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태환 / 전 통일연구원 원장, 한반도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10.4 공동선언 7주년을 맞이하는 10월 4일 오전 황병서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 등 핵심 실세들 11명으로 구성된 최고위급 대표단이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전격 방문으로 꽉 막힌 남북관계의 물꼬가 뻥 뚫린 분위기이다.

이러한 해프닝은 남북의 최고지도자들의 “통 큰” 결정으로 이뤄지게 되었다. 북 대표단의 청와대 예방은 불발이었지만 북한이 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원색적인 비난을 그 동안 해온 무례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예방을 수용한 박근혜 대통령의 통 큰 결단과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를 만들어 가 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것을 쌍수를 들어 환영한다.

북한의 “특사” 방문은 불과 12시간 정도지만 남쪽이 지난 8월에 제의한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10월 말-11월 초에 개최하자고 이번에 합의한 것은 상징적으로 큰 의미가 있으며 이제부터 남쪽이 원하면 특사가 평양도 방문하여 제3회 정상회담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이뤄진 것이다. 이번 인천 방문으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전용비행기를 타고 서울을 방문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을 높여준 셈이다.

그러나 아직도 남북간 풀어야 할 많은 현안들이 앞을 가로 막고 있어 남북정상회담이 이뤄지기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이번 북한의 11명 실세들의 전격적이고 역사적인 방문이 이뤄지기까지의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를 살펴보고 남과 북이 이번에 뚫은 대화의 문이 활짝 열려지길 기대하면서 남과 북이 “진정한” 대화를 통해 남북관계가 개선되길 양측 당국자에게 진심으로 촉구한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금년에 들어와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연초에 남북관계 개선을 주창하였지만 적대적 남북관계는 꼬이기만 하고, 북쪽 대표단이 방남(訪南)하기 이전까지 북한당국은 연일 박근혜 대통령을 원색적 비난만 하고 있어 가슴 아팠고 안타까웠다.

지난 9월 27일 북한은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행한 기조연설에 대해 박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원색적 비난을 하더니 또다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은 10월 2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9월 30일 국무회의에서 한 북한 핵과 인권문제 발언 등을 문제 삼아 '흡수통일 야망'을 드러낸 것이라며 또다시 실명으로 박 대통령을 '정신병자', '특등 대결광', '미친개' 등 입에 담지 못할 원색적인 표현을 쓰면서 비난하였다.

그리고 북한은 조평통 성명(10.2)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 '신뢰프로세스' 등은 "남북공동선언을 거역하는 행위"라며 남측이 "북남선언 이행을 한사코 거부하고 외면하는 것은 흡수통일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해, 북한이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잘못 이해하고 있어 답답하기만 하였다.

이런 분위기에서 남북간 화해와 협력은커녕 대화조차 시작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이래 가지고 무슨 남북관계의 개선을 기대하겠나? 대한민국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에 대한 이러한 원색적인 비난은 남북관계 대화 분위기 조성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었고 먼저 남과 북이 상호 비방과 중상이 될 언동을 즉각 중단하길 바랐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이 최고위급 대표단을 전격적으로 방남하도록 지시한 것을 보고 이런 통 큰 결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반도 문제(비핵화, 평화체제구축 및 통일한반도의 비전 등)는 남북 문제이면서 국제 문제이다. 박 대통령의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은 한국정부 입장을 설득력 있게 잘 전달하는데 성공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가 기대했던 부분이 빠져있어 아쉬운 감이 있었다. 그것은 한반도 문제를 한국정부가 어떻게 풀어나가겠다는 해법을 천명하고 국제사회로부터 지원을 받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유엔총회 연설에서 박 대통령이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지 않은 것이 너무 아쉬웠었다.

필자는 요즘 남북간 적대적 관계의 분위기를 보면서 분통도 터지고 너무 답답하다. 북한은 대남 비방을 유엔총회에서까지 가서 떠들고 있고, 남한은 공식적인 정부입장만 큰 소리로 반복하고 있다. 이렇듯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 모색을 위한 "창조적인 접근이나 방안"을 제시하기보다 각자의 정책에 대한 정당성(?)만 강조하다 보니 이래서야 꼬인 남북관계는 점점 더 적대적 관계로 진전되고 있어 마치 남북간 새로운 냉전을 실감케 해 매우 안타까웠다.

남과 북이 건전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도록 분위기 조성부터 시작하자고 제언해 왔다.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이제 북한의 “특사” 방문단 이후부터라도 북쪽은 대남 비방 중상 등을 즉각 자제하고 또한 남쪽은 즉각 북을 자극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행위를 중단해야 하고 행동으로 보여줘 건설적인 대화 분위기 조성을 위해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고 싶다. 이것이 실천되지 않으면 이명박 시대의 5년간 남북관계가 박근혜 시대에도 반복될 수 있는 높은 개연성이 존재함을 우려한다. 남과 북은 즉각 말만 대화하자고 외치지 말고 대신에 행동을 보여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열어 나가길 기대한다.

북한은 지금도 핵 보유국 지위를 얻고자 총력을 다하고 있는데 남쪽은 “전략적 인내”를 유지해서야 되겠나? 남과 북은 남북대화의 모든 전제조건을 철회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만나서 남북간 현안문제를 양보와 타협으로 풀어나가는 자세를 보여주기 바란다. 설사 만나서 대화가 성공적으로 협상에 도달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만나지 않은 것보다 만나고 또 만나서 대화하다 보면 "상호신뢰"가 쌓이고 자신감이 생겨 상호간 타협을 통해 양보를 얻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이뤄질 수 있다. 그러면 남과 북이 원하는 것을 조금씩 얻게 될 것이고 그렇게 하다 보면 남과 북이 소통할 수 있어 박 대통령의 구상인 "작은 통일"이 이뤄져 ‘통일대박’으로 가는 길도 열리게 될 것이다.

남과 북이 함께 이젠 경색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합의한 이상 더 표류하지 말고 남과 북이 자주적으로 상생과 공동번영의 길을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 언제까지 강대국이 한반도 문제를 해결해 주도록 기다려야 하나? 중견국인 대한민국이 한반도 문제 해결에 주도적이고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다.

그리고 한미동맹을 빌미로 미국의 요구에 대해 "노 (N0)"라고 답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실현을 위해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혁신적인 구상도 우리끼리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고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부터 건전한 대화를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한국이 지정학적 운명 때문에 균형자 역할이 아닌 대미, 대중 균형외교를 능동적으로 추진하여 우리의 국익을 지키고 증진해야 할 것이다. 이젠 남과 북이 손을 잡고 함께 공존, 상생과 공영의 길을 모색할 것을 촉구한다. <끝>

 
미국 클레어먼트 대학원 대학교 국제관계학 박사(1969).
미국 이스턴 켄터키 대 국제정치학 교수(1969-1999);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소장(1995-1999); 통일연구원 원장(1999-2000).
현재 경남대 석좌교수, 미국 이스턴 켄터키대 명예교수, 한반도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한반도 중립화통일협의회 이사장, 통일전략연구협의회 (Los Angeles)회장.
30권의 저서, 공저 및 편저; 200편 이상의 학술논문출판;
주요 저서: 국제정치 속의 한반도: 평화와 통일구상 (1999).
공저: 한반도평화체제의 모색 (1997)등; 영문책 Editor & Co-editor: North Korea and Security Cooperation in Northeast Asia (Ashgate, 2014); Peace-Regime Building on the Korean Peninsula and Northeast Asian Security Cooperation (Ashgate, 201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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