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식적으로 소집하는 마지막 모임”

▲ 문익환 목사 가족이 17일 일본 요코하마 정경모 선생 자택을 찾았다. 선생은 내년 4월 5일 마지막으로 4.2공동성명 기념행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내가 나이 아흔 아닌가. 내년 4.2공동성명이 내가 공식적으로 소집하는 마지막 모임이 될 것 같아.”

눈썹까지 하얀 서리가 내린 구순의 정경모 선생은 일본 요코하마 자택을 찾은 문익환 목사의 셋째 아들 문성근 ‘국민의 명령’ 상임운영위원장 등 문 목사 가족들을 반갑게 맞으며 내년 기념행사 이야기부터 꺼냈다.

일본에서 망명생활을 해온 정경모 선생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주선해 1989년 3월 문 목사와 함께 방북했으며, 문 목사는 김일성 주석과 두 차례 회동한 뒤 허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과 공동명의로 ‘4.2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정경모 선생은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내년 4월 5일 도쿄 YMCA에서 4.2공동성명 기념행사를 추진하겠다고 강한 의욕을 보였다.

선생은 “6.15도 있고 10.4도 있고 기념해야 할 날이 많지만, 내가 직접 관여됐다고 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4.2공동성명을 기념해야 된다”며 “다른 것은 다들 권력자들끼리 했지만 4.2공동성명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게 목숨을 걸고 가서 김 주석을 만나고 낸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남북간 연방제 처음 나온 것이 4.2공동성명”

▲ 문익환 목사의 맏딸 문영금 씨와 셋째 아들 문성근 씨, 외손자 박문칠 씨가 정경모 선생을 만났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특히 “남북 간에 연방제 이야기가 제일 처음에 나온 것이 4.2공동성명”이라며 “김 주석은 군사권과 외교권을 가지고 있는 연방을 만들자고 했다”며 “문 목사가 그거는 안 된다고 현실적이 아니란 것을 설명을 했다”고 회고했다.

“당신(문 목사)은 연방제를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전쟁을 하지 않고 남북을 통일시키는 유일한 방법인 것을 알지만, 지금 김 주석이 생각하는 것처럼 군사권과 외교권을 쥐고 있는 통일연방제를 당장에 한다는 것은 도저히 현실적이 아니니까 그래서 안 된다고 했다”는 것.

9개항의 4.2공동성명 중 네 번째 항은 “쌍방은 누가 누구를 먹거나 누가 누구에게 먹히지 않고 일방이 타방을 압도하거나 타방에게 압도당하지 않는 공존의 원칙에서 연방제방식으로 통일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선택해야 할 필연적이고 합리적인 통일방도가 되며 그 구체적인 실현방도로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는 점에 견해의 일치를 보았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4.2공동성명의 맥락에서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이 방북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6.15공동선언’ 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선생은 “그때는 연방제를 한다고 하면 다들 빨갱이라고 펄쩍 뛰던 시절”이라며 “그 후에 김대중 대통령도 가고 노무현 대통령도 (북에) 가서 그 이야기가 나왔다”고 말했다.

선생은 “내년 4.2공동성명 기념행사에는 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사람들도 부르려고 한다”며 “남북이 같이 합동해서 4.2공동성명의 정신에 따라서 해야 될 일이 연방제”라고 강조했다.

“소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쥐를 잡는 법도 있으니까”

▲ 정경모 선생과 부인 지요코 여사(왼쪽)가 문영금, 문성근 씨와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한겨레>에 인기리에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펴낸 『시대의 불침번』에서 2010년 오바마 대통령 등장으로 한반도 정세가 긍정적으로 풀릴 것이라고 내다봤던 선생은 “오바마에 대한 기대는 벌써 꺼진지가 오래고, 오바마는 늘 자기 행동보다는 말이 앞선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최근 납치자 문제를 두고 북-일협상이 진행되고 있는 것과 관련 “아베는 이북 땅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고 대가리에 뿔이 달린 귀신들만 살고 있는 것처럼 일본사람들한테 선전해서 그것 때문에 부상이 된 것”이라고 부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아베는 또 현실적이랄까 욕심이 있으니까 이북이 가지고 있는 지하자원에 대한 욕심은 있다”고 진단했다.

선생은 “(아베 총리가) 북조선에 한 번은 가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는데 약속이 이행된 적은 없다”며 “이번에는 북에 가서 김정은을 만나서 일본과 북조선 사이가 긍정적으로 전개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고 말했다. “소가 뒷걸음질을 치다가 쥐를 잡는 법도 있으니까” 말이다.

▲ 정경모 선생과 부인은 대문 밖까지 손님들을 배웅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시간에 쫒겨 서둘러 돌아가는 일행에게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걸음걸이를 보여주겠다”며 굳이 대문 밖까지 배웅을 나선 선생의 허리가 유난히 굽어보였다.

 

▲ 문익환 목사와 김일성 주석이 1989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자료사진 - 통일맞이]
그러니까 1989년 3월 27일 아침 10시쯤이었을까. 우리 일행은 숙소를 나와 주석궁이라는 곳을 향해 출발하였소이다... 문 목사가 뚜벅뚜벅 걸어 다가서자 두 분은 순간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껴안으시더이다. 수인사 같은 것은 나눌 겨를도 없었고요...

문익환 목사 일행이 평양을 떠난 것이 1989년 4월 2일 오후였소이다. 그날 아침 문 목사가 기자단 앞에서 낭독하신 선언문이 오늘 우리가 ‘4.2남북공동성명’이라고 부르는 것이오이다. 이 성명문은 27일부터 30일까지 나흘 동안에 걸친 김 주석과 문 목사 사이의 회담을 담은 것으로 9개 항목에 걸친 상당히 장문의 것이지만, 알맹이만을 뽑아서 요약한다면 다음 세 가지 항복이 아닐까 하오이다.

① 민주는 민중의 부활이요, 통일은 민족의 부활이니만치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일체이다.
② 통일에 관한 남북 간 대화의 창구는 널리 개방되어야 하며, 당국자들 사이의 독점에 맡기지 않는다.
③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루어질진대 연방제는 거치지 않을 수 없는 경로인데, 이의 실시는 단꺼번에 할 수도 있고 점차적으로 할 수도 있다.

이 문서를 작성하느라고 나와 안병수(훗날 안경호로 확인) 동지는 31일 밤을 꼬박 세웠지요...

▲ 정경모 선생은 문익환 목사의 방북길에 동행했다. [자료사진 - 통일맞이]
아무튼 4.2공동성명은 그로부터 11년의 세월이 흘러간 후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날의 동지 문익환 목사의 발자취를 따라 평양을 방문하고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후 발표된 6.15공동성명으로 직결되고, 또 이것이 노무현 대통령 때의 10.4공동성명으로 이어지는 것이니, 통일을 지향하는 남북공동성명의 시발점은 문 목사의 평양 방문이었음이 자명한 사실이라 하겠지요.

(정경모, 『시대의 불침번』, 한겨레출판, 2010. 361-399쪽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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