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최룡해 당 비서가 가까운 시일 내에 러시아를 방문한다. 이번 방문은 북한과 러시아가 경제분야를 강화하는 가운데 이뤄진 것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북한과 러시아(구소련)의 친선관계는 한국전쟁 당시 소련이 북한을 지지했다는 점에서 알려진 것처럼 오래됐다.

1990년대 한.소 수교와 소련의 해체로 북한이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점에서 양국 관계는 침체기에 접어들었지만, 경제를 기반으로 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는 다시 회복, 김정은 시대 들어 본격화되고 있다.

북한과 러시아(구소련) 관계는 어떤 역사를 갖고 있을까. 오랜 역사적 기반을 바탕으로 김정은 시대 북한과 러시아는 어떤 모습으로 나아갈 것인가.

김일성 시대,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

김일성 시대, 북한과 소련(현 러시아)은 전통적 우호동맹 관계를 유지해왔다. 소련은 군사.이데올로기 관계에 기초해 북한 정권 수립을 지원했고, 북.중 관계를 견제하면서 북한의 전후 복구 및 군사력 증강 등을 도왔다.

1948년 12월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이 철수한 뒤, 1949년 3월 김일성 수상이 소련을 공식 방문한다. 그리고 △상호 이익에 기초한 통상관계 발전, △상품교류, △문화.과학 및 예술분야관계 발전 등을 담은 '조.소 경제적 및 문화적 협조에 관한 협정'을 체결했다.

'조.소 경제적 및 문화적 협조에 관한 협정'은 1949년 2월 북한이 내건 '인민경제 2개년 계획'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양국 간 교역이 증가하는 시초가 됐다. 당시 북한의 대 소련 교역액이 98%를 차지했으며, 소련은 북한에 총 4천770만 루블 상당의 생필품 보급과 기술원조 제공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1953년 휴전 후 북한이 제시한 '3개년 계획'에 따라 소련은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주요 경제시설 건설 적극 지원방침에 맞춰, 북한의 전후 복구를 지원했다. 그리고 △10억 루블 무상원조 제공, △연체된 차관상환 연기 등과 함께 1956년 3억 루블 무상원조를 북한에 제공했다.

이와 함께, 양국은 1956년 문화협정을 맺고, "쌍방은 자주권의 존중, 내정에 대한 불간섭 및 평등의 원칙에 기초하여 문화협조"를 통해 문화예술 교류를 시작했다.

▲ 1949년 3월 소련을 공식 방문한 김일성 수상이 도착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출처-민족21]

1960년대 들어 북한과 소련은 관계를 강화.발전시켜나갔는데, 특히, 1961년 7월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은 10년간 효력을 갖되, 일방이 1년 전 폐기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한 5년마다 자동 연장되도록 규정됐다.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 1조는 "체약 일방이 어떠한 국가 또는 국가 연합으로부터 무력 침공을 당함으로써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에 체약 상대방은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온갖 수단으로써 군사적 및 기타원조를 제공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2조에서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동맹도 체결하지 않으며,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연합이나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 데 대한 의무를 진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평등과 국가 주권의 상호 존중, 영토보전, 상호내정 불간섭의 원칙들에 입각하여 친선과 협조의 정신에서 경제적 및 문화적 연계를 강화 발전시키며, 경제 및 문화 분야에서 가능한 모든 원조를 상호 제공하며 필요한 협조를 실시하는 데 대한 의무를 진다"고 밝혔다.

즉,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은 냉전 시대 당시 사회주의적 국제주의라는 이념적 연대를 토대로, △자동적 군사개입, △가능한 모든 수단 원조, △반대 동맹 체결 및 가입금지를 통한 동맹강화, △원조 제공 의무, △평화와 민주주의적 기초를 토대로 한 한반도 통일 등 북한과 소련의 동맹 수준을 보여준다.

이는 정치.군사적 동맹과 함께, 경제적 동맹을 강화하는 계기가 됐는데, 이 조약으로 소련은 기술원조를 위해 10년 상황 연 2%의 금리로 천5백만 루블의 장기 저리 차관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리고 뒤이어 북한과 소련은 '조.소 군사원조 협정'(1965년 5월), '기술 및 경제협조에 관한 협정'(1966년 6월) 등을 체결해 동맹을 강화해나갔다.

