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발생한지 6개월이 가까워 오던 지난 10월 3일, 진도에서 열리는 문화제 참석을 위해 흥사단 회원들과 동행했다. 진도의 예술인들과 진도푸드뱅크센터 등 지역단체들이 주관한 세월호 피해자 유족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음악회였다.

올해 아마도 가장 큰 사건으로 기록될 세월호 참사. 아니 어쩌면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 중에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심각한 파장을 낳는 사건이 되지 않을까. 왜 하필 진도 인근에서 이러한 사고가 났었던 것일까. 어떤 시대적인 상징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꼬리에 꼬리를 잇는 물음을 가지고 진도를 찾았다.

3일 세방낙조에서의 행사에는 진도 예술인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클라식, 대중음악, 전통민요, 무용 전문가들이 모였다. 바다와 섬이 내려다 보이는 탁 트인 야외무대. 바람은 거칠었고 날씨는 변화무쌍했다. 공연 중에는 마치 세월호 희생자들의 넋이 음악회에 참석이라도 한 듯, 바람이 잦아들더니 공연이 끝나자마자 세차게 휘몰아치며 바다가 울었다.

▲ 세월호 유족과 봉사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10월 3일 세방낙조에서 열린 음악제. 국악과 클라식, 무용과 시, 음악이 어울어진 행사였다. [사진 - 정연진]

▲ 클라식 기타와 바이올린의 열정적인 협연이 가장 큰 인기를 끌었다. [사진 - 정연진]
뒤풀이에서 살펴보니, 세월호 피해자와 유족 못지않게 세월호 사건 이후로 매우 힘들어진 진도 주민들 또한 위로가 필요한 것 같았다. 우리가 묵은 민박집은 음식점을 겸하고 있었는데 6개월간 개점휴업 상태였다고 한다. 팽목항은 그곳에서 40분이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는데(진도는 생각보다 무척 큰 섬이었다) 사람들이 진도 하면 팽목항만 떠올려서 진도 전체가 관광객의 발길이 뚝 떨어졌다고 한다.

절망의 바다 팽목항에서 희망을 지피는 사람들

밤 10시가 넘은 팽목항. 차가운 바닷바람이 을씨년스러운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둑을 따라 빼곡히 앉아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로 이 곳에 1천 명이 모이기는 두 번째라고 한다. 그날은 금요일 평일이라서 진도까지 오려면 근무시간을 조정했어야 할텐데도 전국에서 1천여 명이 모이다니...

팽목항은 아직도 울음으로 얼룩진 침묵의 바다였다. 스러져가는 생명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애끓는 안타까움과 죄스러움을 사람들은 서로의 온기로 녹여내고 있었다.

▲ 10월 3일 밤 팽목항에 감동의 물결을 선사한 강허달림 밴드, 노래와 추모 시낭송에 이어 이 날은 평소에 사회문제에 발언을 하지 않던 소설가 김훈까지 등장했다. [사진 - 정연진]

▲ 금요일인데도 전국에서 1천명이 팽목항에 모였다. [사진 - 정연진]
노래와 추모시가 연이어 등장하고, 딸아이가 언제든 ‘엄마’ 하고 금방 달려올 것 같다는 피해자 어머니의 떨리는 목소리에 친구를 그리워하는 어린 학생의 떨리는 음성에 모두들 눈물짓는다.

실종자를 기다리는 노란 리본이 바람에 나부낀다. 장기화된 수색기간. 크게 소리쳐 울 수 있는 기운마저 완전히 소진된 피해자 가족들. 노란 리본은 절망을 삼킨 바다 위에서 그들과 함께 흐느끼며 흐느끼며 나부끼고 있었다.

이름없는 이들, 힘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불행하지만은 않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절망을 넘어선 희망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에...

▲ 전국에서 1천여 명의 시민들이 모인 팽목항에 흐느끼듯 나부끼던 노란 리본들. 2014년 10월 3일. [사진 - 정연진]

세월호 참사 문제, 분단 모순에 눈뜨는 계기가 되어야

세월호 문제는 지금까지 사회문제에 별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이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미국에서도 지금까지 정치 사회 문제에 무관심했던 젊은 엄마들이 길거리로 나섰고 자신들을 스스로 조직했고 50개주 곳곳에서 집회와 정부의 무능력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었다.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가 빗발쳤지만 사법권력은 구조 실패와 국가 역량 부재를 따지는 대신 선박 소유주의 책임으로 문제를 축소하는데 열중했고, 진상규명은 특별법의 위헌 소지에 대한 논란으로 변질되었다. 끝까지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언론은 ‘종북’이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가 행정력의 부재, 무너진 국가공동체, 탐욕으로 얼룩진 엄청난 비리의 사슬. 참담하게 무너진 인간존중의 가치... 등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가 걸어온 길에 대한 총체적인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집요하게 묻고 따져야 한다. 국가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과연 누구를 위한 나라였나. 어떠한 가치를 존중하는 나라였나.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인가.

그러나 분단된 조국에서 세월호 문제의 진상이 온전하게 밝혀지는 날이 올 수 없을 것만 같다. 지금까지 분단이라는 구조는 수많은 비정상을 정상으로 둔갑시켜 왔다. 무엇이 문명이고 무엇이 야만인지, 무엇이 인간적이고 무엇이 비인간적인지, 판단할 수 있는 잣대와 원칙은 분단이라는 구조하에서 맥없이 허물어져 내렸다.

