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준 /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9월 3일 이후 40일 여일 이상 공식석상에 등장하지 않으면서 ‘쿠데타설’을 비롯해서 수많은 추측이 난무하였다. 그러나 그가 10월 13일경 지팡이를 짚고 ‘위성과학자주택지구’를 ‘현지지도’한 후 일단 ‘권력 이상설’은 잠잠해졌다. 김정은은 김책공대 교육자아파트 시찰(17일), 제323·162군부대 소속 항공육전병부대 이착륙 훈련지도(19일), AG참가 선수단 격려(19일), 연풍과학자휴양소 현지지도(22일), 조선인민군 제526대연합부대와 제478연합부대 사이의 쌍방 실동훈련 지도(24일) 등을 실시하여 정치적 건재와 육체적 건강을 과시하였다. 그가 완쾌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무리한 현지지도를 강행하는 것은 젊어서 가만있지 못하는 면도 있지만 북한 내·외에서 발생한 각종 루머와 ‘김정은 정권 흔들기’를 차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건재가 증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김정은 정권의 장래와 관련하여 ‘단기 안정, 중장기 불안정’ 기조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특히 중장기적 차원에서 김정은 정권 ‘급변사태’가 운위되면서 핵심 권력엘리트에 의한 ‘궁정혁명’ 가능성이 유력한 시나리오로 등장하고 있다. 과연 북한의 핵심 권력엘리트들은 ‘궁정혁명’을 일으킬 것인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북한 권력 엘리트들의 성향과 문화를 잘 파악해 보아야 한다.

북한에서 당·정·군 권력 엘리트는 매우 중요하다. 김정은은 수령후계자로서 무소불위의 절대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모든 것을 혼자 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수많은 핵심 엘리트들의 ‘집단보좌’를 받고 있다. 그들의 충성스런 보좌 없이는 김정은은 하루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김정은은 정치적 안정성 문제뿐만 아니라 경제난, 외교적 고립, 북핵 문제, 남북 경색 등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핵심 엘리트들의 적극적이고도 효과적인 보좌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김정은 정권 하에서의 핵심 엘리트들은 종교의 사제들처럼 맹종적일 것인가? 아니면 조선 시대 관료들처럼 간쟁(諫諍)적일 것인가? 그들은 김정은의 명령을 ‘아바타’처럼 따를 것인가? 아니면 배신할 것인가? 우리는 역사에서 수많은 측근 배신을 보았다. 로마시대 시이저의 ‘절친’이었던 부르터스의 배신, 이스라엘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이었던 가롯 유다의 배신, 조선 시대 왕자의 난, 일본 오다 노부나가의 충신 아케치 미츠히데의 배신, 중국 마오쩌뚱(모택동)의 친구 린뱌오(임표)의 배신 등 최측근의 배신은 언제든 있을 수 있다.

특히, 북한 군부가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식’으로 시민군에 편승하게 될 지, 이라크의 ‘후세인 식’으로 최측근 경호원 무슬리트 장군처럼 최측근이 김정은 거처를 상대에게 제공할 지, 리비아의 ‘카다피 식’으로 군부 핵심이 해외 망명할 지, 튀니지의 ‘벤 알리 식’으로 군부가 발포를 거부할 지 등 어느 경우가 될 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의 처절했던 권력 투쟁사와 미국을 비롯한 초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북한 유일체제의 특성을 참조해서 우리는 북한 권력 엘리트가 갖는 몇 가지 정치문화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첫째, ‘충성문화’이다. 충성문화는 최고영도자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것으로서 분파를 만든다든가 수령이외의 엘리트에게 줄을 선다든가 하는 것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다. “하늘 아래 태양은 하나다”라는 인식하에 어떤 엘리트도 “야심을 품지 않고” 수령에게 복종한다. 모든 권력 엘리트들이 수령의 지시를 노트에 받아 적을 뿐 공개적인 석상에서는 대안이나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물론 김정일 시대에는 권력 엘리트들은 김정일 집무실에서 일단 판이 벌어지면 자유스럽게 사안을 토의하고 대안을 제시했었다. 다만 그것은 수령의 절대적 존재를 인정하는 대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최고 지도자와 권력엘리트 간 ‘신뢰’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충성어린 반대(loyal opposition)’였던 것이다. 현재 리영호, 장성택 등 권력공신과 척신까지 소멸된 김정은 정권하에서는 충성의 반대자도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둘째, ‘감사문화’이다. 이것은 수령의 모든 행동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다. 마치 종교에서 사제가 자신에게 내린 고통을 신이 자신을 높이 쓰기 위해서 당분간 시련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듯이 권력 엘리트는 수령의 책벌에 대해 감사한다. 이것은 ‘사회정치적 생명’을 빼앗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입장이다. 김정은이 집권 이후 북한 ‘장령(장성)들’의 계급을 강등시킨 후 회복시키는 행동에 대해 장령들의 불만이 클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 이들은 오히려 책벌이 다행스러우며 후에 자신의 입신을 강화하기 위한 좋은 징표라고 생각할 수 있다.

실제로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은 엘리트 책벌 후 복권과 함께 높은 자리를 준 적이 대부분이었다. ‘인덕정치’와 ‘광폭정치’를 선전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절대충성을 유지하려는 정치적 행위이기도 하다. 정치적 과오가 아니고 정책집행상의 과오로 질책을 받을 경우에는 복권이 되고 더 높은 지위로 올라간다는 관행은 권력 엘리트들로 하여금 더욱 충성하도록 만드는 기제가 된다. 이것은 봉건제의 유산인 ‘주인과 머슴’ 관계 때문이다. 머슴은 자유가 없고 생사여탈권이 주인에게 주어진다. 머슴입장에서는 계급이나 지위가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인 것이다. 따라서 ‘장성택 실세론’, ‘조연준 실세론’, ‘최룡해 실세론’ 등은 모두 무망한 해석에 불과하다.

