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저는 아득히 먼 석기시대의 원시부족사회를 꿈꿉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천지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던 눈부시게 아름답던 세상을 꿈꿉니다.
인류는 오랫동안 그런 세상을 살아왔기에
지금의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천지자연을 황폐화시키는 세상은 오래 가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지금의 고해(苦海)를 견딜 수 힘이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저는 그 견디는 힘으로 ‘詩視한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원래 시인인 ‘원시인’의 눈으로 보면 우리는 이 참혹한 세상에서 희망을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분노는 영혼의 원동력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분노가 없는 사람의 마음은 불구이다. (T. 플러)


화내고 있다
- 이성미

꽃에게 화내고 있다.
풀에게 화내고 있다.
깃털을 집어 던지며
지푸라기를 집어 던지며
발을 구르면서.


짐승들은 별로 화를 내지 않는다. 누가 그들의 먹이를 가로채거나 그들의 안전을 해칠 때 외에는 항상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다.

만일 그럴 때마저 화를 내지 않는다면 그건 생명체가 아니거나 주검이 되었을 때일 것이다.

그래서 짐승들은 화를 낼 때도 추하지 않다. 생명체로서 당연한 모습이니까.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우리들의 가슴엔 항상 분노로 들끓고 있다. 누가 자신들의 밥그릇을 빼앗는 것도 아닌데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것도 아닌데...... .

아마 분노가 일상화된 것은 인간에게 ‘소유가 생겨나면서 부터’일 것이다. ‘무소유’의 삶을 사는 원시인들은 항상 즐겁다.

‘소유’는 인간에게 ‘물질적 욕망’에 집착하게 한다. 끝없는 욕망을 따라가다 보니 마음이 항상 파도를 친다.
‘욕망의 질주’에 방해가 되는 인간들에게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소유욕’을 끊고 자연을 바라보면 자연은 참으로 아름답다. 모네, 세잔의 그림들처럼 사물과 인간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사랑이 가득히 피어오른다.

사랑이 충만했던 원시부족사회는 청동기, 철기가 등장하면서 ‘전국시대(戰國時代)’가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복수의 세상에서는 인간은 결국 ‘눈 없고 이 없는 세상(간디)’에서 살게 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인간 사회에 ‘사랑’이 등장하게 된다.

모든 위대한 가르침은 ‘사랑’이다. 이것은 인간생존의 필수조건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사랑’만 해야 하는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던 예수도 자주 분노를 했다. 그는 ‘사랑’을 가로막는 것들에 대해 불같이 화를 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대에 갔다가 ‘군대 폭력’으로 사망한 윤 일병의 어머니가 절규했다.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
우리 사회는 그녀의 하늘에 닿는 분노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진정으로 ‘사랑’을 하려면 분노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군대 폭력’이 사라질 때까지 ‘윤 일병 어머니의 분노’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럴 때 우리 사회는 한층 성숙하게 될 것이다. ‘어설픈 용서와 사랑’은 자신과 남을 속이는 것이다. 결국은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 되어버린다.

만일 우리가 지라오면서 ‘정당한 분노’를 하고 그 분노가 세상에서 받아들여졌더라면 우리 가슴에 ‘사랑’이 가득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당한 분노 없이 자랐기에 우리 가슴엔 사랑이 없다. 머릿속에 ‘안개처럼 막연한 사랑’이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라 정당한 분노가 적은 것이다.
사랑은 정당한 분노를 통해 피어난다.

우리 사회 곳곳의 정당한 분노들을 온전히 받아들이도록 하자. 그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 향기로운 사랑이 가득해질 것이다.

섬세한 감수성을 가슴에 지니고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부당한 것 앞에서는 분노가 불같이 타오르는 ‘원시인들’이 그립다.
'원시인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울까?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자랐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고향을 떠나 철도고등학교 운전과를 졸업한 후 기관조사로 근무하다 충북대학교 사회교육과에 진학했습니다.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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