물론, 김일성 시대, 북한과 소련의 동맹유지가 굳건했던 것만은 아니다. 스탈린 사후, 등장한 흐루시초프는 1956년 소련공산당 제20차 대회에서 스탈린주의 탈피를 선언하자, 이를 계기로 북.소 관계는 소원해졌다. 급기야 1959년 북한의 소련 군사고문단이 철수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하지만 브레즈네프 등장으로 북.소 관계가 복원, 1970년대 데탕트 시기에 북한은 소련과 중국 어느 쪽에도 편향되지 않는 등거리 외교를 통한 자주외교노선을 표방했다.

김정일 시대, '조.러 친선, 선린 및 협조 조약'

북한과 소련의 동맹관계는 1990년대 한.소 수교와 소련 해체로 소원해졌다. 1990년 한.소 수교 직후 북한 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달러로 사회주의 연대를 팔아먹었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심지어 1992년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는 옐친 대통령의 특사로 로가쵸프 외무차관이 방북, 1961년 조약 중 1조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수정할 것을 제의했지만, 북한은 1996년까지 유효하다는 입장을 내세우며 거절했다.

경제분야에서도 1991년 당시 소련이 과거 우호가격 및 바터제(구상무역)에서 국제가격을 기준으로 한 현금 지불제로 전환하면서 악화의 길을 걸었다.

또한,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을 두고 러시아가 이를 비난했다. 하지만 초창기 북핵문제를 둘러싼 동북아 외교전인 남북.미.중 4자회담이 열렸는데, 여기서 러시아는 소외됐다. 또한, 김일성 사후 김정일의 등장으로 북.미 관계 개선 조짐이 일자 러시아는 남북을 대상으로 한 등거리 외교 노선을 걷게 됐다.

▲ 2001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 푸틴 대통령과 만나 '모스크바 선언'을 발표했다. [사진자료-통일뉴스]

1993년 러시아 총선의 공산당 약진,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 조의표명 등으로 이어진 러시아는 1996년 프리마코프 외무장관이 전방위 외교를 천명하면서 북.러 관계는 회복단계를 걷기 시작했다. 그 출발은 바로 '북.러 무역경제 및 과학기술협조위원회(경제공동위원회)'였다.

그리고 1996년 11월 러시아의 나진.선봉 지대 투자확대와 대북 원유제공, 금속공업 제품교환 등 양국 간 무역확대를 목표로 한 투자보장협정도 체결됐다.

이를 토대로 양국은 '조.소 우호협력 및 상호원조 조약'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1996년 해당 조약 폐기 이후 양국은 수차례 논의 끝에 2000년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을 체결했다. 이를 '북.러 신조약'이라고 일컫는다.

'친선, 선린 및 협조에 관한 조약'의 특징은 1조에 나온다. 1961년 당시 조약은 이념적 연대를 토대로 자동군사개입을 담은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내용이었던 데 반해, 2000년 신조약은 "주권국가로서의 상호존중과 내정불간섭, 동등성, 호혜성, 영토권 그리고 다른 국제법들의 원칙 아래 우호관계를 지지.발전시켜 나아간다"고 밝혔다.

이는 사회주의 이념으로서 동맹관계가 아닌 국제법에 입각한 협력관계임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자동군사개입 조항을 "한 곳에 침략당할 위기가 발생할 경우 또는 평화와 안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그리고 협의와 협력이 불가피할 경우 즉각 접촉한다"고 수위를 낮췄다.

한반도 통일문제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국제적 긴장요인이 되고 있는 조선반도 분단상황의 조속한 종식, 그리고 독자성, 평화통일, 민족결속 원칙에 따른 조선반도의 통일이 전체 조선반도 인민들의 인민적 이해관계에 완전히 부합되는 것"이라면서 '독자성' 문구를 삽입했다.

▲ 2011년 8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러시아를 방문, 메드베제브 러시아 대통령을 만났다. [사진자료-통일뉴스]

동맹관계에서 국가관계로 재편된 북한과 러시아는 2000년 7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과 2001년과 2002년,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방러로 관계 정상화를 넘어 강화 단계로 들어갔다.

2000년 7월 '북.러 공동선언'(평양 선언), 2001년 8월 '북.러 공동선언'(모스크바 선언) 등을 발표, 북.러 간 정치,경제 분야를 넘어 군사 분야에 이르기까지 발전했다.

