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 시인
필자의 말 안녕하세요? |
우리는 왜 지치는가
- 사람들은 우리 인간이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것이 삶의 의미라고 말하지만 진실로 찾는 것은 살아 있음의 경험 - 조셉 캠벨
천년의 바람
박재삼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온다. 자연은 지치지 않는다. ‘영원회귀(니체)’다. 니체는 우리가 ‘영원회귀’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생(生)의 춤’을 출 수 있다고 했다.
자연은 ‘텅 비어있으나 굴하지 않고(虛而不屈), 끊임없이 움직이나 더욱더 생명력이 넘친다(動而愈出)’ -「도덕경 제5장」에서.
그런데 사람도 ‘자연’인데, 왜 지치는가? 사람은 ‘자연스럽게 살지 않아서’ 그렇다. 사람들은 ‘자신이 만든 기준’에 맞춰 산다.
사람이 만든 기준에는 반드시 빛과 어둠이 있다. 사람들은 빛을 추구하며 산다. 그러다보니 ‘빛과 어둠이 하나가 되어 끊임없이 에너지가 솟아나오는 자연의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환한 빛 속에서 사는 우리는 깊은 어둠이 필요하다. 선(善)하게 살려면 그만큼의 악(惡)이 생겨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선하게 산 뒤 우리의 깊은 내면에 생기는 자신 안의 어둠, 악을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 안의 어둠을 남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러다 언젠가는 꼭꼭 눌러놓은 어둠이 밖으로 틔어 나온다. 사람이 한순간에 악의 화신이 되어버린다.
우리는 자신 안의 악을 남에게 뒤집어씌울 때는 자신보다 약한 자에게 뒤집어씌운다. 그래서 가정, 직장, 단체, 사회에서 왕따가 생긴다.
지금 우리 사회의 왕따는 누구인가? 우리 안의 모든 어둠, 악을 뒤집어써야 하는 ‘이 시대의 약자’는 누구인가?
최근에 ‘세월호 희생자들’에게 향하는 분노들을 본다. 그들은 정말 그들에게 분노하는 걸까? 자신들 안의 깊은 어둠은 아닐까? 우리는 깊이 성찰해보아야 한다.
우리들 안의 어둠을 남에게 뒤집어씌우면 우선은 마음이 편하겠지만 그 어둠은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는 더 큰 어둠이 되어 자신과 사회를 뒤덮을 것이다.
‘세월호’는 이 시대의 깊은 어둠이다. 우리 모두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 깊은 어둠을 우리가 품을 때 우리 사회에 환한 빛이 비쳐질 것이다.
융은 말했다.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찾아라! 그때부터 진정한 성숙이 이루어진다.’
우리는 ‘세월호’를 통해 우리 사회의 깊은 두려움을 보아야 한다. ‘세월호’를 처음 접했을 때, 우리는 모두 망연자실 깊은 슬픔에 빠졌다. 그 초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선진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빛과 어둠이 함께 하기에 지치지 않는다. 개인도 사회도 빛과 어둠을 함께 품을 때 지치지 않는다.
우리 사회를 ‘피로 사회’라고 한다. 우리는 다들 지쳤다. ‘환한 빛’에 지친 것이다. 깊은 어둠을 받아들이자. 어둠이 깊어야 별이 뜬다(니체).
졸업 후 중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는 동안 잠시 전교조 활동을 했습니다. 교직을 떠난 후 빈민단체(주거연합)에서 활동하다 한길문학예술연구원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습니다. ‘리얼리스트 100’에서 주는 제6회 민들레 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부천에서 살며 글을 쓰고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시집 ‘나무’ 산문집 ‘명시 인문학’ 에세이집 ‘숲’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