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문석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지난 9월 3∼5일에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북-중 정상회담을 위해 북한을 방문하였다. 장쩌민 주석의 방북은 개인적으로는 1990년 3월(동유럽 사태에 공동대처하기 위해)에 이어 두 번째이지만, 중국 최고지도자로서는 1992년 4월 양상쿤 국가주석이 방북(한-중 수교를 통보하기 위해)한 이래 9년만이었다.

장 주석의 방북은 2000년 5월과 올해 1월에 이뤄진 김정일 위원장의 중국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을 취하였지만 2000년이래 세 차례나 정상회담을 가질 만큼 북-중간에 서로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번 장 주석의 방북기간 중 김 위원장과 3일(확대정상회담과 단독 정상회담)과 4일(정상회담)의 두 차례 정상회담을 가졌으며 일반의 추측을 뒤엎고 역시나 공동성명은 발표하지 않았다. 사실 공동성명을 발표하지 않는 것은 1970년 4월 저우언라이 총리의 방북 때를 제외한다면 북-중 정상회담의 관행이었다. 장 주석이 방북에 앞서 밝혔듯이 이것은 즈지런(自己人: 한 가족이기 때문에 문서로 남길 필요가 없다)의 정신을 지킨다는 의지이며 그 만큼 북한과 중국이 전통적인 `혈연적` 관계에 있음을 애써 강조한 것이다.

한편, 장 주석과 김 위원장이 지난 7, 8월에 러시아를 각각 방문해 푸틴 대통령과 결속을 다졌으며 이번의 북-중 정상회담으로 북-중-러 북방 3각 관계 구도의 형성을 강하게 추측케 하였다. 이로써 중국은 미국에 대한 MD반대를 위한 압박카드를 마련하였으며 북한도 남-북 대화와 북-미 대화에 나설 수 있는 정지 작업을 마무리한 것으로 평가된다. 사실 북한이 대외관계상 중요한 사태를 결정할 때는 중국과 사전 협의하여 왔던 것이 그동안의 북-중 관계상의 전통적인 관례였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공동선언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각종 루트를 통해서 확인되고 있는 정상회담의 의제는 다음과 같다. 먼저 양국 관계의 가장 큰 틀이라고 할 수 있는 `북-중 친선관계의 계속적인 발전`을 약속함으로써 향후에도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북한의 `로동신문`(9월 8일)도 사설을 통해서 "조-중 친선 관계발전에서 역사적인 계기"라고 높이 평가했다.

둘째, 장 주석이 남북한 정상회담을 `우회적으로` 촉구했다는 것이다. 장 주석은 `남북한 정상회담이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와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유리하며 자주적인 남북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하여 김 위원장의 답방을 권유하였다. 중국의 권유에 대해 북한의 공식반응은 없었으나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밝은 미래를 위해 남북관계를 더욱 공고히 할 것"을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 답방 시기는 정확하지 않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은 것으로 보인다. 사실 작년 5월에도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장 주석은 남북정상간의 만남을 권유했었고 6월에 남북정상회담이 곧바로 이루어졌다.

셋째,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방침을 거듭 표명했다는 것이다. 사실 북한은 1999년 9월에 북-미관계 개선에 따라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조치를 표명한 이후 현재까지 지켜 왔었다. 그러나 정상회담 이후인 9월 10일에 일본의 로켓 H2A 발사(8월 29일)에 대해 북한이 유예방침을 재고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북한 미사일 문제는 불투명한 상태가 되었다. 오히려 이것은 북-미-일 3자간의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음을 보여준다.

넷째, USA Today(9월 4일자)에 따르면, 지난 3일 장 주석이 북한에게 중국의 선례를 따라 경제를 대외개방하라고 촉구했다고 한다. 진위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않지만 개연성은 매우 높다. 왜냐하면 이미 `시장 사회`인 중국의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이 중국식 경제개방을 실시함으로써 북한을 `관리`하기가 손쉬워진다는 점이다. 아마도 이것이 북한에 대한 지원과 경제협력을 계속 제공하는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적어도 중국의 개혁개방에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했던 측면도 존재한다. 김 위원장은 중국의 3대 대표론(선진사회 생산력의 발전요구, 선진 문화 발전 방향, 광대한 인민의 근본이익 대표)으로 표방되는 중국식 시장 사회주의를 "중국의 실정과 국민의 염원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지지함으로써 이른바 모델로서의 `중국식 노선`에 여운을 남겼다.

마지막으로, 북한에 대하여 양곡, 석유, 화학비료 등을 무상으로 지원할 것과 에너지 산업, 과학 기술 지원, 나진선봉지구 개발 등 경제지원과 협력을 약속하였다. 그 규모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수백만 달러에서 수천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원조 계획은 서방 세계에도 영향을 미쳐 대북 지원에 대한 분위기를 고조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대체로 성공리에 끝났다. 이번 북-중 정상회담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북-미와 남-북 대화를 미뤄왔던 김 위원장이 고통스러운 정책결정 과정에 대한 `장기간 검토`가 끝났음을 보여주었다.

그리하여 중국이라는 파워풀한 존재의 탄력을 받아 북한은 내부 정책노선의 정리뿐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자신감을 갖고 임할 조짐이 보인다. 물론 중국도 미국 MD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북한과 공유하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실험 유예 방침의 재확인을 통해 대미압박용 카드를 챙긴 것으로 판단되지만, 결국 이번 북-중 정상회담은 한반도 긴장완화에 총체적으로 도움을 주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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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및 저서

현재 한국정치연구회 연구위원
학력 : 성균관대 정치학 박사
박사논문 : "사회주의 국가의 노동정책 : 소련, 중국, 북한의 생산성의 정치", 1999
경력 : 현재 성대, 외대, 충대, 인하대 강사 ; 현재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원
저서 : 붉은 공장의 꿈(2001), 노동의 세기(200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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