'평양선언'은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 해결 과정에서 국외자가 아닌 적극적인 참여자임을 밝힌 것이라면, '모스크바 선언'은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유사시 체제 보장에 대한 길을 확보했다는 의미가 있다.

특히, '모스크바 선언'에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언급, 이에 러시아는 "이해를 표명하였으며, 비군사적 수단으로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하여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였다"고 밝혔다.

'북.러 신조약', '평양 선언', '모스크바 선언' 등을 토대로 북한과 러시아는 정치.경제.군사 분야의 실질적 협력을 강화해나갔다.

2000년 3차 북.러 경제공동위원회를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TSR)-한반도 종단철도(TKR) 연결사업을 본격 논의하기 시작했고, 2001년 경제 실무협상을 통해 북한의 대러 외채문제를 55억 달러로 결정, 향후 30년간 분할상환하는 데 합의했다.

또한 '2001년 군사협력협정'을 체결, 북한군 인사에 대한 교육 등을 포함한 군 인사 교류 활성화를 모색했으며, '방위산업 및 군사장비 분야에 관한 협정'으로 군사분야 협력을 모색했다.

김정은 시대, '포베다' 경제분야 협력 발전

김정은 시대도 '북.러 신조약'을 토대로,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한 친선과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2013년 3차 북 핵실험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에 러시아가 동참해 다소 소원한 느낌이었지만, 2013년 7월 당시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 2014년 2월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러시아 방문으로 유대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우리 당과 공화국 정부는 앞으로도 자주, 평화, 친선의 대외정책 이념을 확고히 견지하면서 우리나라의 자주권을 존중하고 우리를 우호적으로 대하는 모든 나라들과의 친선협조 관계를 확대 발전시키며 세계의 평화와 안전, 인류공동의 번영을 위하여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9.9절' 축전에서 "두 나라 사이의 관계는 전통적으로 친선과 호상존중, 선린의 원칙에 기초하여 발전하고 있다"며 "우리들의 공동의 노력에 의하여 건설적인 협조가 모든 분야에 걸쳐 적극적으로 확대발전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김정은 제1위원장도 러시아 연방 국경절에 편지를 보내 "전통적인 관계가 쌍방 사이에 합의된 공동문건들의 정신에 맞게 앞으로 더욱 강화되리라는 확신을 표명한다"면서 김정일 시대 합의된 사항들의 이행하려는 의지를 피력했다.

▲ 2013년 10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북.러 수교 65주년을 맞아 방북한 러시아 '21세기관현악단'의 공연을 관람했다. [사진자료-통일뉴스]

이러한 양국 정상들의 협력강화 의지는 러시아의 '극동개발 프로젝트'와 맞물려 있다. 러시아는 극동지역 경제발전을 위해 오는 2020년까지 약 3천억 달러를 투자, 인프라를 구축하고 인근 국가와 경제협력을 모색한다는 계획이다.

그 첫 번째가 바로 '나진-하산 프로젝트'로 나진-하산 철도 재개통을 통해 시베리아 횡단철도, 한반도 종단철도를 잇는 거점인 부동항인 나진항을 확보, 물류거점으로 삼으려 한다.

또한, '포베다(승리) 프로젝트'로 20년에 걸쳐 약 3천5백km 길이의 북한 철로와 터널, 교량 등을 개보수하는 등 경제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과 러시아 간 구소련 시절부터 쌓아온 110억 달러에 달하는 채무를 러시아가 90%를 탕감하고, 나머지 10%는 북.러 경제사업 자본금으로 활용하기로 해 북.러간 협력사업의 본격화 토대를 마련했다.

경제를 중심으로 한 북.러 관계는 중국 일변도의 자원개발협력이 아닌 물류 인프라 구축 투자라는 점에서 강화.발전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 가운데, 지난해 중국 시진핑 주석을 특사 자격으로 만난 최룡해 당 비서가 이번에는 러시아를 김정은 제1위원장의 특사자격으로 방문하는 점이 주목된다.

시진핑 주석 면담 이후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중 가능성이 흘러나왔지만 북.중 관계는 다소 멀어져 이뤄지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북.러 관계가 경제를 중심으로 강화되는 측면에서 볼 때, 최룡해 당 비서의 방러가 김정은 제1위원장의 방러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부채탕감에 이어 경제 인프라 구축에까지 함께하는 북한과 러시아.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러시아는 남북을 상대로 서로 등거리 외교를 구사하는 양국이 어느 수준으로 이어질지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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