금 나쁜 쪽으로 머리가 좋지만, 역시 많은 오사카 시민들이 투표한다. 아베 총리는 일본에서 간선이니까 직접 투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역시 자민당에 투표해서 아베 정권을 유지하려는 일본 국민들이 많다.

■ 문옥선 : 국민성도 있다고 본다. 언론이 말하는 대로 100% 믿는다. 언론이 다 조종돼 있다. 유엔에서 나왔던 것 중 일본에 나쁜 것은 하나도 보도 안한다. 일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른다.

□ 질문 : 일본 내에서 이런 상황에 대해 홍보하기가 어려운 건가?

■ 문옥선 : 그렇다. 양심적인 일본 분들이 아무리 힘쓰더라도 결국 언론의 힘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변화를 무서워한다.

“일본 땅에서 민족을 지켜줘서 고맙다”

▲ 문선옥 연출가는 남측 단체들의 조선학교 지원에 깊은 사의를 표했다. [사진 - 조천현]
□ 질문 : ‘몽당연필’을 비롯한 한국에서 민간 차원의 지원운동이 크지는 않지만 진행되고 있는데, 어느 정도 힘이 되나?

■ 문옥선 : 참으로 큰 마음의 힘이 되고 있다. 마음이 든든해진다. 몽당연필이 3년째 공연했는데, 그때마다 관객들이 보통이 아니다. 도쿄 공연 때는 못 들어가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몽당연필 공연과 성원들을 아이들이 좋아하고 부모들이 고맙게 여기고 있고, 우리 동포들 속에서는 몽당연필이 짱이다. 올해는 히로시마에서 했는데, 히로시마 아이들이 내년에도 몽당연필 공연을 꼭 해달라고 직접 교장실에 들어가서 말했다고 한다.

한 가지만 몽당연필 회원들에게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 있다. 뭐냐면, 우리들 보고 자꾸 “미안하다. 미안하다”고 한다. 나는 “그 말 두 번 다시 하지 말라. 회원들이 왜 미안하다고 해야 하나?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것은 정부고, 회원들이 몰랐던 것은 죄가 아니고 지금부터 알면 좋은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고맙다”고 말한다.

제일 기쁜 것은 “일본 땅에서 민족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는 것이다. 그게 정말로 가슴에 울린다.

□ 질문 : 사노 교수는 일본인인데 조선학교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계기나 배경이 있나?

■ 사노 : 그 이야기를 하려면 ‘왜 내가 교육학을 하는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내가 소프트 테니스 활동을 했는데, 대회가 도쿄 아라카쿠 공립중학교에 있었다. 학교에 들어갈 때 야간중학교를 봤다. 일본에서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인데 왜 야간중학교가 있나 의아했다.

대학을 졸업하며 뭘 할까 생각하다 교육학을 공부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야간중학교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학을 하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그 당시 야간중학에 있는 분들이 재일조선인 할머니들이 많았다. 왜냐면 식민지 시절에 조선인들이 교육을 받지 못했고, 특히 여성은 더 교육을 못 받았다.

70년대 당시 재일 조선인 할머니들이 많아서, 일본의 식민지 교육을 공부해야 했고, 조선어와 조선 역사도 배워야 했다.

당시에는 조선어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도쿄외대에 2년제 조선어과가 생겼고, 주임교수가 외대 학생은 아니지만 그 수업에 나와도 된다고 해서 외대에 가서 공부했다.

□ 질문 : 그런 계기가 있었더라도, 현재까지 재일 조선인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흔한 경우가 아닌데, 사노 교수를 이같이 이끌어온 힘이 뭐였다고 생각하나?

■ 사노 : 다른 건 못하지 않나?(웃음) 하나의 배경으로는 내가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다. 80년대 기독교청년단 교류도 있었다. 그냥 기독교 말씀에 나오는 ‘작은(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다.

□ 질문 : 다큐 <우리학교>에 이어 <60만번의 트라이>가 상영되는데 여기에 대한 소감과 기대가 있다면?

■ 문옥선 : 영상이라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디 가도 많은 사람들을 동원시킬 수 있고, 그걸 보면서 우리학교를 도와줄 수 있고, 그걸 본 사람들이 결국 ‘몽당연필’이나 ‘뜨겁습니다’ 그런 곳에 회원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나 한국 시민들이 우리학교를 알아주는 한걸음으로 될 수 있어 기대가 크다. 이어서 우리학교에 관한 작은 영화도 계속 나오고 있다. 도쿄 권투부를 소재로 한 ‘울보 권투부’라는 짧은 다큐도 있다. 계속 그렇게 관심 갖게 해주는데, 기쁘고 고맙고 기대가 크다.

■ 사노 : 특히 두 분의 감독, 김명준 감독과 박사유 감독은 계속 조선학교와 함께하고 촬영해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부끄러운 것은 한국에서 이렇게 극장상영을 하는데 일본에서는 ‘자주 상영회’로 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이런 영화를 한국처럼 큰 극장에서는 상영하지 않는다.

□ 질문 : 이번 방한 계기에 꼭 강조하거나 하고 싶은 말은?

■ 사노 : 일본에 있는 조선인, 그들이 자유롭게 왔다갔다해야 한다. 그것도 해방 후 65년까지는 일본에 있는 조선 사람은 남북 양쪽에 다 못 갔다. 혹시 계속 교류가 있었으면 재일 조선인 문화도 더 활발하게 될 수 있었을 것이다.

65년까지 폐쇄되고, 그 후에도 조선인들이 거의 갈 수 없었다. 역시 70년 전에 여기서 떠난 사람들이니까 자유롭게 왕복할 수 있으면, 재일 조선인 문화도 활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에 그럴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문옥선 : 이번에 떠나올 때 갑자기 결정됐는데, 다른 어머니회의 회장들로부터 격려의 인사를 메일로 많이 받았다.

어떤 어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언젠가 70년, 50년, 떠나간 세월을 한데 모아서 한국의 교과서에 우리 재일동포가 옳은 인식으로 실리는 날이 오길 기다린다”고 “그 말을 해달라”고. 나는 그 말에 아주 감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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