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공자의 정명론(正名論)을 꺼내지 않더라도 ‘이름을 바로잡는 일’(正名)은 중요하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말도 있듯이, 이름이란 내용을 표현하고 규정하는 적확한 표현일 수 있다. 그래서 내용을 잘 담을 수 있는 이름은 중요하다. 역으로, 내용을 잘 담지 못하는 이름이라면 아무 쓸모가 없다. 하물며, 온당한 이름이 있는데 그 이름을 몰라서 안 쓰거나 부러 안 쓴다면 더더욱 문제다. 전자라면 무지의 소치요, 후자라면 뒤틀린 심사다. 다름 아닌 ‘인공기’ 얘기다.

◆ 지금 인천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다. 각 종목에서 우승을 하거나 1등을 하면 금메달을 딴다. 그리고 시상식에서 금메달 국기가 은메달과 동메달 국기 가운데서 게양되고 금메달 국가가 울려 퍼진다. 북측도 현재 금메달 4개를 획득했으니 국기가 가운데에서 4번 올랐고, 국가도 4번 울렸을 게다. 북측은 역도에서 3개, 체조에서 1개의 금메달을 땄다. 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어떤 선수는 시상식에서 국기를 망토처럼 휘감으며 승리를 만끽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이 북측 국기를 ‘인공기’라고 부른다는 점이다.

◆ 북측 국기 수난이 있었다. 아시안게임 개최에 즈음해 경기도 고양시 시내에 참가국 국기들이 내걸렸다. 45개국 참가국 국기 안에는 당연히 북측 국기도 들어 있다. 그러자 보수 매체 등 일부 단체들이 북측 국기 게양에 항의를 했다.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는 모든 국기를 철거하는 해프닝을 일으켰다. 남측 정부가 그렇게 북측에 요구하던 글로벌 스탠더드(global standard)를 스스로 철회한 것이다. 결국 대회 참가국들의 국기는 경기가 열리는 행사장 안에서만 게양됐다. 이때에도 대부분의 언론들은 ‘인공기 논란’으로 표현했다.

◆ 한마디로 ‘인공기’란 없다. 여기서 인공기(人共旗)란 인민공화국기(人民共和國旗)를 줄인 것이다. 어쨌든 북측 국기의 공식 이름은 아니다. 북측 국기는 그 정식 명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이고 별칭으로 홍람오각별기(紅藍五角星旗), 람홍색공화국기(藍紅色共和國旗) 등으로 불린다. 그리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는 줄여서 ‘공화국기’로 불린다. 남자역도에서 금메달을 딴 북측 엄윤철 선수는 기자회견에서 “달걀을 사상으로 채우면 바위도 깰 수 있다”면서 “그 덕에 공화국기를 펄럭이고 애국가를 울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공화국기’인 것이다.

◆ 제 이름을 불러줘야 한다. ‘인공기’란 남측이 북측 국기를 임의로 부르는 것이다. 북측이 남측의 태극기를 ‘대한기’라고 부른다면 기분이 좋겠는가. 김춘수 시인은 국민적 시 ‘꽃’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고 노래했다. ‘인공기’가 아닌 ‘공화국기’라 부를 때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남측이 북측의 국기를 ‘인공기’라 불렀을 때 / 북측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 남측이 북측의 국기를 ‘공화국기’라 불러주었을 때 / 남과 북은 / 하나의 민족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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