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한에서 국보 제3호로 보호하고 있는 보통문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의 참화를 피한 유일한 유적으로 유명하다. [사진-노동신문 캡쳐]

북한에서 국보 제3호로 보호하고 있는 보통문(普通門)은 대동문(大同門)과 함께 그 옛날의 평양성을 지키고 있는, 현재 남아있는 성문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이다. 대동문이 대동강변에 있으니 보통문도 보통강변에 있다.

<노동신문>은 1일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자랑하는 유적들'로 보통문을 소개했다.

신문에 따르면, 평양시 중구역에 자리잡고 있는 보통문은 6세기 중엽 고구려 사람들이 평양성을 쌓을 때 중성의 서문으로 세웠다. 그후 여러차례 보수개건돼 오다가 1473년에 고쳐지은 것인데 지금까지 보존돼 오고있다.

보통문은 평양성 서북쪽방향으로 통하는 관문으로서 군사적으로나 교통상으로나 중요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 당시부터 조선왕조에 이르기까지 매우 중시되었다.

고려 시기 보통문은 서경(지금의 평양)의 서문으로서 광덕문이라고 했으며, 아침해를 다시 본다는 의미에서 우양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웠다.

보통문은 듬직한 축대와 무게있는 2층 문루로 이루어졌다. 화강석을 잘 다듬어 균형있게 쌓은 축대의 가운데에는 무지개문(홍예문)이 있고 여기에는 철판을 입힌 든든한 널대문이 달렸다.

문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의 2층으로 된 겹처마합각집이다. 배부른기둥은 모두 16개인데 가운데 4개는 통기둥으로 2층까지 관통되어있다. 문루안의 가운데 칸에는 마루를 깔았으며 천정은 시원한 통천정으로 하였다. 문루에는 은은한 모루단청(목조건물에서 부재의 끝머리 부분에만 문양을 그려넣은 단청)이 입혀졌다.

고려시기의 건축양식을 계승한 조선왕조 초기의 건축술이 깃들어있는 보통문은 장중하면서도 균형이 잘 잡힌 건축물로서 일찍부터 대동문 못지 않게 훌륭하게 건설된 문으로 알려져있다.

보통문을 세울 때 제자가 맡은 부분이 스승이 담당한 대동문에 못지 않게 우수하여 스승을 놀래웠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있다.

예로부터 '보통송객(普通送客)'이라하여 보통문에서 손님을 바래다주는 광경은 평양8경의 하나로 유명했다.

한편, 보통문은 신문(神門)이라는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웠는데 그것은 신비스러운 문이라는 뜻으로서 여러가지 신비로운 조화를 부리면서 왜적들을 골탕먹이고 의병들을 도와 마침내는 침략자들을 쳐부셨다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특히 보통문은 임진왜란 중 왜적들이 평양을 불태울 때에도 끄떡없었으며, 지난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야수적 폭격으로 보통문이 불길에 휩싸이게 되였을 때 평양시민들은 희생적으로 지켜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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