진상규명에 대한 요구마저 종북으로 몰아가는 비상식의 사회, 그 원인은 결국 어디에 있는 것인가. 상식과 이성이 통하지 않는 한국사회의 모순은 결국 어디에 있는 것인가. 바로 분단이라는 구조에 있다는 것에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특히 세월호 문제를 통해 비로소 한국사회의 모순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는 분단시대에 관한 성찰이 꼭 필요하다.

▲ 10월 3일 세방낙조 음악회 뒤풀이에서 관계자들과 진도 주민들에게 AOK 통일운동을 설명하는 필자. [자료사진 - 정연진]

역사의 길목에서 새로운 시대를 잉태한 진도

세방낙조의 음악제 뒤풀이에서 진도의 향토사학자는 우리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진도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곳’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고려의 개국 직전, 왕 건은 후백제의 견훤 세력을 진도에서 크게 물리쳐, 새로운 왕조를 개국하는 힘을 얻었다.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도 진도에서 왜구를 크게 물리쳐 민심을 얻고 새 왕조를 열 수 있는 뜻을 규합했다고 한다.

고려가 원나라의 침략을 받고 강화도로 왕실을 옮긴 무신 세력이 40년간의 투쟁 끝에 결과적으로는 원나라에 항복하고 말지만 삼별초군 또한 진도를 거점으로 끝까지 항전했다. 삼별초군은 남도해상의 ‘오룡국’이라는 나라 이름까지 정하고 필사항몽의 정신으로 최후까지 항전을 벌이다 장렬한 최후를 맞았다 한다.

해상무역에 활발했던 고려가 해상 실크로드를 드넓게 펼쳐 세계 속에 ‘코리아’라는 명칭을 알린 것도 이 곳 진도를 거점으로 한 것이었다. 그리고 올여름 극장가를 점령했던 ‘명량’해전을 빼놓을 수 없겠다.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300여척의 왜군 세력을 크게 무찔러 운명의 갈림길에서 우리 민족을 지켜낸 곳 또한 진도의 앞바다인 울돌목이었다.

▲ 진도읍 읍장을 지낸 오판주 선생님. 향토 시인으로도 맹활약 중이시다. ‘귀가’ 라는 시가 분단조국을 연상케 한다. [사진 - 정연진]
이처럼 우리 역사의 중요한 길목에서 의미심장한 역할을 해냈던 진도에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는 것은, 어쩌면 새로운 시대가 열려야 한다는 상징적인 암시가 아니겠는가. 분단시대를 종결하고 통일 시대로 가기 위한 전주곡을 이 시대는 원하고 있다.

분단시대에서 통일시대로 가는 주춧돌을 진도에서

서울로 돌아오자 짧은 진도 여행에서 만났던 읍장님으로부터 택배가 왔다. ‘진도의 바닷바람을 맞고 자란 양상추 맛 한번 보시라’면서 택배 상자 한 가득 수 십 개의 양상추를 서울까지 택배로 보내주신 게 아닌가. 수확한 것을 함께 나누고 베푸는 사람들, 아름다운 진도 사람들이다.

정말이지 진도 사람들은 아름다웠다. 예인의 고장답게 시인과 음악인들의 활동이 활발했고 일반 주민들도 시와 음악을 즐겼다. 공동체를 지키고 가꾸는 마음씨와 아름다운 자연을 벗하여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공동체는 어떠한 것인지 생각하게 해주었다.

▲ 세방낙조에 세워져 있던 시비 ‘나목’의 싯구. 진도 곳곳에 시비가 많이 세워져 진도 주민들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 정연진]
서양 여러 나라들이 수세기에 걸쳐 이룩한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기간 압축 성장을 통해 이루어낸 자랑스런 한국이지만, 그 속도전 이후에 어떠한 사회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해 보았던가.

날로 자살이 급증하여 청소년들마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직장인은 노후가 마냥 불안하고, 젊은이들은 아이 낳기를 포기한 사회. 아니 연애, 결혼, 아이갖기 이 세 가지를 모두 포기한다는 ‘삼포세대’라는 자조적인 표현마저 들린다. 이러한 사회를 우리는 원했던 걸까.

▲ 세방낙조에서 내려다본 진도의 앞바다.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구름은 시시각각 변했다. [사진 - 정연진]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문제들, 끝없는 탐욕과 비리, 공권력의 총체적인 무능과 국가의 부재를 과감히 개혁하여 상식이 통하고 생명이 존중되는 사회로 대전환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럴 수 있는 최적의 시기는 이미 물건너 간 것 같다.

정치권은 제 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 지지부진했고, 서민들은 세월호 때문에 경제가 더 망가지고 있다고 볼멘소리를 냈다. 탐욕과 비리의 사슬을 한 웅큼도 거두어내지 못하고 스스로 갇혀있다. 침몰하는 것은 세월호가 아닌 대한민국호인데도 모두가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있는 듯하다.
 
▲ 맑은 날씨에 산위에서 내려다본 진도 앞바다. [사진 - 정연진]
어린 생명들과 무고한 사람들의 희생이 진정으로 헛되지 않으려면, 세월호 참사에서 뼈저린 반성과 성찰을 통해 분단시대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찾아야한다. 시간이 지나 팽목항에 울음이 걷히더라도, 세월이 흘러 세월호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더라도, 우리 언제든 손잡고 진도를 찾아가자.

역사의 길목마다 진도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되새겨 보면서, 새로운 시대를 잉태한 진도에서 시커먼 분단의 먹구름을 거두어내고, 진도의 맑고 푸른 바닷빛으로 가득찬 희망찬 한반도를 향해 길을 찾아 나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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