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청춘시대에 갖가지 우행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중년이 되어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할 것이다 (노신)


너희들에게
- 조재도

싹수 있는 놈은 아닐지라도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은 아닐지라도
나는 너희들에게 희망을 갖는다
오토바이 훔치다 들켰다는 녀석
오락실 변소에서 담배 피우다 글렸다는 녀석
술집에서 싸움박질하다 끌려왔다는 녀석
모두 모두가 더 없는 밀알이다
공부 잘해 대학가고 졸업하면 펜대 굴려
이 나라 이 강산 좀 먹어가는
관료 후보생보다
농사꾼이 될지 운전수가 될지
공사판 벽돌 나르는 노동자가 될지
모르는 너희들에게 희망을 갖는다
이 시대를 지탱해가는 모든 힘들이
버려진 사람들 그 굵은 팔뚝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공무원 관리는 되지 못해도
어버이의 기대엔 미치지 못해도
동강난 강산 하나로 이을 힘이 바로 너희들
두 다리 가슴마다 들어 있기에
나는 너희들을 믿는다 통일의 알갱이로 우뚝우뚝 커가는
건강하고 옹골찬 너희 어깨를.


독일 어학연수를 다녀 온 한 여학생에게서 '경이로운 경험담'을 들었다. 수업 도중에 경보음이 울렸단다. 그러자 교수가 학생들을 질서정연하게 다 대피시킨 뒤 제일 마지막에 밖으로 나오더란다.

그녀는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경보음이 울리면 이게 제대로 울린 걸까? 혹시 잘못 울린 게 아닌가? 하고 다들 기웃거리지 않나요? 그리고 그게 진짜 경보음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우리나라 대학생의 눈에는 경이롭게 보이다니?

세월호가 침몰할 때 탑승한 학생들은 기다리라는 안내 방송을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을 믿고 기다린 학생들은 죽음을 맞이했다.
상황을 파악하고 대피하는 어른들을 따라나선 학생들은 살아났다고 한다.

언젠가부터 학생들은 모범생을 '범생이'라고 불렀다. 아, 학생들의 무서운 '예지력'이 아닌가?

나도 학창시절에 '범생이'였다. '지랄 총량의 법칙'에 따라 어른이 되어 청춘 시절에 우행을 저지르지 못한 '범생이의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그래서 지금 다행히 '나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면 우행을 저지르지 못한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모범생'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지랄'을 해보지 않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겉으로 선량해 보이는 '범생이 출신'의 조용한 어른들. 내 눈에는 그들 가슴 속에서 들끓는 용암이 보인다.
그들 가슴 속의 '지랄'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그들이 겉으로는 능력 있고 말 잘 듣는 '공무원 관리'가 되고 '대기업 직원'이 되어 '가문의 영광'이 되어 살아가지만, 정말 그들은 '민주 시민'으로서 잘살고 있는 걸까? '개인'으로서는 행복할까?

독일이 그렇게 '믿음'을 갖게 되기까지는 '히틀러'를 경험하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을 것이다.
그런 사회 속에서도 청춘시절엔 '우행'을 저질러보아야 어른이 되어 제대로 살아갈지 모른다.

나는 이제 우리사회에서도 '범생이'가 '모범생'이 되는 경이로운 체험을 해보고 싶다. 너무나 많은 '청소년들의 우행'이 두렵다.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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