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 / 사진가


2014년 9월 23일 미국이 한국에서만 지뢰를 사용하겠다고 선언했다. 1997년 이래 정부 공식발표로 3번째이다. 1997년에 대인지뢰전면금지조약 일명 오타와조약이 체결될 때 미국은 한국에서만 사용을 허용해달라고 했다가 국제사회의 거센 반발에 직면했었다. 궁지에 몰린 클린턴은 2006년까지는 오타와조약에 가입할 것을 목표로 설정했다. 그러나 2004년 부시는 다시 이를 번복했다. 그리고 2010년까지는 하겠다고 했다. 이때도 한국에서만은 사용하겠다고 했다. 어제 발표는 언제까지 가입하겠다는 약속도 없다. 그리고 또 한국을 팔았다.

오타와조약을 주도한 휴먼라이트워치의 스티브 구스(Steve Goose)는 “한국의 시민들도 모든 다른 나라 국민처럼 지뢰로부터 보호 받아야 한다. 오타와 조약의 반대를 위해 지리적 예외를 두자는 것은 조약체결 당시처럼 오늘도 적절치 않다.”고 즉각 반발했다.

지뢰는 한물간 무기일 뿐만 아니라 아군에게 피해만 주는 애물단지라는 것은 이미 증명되었다. 그러나 한국에서만은 부득이하게 필요하다고 한다. 천만에 한국에서 지뢰의 군사적 효용은 가장 강력히 의심되었고 부정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65야전 공병대대원이었던 스태로빈 중위는 『한국에서의 전투지원』(Combat Support in Korea)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최소한 150대의 사용 불가능한 북의 탱크를 보았는데 이들 중 한 대도 지뢰에 의해 파괴된 것은 없었다. 나는 또한 수많은 미군 탱크와 트럭들이 우리 자신의 지뢰에 의해 파괴된 것을 볼 수 있었다. 미 제 25사단이 1951년 3월 초에 한강을 도하할 때 우리는 매설기록이 없는 미군지뢰지대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제3공병대대의 S-3가 철수해야한다는 압력에 못 이겨 기록을 하지 못 했던 의정부 근처의 부대가 설치한 지뢰지대가 있음을 기억해 냈다. 우리는 그가 지적한 지점에서 많은 차량들이 지뢰에 파괴되고 병사들이 죽음을 당했음을 알았다.”

처절한 전장에서 겪은 지뢰의 무차별성, 무통제성이 적군이 아닌 아군에게 치명적 위협이 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는 비단 병사만의 체험이 아니다. 전 한미연합야전사령관 제임스 홀링스워스 장군을 비롯, 전 미 합참의장 데이비드 존스 장군, 걸프전 사령관을 역임한 노만슈와츠코프 장군을 비롯한 많은 퇴역 미군장성들은 한반도에서의 대인지뢰 사용이 군사적 효용성이 없으며 오히려 북한군의 침공 시, 이를 격퇴하고 반격하기 위한 한미 연합군의 기동을 방해하고, 민간인을 지뢰피해에 노출시키게 된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베트남전쟁 시, 미군 사상자들의 1/3이 미군이 매설한 지뢰에 피해를 입었다는 사례와 걸프전쟁 시 지뢰가 오히려 미군의 기동을 방해했다는 사례를 제시하면서, 정밀한 야포 등을 포함한 대체무기의 개발 및 개선된 정보경고체계가 미군과 한국군에게 전투태세를 갖출 수 있는 시간을 더 많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이들의 주장은 1996년 4월 3일자 뉴욕 타임스, 1996년 8월 8일자 뉴욕 타임스, 2001년 2월 25일자 워싱턴 타임스 등에 지속적으로 게재되어 왔으며, 2001년 5월 19일에는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이러한 내용의 서한을 직접 발송하였다.

2006년 노무현 정부 하에서 합참은 도시 한복판의 방공포대 주위에 매설됐던 지뢰를 제거했다. 당시에도 여전히 지뢰의 군사적 유용성을 주장하는 장성들이 많았지만 제거했다. 또한 전방의 민통선지역 지뢰작업도 부분적으로 진행했다. 비무장지대의 철도 연결을 위해서도 이미 지뢰를 제거했다. 미국의 눈치를 보며 오타와조약에 가입하고 있지 않지만 역대 한국정부는 실질적인 지뢰제거를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오타와조약 문제의 본질은 군사적 효용이 아니라 외교주도권 문제이다. 미국이 주도하지 않은 조약에 끌려가기 싫지만 국제압력 때문에 무시할 수도 없는 골칫거리인 것이다.

미국은 1997년 화학무기금지조약을 주도했다. 북한이 화학무기를 없애려는 아무런 조짐도 보이지 않았지만 일방적으로 남한에서 화학무기를 폐기했다. 미국이 이 조약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화학무기와 지뢰 중 어느 것이 더 치명적인가? 당연히 화학무기다. 화학무기는 되는데 지뢰는 안 된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

현재 미국이 예외를 주장하고 있는 한반도 비무장지대의 지뢰는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 13항에 의해 미국이 3일 이내에 제거하도록 의무가 부과된 대상이다. 그러나 미국은 3일은커녕 60년 동안 이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다. 그리고 이제는 의무불이행 행위를 한미동맹을 위한 신성한 사명으로 둔갑시켜 오타와조약 가입에 대한 국제적인 압력의 피난처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정부는 인도적인 목적과 군사적인 목적 모두를 만족시키는 신지뢰정책을 떠들었지만 미군이 매설한 지뢰에 의해 희생당한 한국의 지뢰피해자들을 위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국제사회의 압력을 피해가는 수단으로 미국은 또 한 번 한국을 팔아먹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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