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독나무
- 윌리엄 블레이크

친구에 화나는 일이 있었다.
내놓고 말하니 화가 풀렸다.
원수에 화나는 일이 있었다.
잠자코 있으니 화가 자랐다.

두려워 그것에 물을 주었다.
밤이고 낮이고 눈물을 뿌렸다.
미소를 볕처럼 쬐어 주었고
다정한 계략을 비춰 주었다.

그러자 나무는 밤낮으로 자라
빛나는 열매를 하나 맺었다.
원수는 빛나는 열매를 보고
주인이 나임을 알아내어서

어둠이 세상을 가리었을 때
내 뜰에 살며시 숨어들었다.
아침이 왔을 때 나는 기쁘게
나무 밑에 뻗은 원수를 본다.


머리를 자르러 미장원에 들어서는데 여주인이 인사를 하기는커녕 나를 흘깃 흘깃 훑어본다. '뭐 이래?' 나도 그녀에게 질 수 없어 아무 말도 없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녀가 다가와 건조하게 "어떻게 자를까요?"하고 묻는다. 나는 냉담하게 "짧게 잘라 줘요."하고 말했다.

그녀가 카트기로 윙윙 뒷머리를 밀어 올리자 나는 불안해졌다. '군인처럼 짧게 자르는 거 아냐?'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윗머리는 길게 해주세요."
그런데 그녀는 묵묵부답이다. 화가 난 나는 다시 조금 크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조그맣게 "네."하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무슨 사정이 있나?'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시 후 한 젊은 여자가 들어오자 친절하게 말을 하는 게 아닌가?

그때부터 나는 그녀에게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복수였다.
그녀와의 냉전은 내가 말없이 돈을 계산하고 퉁명스러운 몸짓으로 미장원 문을 닫고 나오고서야 끝났다.

나는 어릴 적 가난하게 자라나 '피해의식'이 크다. 오랫동안 사람들의 온갖 부당한 대우들을 속으로 분노를 삭이며 견뎠다.
그러다보니 나중엔 '화병'에 걸렸다.

언젠가부터 나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사람들을 대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어설픈 용서와 사랑'으로 사람들을 대했는데, 그런 것들은 다 거짓이었다.

나는 참으로 옹졸하고 졸렬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과정을 거쳐야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된다고 생각한다.

보들레르는 <파리의 우울>에서 '구걸하려고 모자를 내미는 늙은 거지를 무자비하게 두드려 팬다.' 그러자 '그 송장 같던 늙다리가, 나에게 덤벼들어 내 두 눈을 후려치고, 이를 네 개나 부러뜨리고, 나뭇가지로 나를 북치듯 후려 팼다.'
보들레르는 거지에게 감사하며 말한다. '당신은 나와 평등하오! 부디 이 지갑의 돈을 당신과 나누는 영광을 베풀어 주오.'

보들레르와 거지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과정을 통해 서로 대등한 평등과 사랑의 관계를 형성한다.

사랑의 시인 김수영도 얼마나 옹졸했던가!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王宮(왕궁) 대신에 王宮(왕궁)의 음탕 대신에/五十(오십)원 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

그러다 '복사씨가 사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의심할 거다!/복사씨와 살구씨가/한 번은 이렇게/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하고 사랑을 노래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아들아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라고 노래한다.

아, 나도 언젠가는 사랑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것이다! 이 긴 졸렬한 삶 후에. 내 안에 독나무를 기르지 않았기에.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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