지배와 복종 관계에서는 복종자가 무슨 직책을 갖느냐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어떤 직책이든 그것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수령은 ‘머슴들’을 당에서 군으로, 군에서 당으로, 군에서 정부로, 정부에서 당으로 자유자재로 인사를 한다. 권력 엘리트들은 수령의 인사권 명단(nomenklatura) 내에 들어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황공한 일인 것이다. 수령이 자신을 잊지 않고 있다는 것만큼 ‘큰 영광’은 없기 때문이다. 남한에서도 어느 재벌총수는 정책수행 부진을 이유로 부하를 폭행한 후 일정기간이 경과한 후 더 높은 직책을 주는 바람에 간부들이 서로 맞겠다고 경쟁까지 한 경우가 있었다. 총수를 대신하여 감옥에 갈 경우 그 간부는 평생을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보상을 받았다. 폭행당하는 것은 신분보장을 받는 징표이기 때문에 오히려 바라는 바인 것이다. 일종의 “맞으면서 쾌감을 느끼는” ‘피가학적(masochistic) 문화’이다.

셋째, ‘희생문화’이다. 권력 엘리트가 수령을 위해 대신 죽는 것은 북한 내에서 최고의 예우를 받는 일이다. 항일무장투쟁 시기 위기의 순간에 그를 대신해 죽은 김혁, 차광수 등이 해방 후 ‘혁명열사’로 추앙받고 자손대대로 등용되는 것은 핵심 엘리트들이 가장 바라는 일이다. 수령을 대신해 죽는 것은 ‘가문의 영광’인 것이다. 외부에서 수령에 대해 공격할 경우 권력 엘리트들은 뒤질세라 상대방을 비난하고 최고 수위의 비방을 내놓는다. ‘총폭탄 정신’을 운위하며 자신이 가장 먼저 몸을 바칠 것을 외친다. 이런 이유에서 ‘수령의 군대’인 인민군은 어떤 문제가 생기면 가장 앞장서서 무력진압을 하는 ‘아바타’ 역할을 할 것이다.

결국 김정은의 과감한 권력 엘리트 통제 정책이 통용되는 배경에는 수십 년간 길들여진 관료들의 속성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나서지 않고 묵묵히 시키는 대로 순종하는 순치된 관료들 때문에 유일체제가 지속되는 것이다. 권력 엘리트들은 대부분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본 적이 없는 ‘아바타’이다.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최고지도자의 지침을 기다리는 자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김정은 체제가 안정적일 수밖에 없다. 대항세력이 없고 대항할 의사도 없는 자들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합법적인 토론의 장이 마련되지 않으면 나서지 않는다. 나섰다가는 ‘반당종파’나 ‘야심가’로 몰리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건강 문제는 절대 권력에 편승하여 자신의 지위를 보존해온 권력 엘리트들에게는 불안한 사안임이 분명하다. 만일 김정은이 후계 문제를 ‘빛나게’ 해결하지 못한 상태에서 유고된다면 자신의 안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 엘리트들은 김정은과 관련한 어떠한 심기도 외부로 표출하는 것은 극히 삼갈 것이다. 이 분위기에서는 권력 엘리트들이 “떨어지는 낙엽”조차도 피해가려 할 것이다. 현재 북한의 핵심 엘리트들은 기침도 크게 못하고 조속한 회복을 기다린다는 간절한 표정을 지으면서 외식이나 모임을 피하는 등 더욱 더 몸을 사리고 있을 것이다. 수령 안위에 대해 의문을 품는 것 자체가 죄라는 인식이 권력 엘리트 내에 팽배해 있고 또한 이들은 감시통제 기구가 어느 정도 잘 작동되고 있는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본 글 모두(冒頭)에서 일부 논자들이 제기했다고 언급한 ‘궁정혁명’은 국내 사회의 대혼란이 팽배해 있을 때 공명심이 강한 ‘혁명가’에 의해 단행되는 데 현재 북한 내에 광범위한 사회혼란이 없는 상태에서 ‘혹시 존재할 수도 있는 야심가’가 3중, 4중의 경호를 뚫고 김정은을 공격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김일성 시대 이래 북한은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측근 배신’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수령 경호 부대간 상호 경계를 필수로 하고 있다. 그리고 장성택 처형에서도 보듯이 수령의 최근접 친위대는 수령에게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있는 자는 그가 누구든 처절한 단죄를 가한다.

또한 중요한 것은 권력 엘리트 사회의 분위기 자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행동에 나설 상황이 안 된다는 점이다. 혁명은 혁명분위기 조성이 우선인데 북한에서는 도대체 이런 분위기가 만들어 지지 않는다. 내가 나서면 누군가 동시에 나설 것이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어야 하는데 아직은 그런 것이 없고 단기간 내에 등장할 것 같지도 않다. 우리는 막연히 북한 궁정혁명과 같은 급변사태를 기대할 것이 아니라 김정은 정권의 장기화를 전제로 한 대북 정책을 구사해야 할 것이다. 

 
1953년생으로서 전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북한문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통일연구원에서 22년간 재직한 북한전문가이다.
2006년 북한연구학회장 재직 시 북한연구의 총결산서인 ‘북한학총서’ 10권을 발간하여 호평을 받았다.
그 동안 통일부 자문위원, NSC자문위원, 민주평통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고, 고려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으며 민화협, 경실련 등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였다.
현재는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는 「김정일 리더쉽 연구」, 「김정일 정권의 통치엘리트」, 「북한 체제의 내구력 평가」, 『북한이해의 길잡이』 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이 있다.


 

저작권자 © 통일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