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재(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숙제하기 싫어 온갖 핑계 대는 아이처럼

노무현 정부 때 2012년 4월 17일에 환수하기로 했고, 이명박 정부 때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하기로 했던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를 박근혜 정부가 또다시 연기하는 방침을 굳혀가고 있다.

한미당국은 2021~2022년쯤 전작권 환수를 목표로 하되 북핵.미사일 문제 등 안보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고 한다.

한미당국이 전작권 환수 시기를 이렇게 어정쩡하게 처리하려는 이유는 뭘까. 환수 시기를 못 박으면 두 번이나 전작권 환수를 연기한 데 이어 또다시 연기할 경우 그 뒷감당을 하기 어렵고, 시기를 언급하지 않으면 환수를 포기했다는 비난을 뒤집어 써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벌써부터 국방부 관계자는 “‘5~7년 연기라는 시점은 정부 정책이 계획대로 된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라면서 “미사일 공격 징후를 탐지하는 기술이 확보되면 실제로 타격이 가능한지가 문제가 되는 등 조건은 갈수록 복잡해질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최근 북한군의 미사일 훈련 등과 관련해 “킬 체인 무력화를 위해 이동식 발사대가 동원됐다”거나 “잠수함에서 쏘면 사전탐지가 어렵다”는 등의 얘기가 군에서 흘러나온다고 한다.

2020년 이후로 전작권을 재재연기하고도 또다시 연기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군의 행태가 마치 숙제하기 싫은 아이가 온갖 핑계를 대는 것과 같다.

한.미 당국이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을 내세우는 순간 이런 사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조건은 항상 변하기 때문이다. 한.미 당국이 북의 핵.미사일을 잡기 위해 킬 체인이라는 선제공격 무기체계를 갖추면 북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를 회피하고 넘어서는 무기체계 개발에 나서지 않겠는가,

그러면 우리는 2020년 이후에도 또 다른 새로운 위협에 직면하게 될 것이고, 이를 핑계로 또다시 전작권 환수는 연기될 것이다. 결국 한.미 당국은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라는 대국민 사기극을 벌이면서 사실상 전작권 환수를 영구히 포기하려는 것이다.

조건이 아니라 주권

전작권 환수는 조건과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주권과 의지의 문제다. 우리나라를 제외한 군대를 가진 전 세계의 모든 나라가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작전통제권 행사가 조건과 능력의 문제라면 우리보다 국력이 약한 백 수십 개 나라가 모두 강대국에게 작전통제권을 맡기지 않았겠나. 대체 어떤 얼간이가 자기 힘이 약하다고 힘센 조폭에게 안방 내주고 자기 집 지켜달라고 한단 말인가.

한.미 당국자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향상을 전작권 전환 재연기의 사유로 내세운다. 하지만 북의 3차 핵실험(2013. 2. 12) 이후에도 전.현직 한.미 당국자들은 한국이 전작권을 행사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밝혀왔다.

천영우 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재임 시 “전작권을 환수해도 북한 도발을 억제하고 위기에 대처하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연합뉴스, 2013. 2. 21)고 말했고, 게리 세이모어 전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도 “한국군은 전작권을 이전받을 충분한 능력과 조건을 갖추고 있다”(연합뉴스, 2013. 2. 19)고 밝힌 바 있다.

주목할 것은 국방부도 2013년 가을(2013. 9. 3)에 “핵심군사능력은 과제화하여 2015년 완료를 목표로 정상추진 중”이고, 군사전환분과 중 능력 및 체계분야도 “현재까지 변경 소요 없이 정상추진 중”이며, 연습분야도 “‘전략동맹 2015’ 추진과제를 정상 추진 중”이라고 국회에 보고했다는 사실이다.(국회의원 진성준 2013년 국감 정책자료집(1), <전시작전권 환수 공약파기, 국가안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인가?>, 86~87쪽)

2015년 환수를 전제로 국방부는 무기체계 도입비용을 제외하고도 전작권 전환 예산(합참전구지휘시설, 연합 C4I체계인 AKJCCS 개발, 연합연습/모의지원)으로 총 3,120억 원을 편성하여 2013년 가을 시점에 2,448억 원을 집행했다.(진성준, 위 자료, 18쪽) 줄잡아 3천억 원이면 3억 원짜리 아파트 1천 가구나 되는 막대한 금액이다.

전시에 나라의 운명을 좌우하고 장병들의 생사여탈권을 행사하는 군사주권의 핵심인 작전통제권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60년 이상 외국군대에 내맡긴 군대가 3천억 원이나 받아쓰면서 추진했던 전작권 환수를 두 번씩이나 연기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이에 대해 군내에서나 예비역 장교들 사이에서 반발이 전혀 없다.

이걸 보면 이들 중에는 군사주권을 반드시 되찾아야 한다는 확고한 의지를 가진 자가 없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주권의식도, 자존심도 없는데다가 최소한의 부끄러움도 모르니 이런 군에 어떤 희망이 있을까. 오직 조직이기주의와 보신주의, 한 자리 차지해보려는 탐욕만이 판을 치고 있는 것 아닌가.

미국은 이익보고, 한국은 부담지고

그렇다면 한.미 당국은 왜 거듭하여 전작권 환수를 연기하려는 것인가.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재연기에는 한.미.일 삼각 미사일 방어망과 한.미.일 삼각 군사동맹을 운영하려는 미국의 이해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한.미.일 삼각 미사일 방어망을 운영하려면 정보, 요격작전 지휘에 관한 한.미.일 3국 간 이해를 조정해야 하는데 미국은 한국군 작전통제권을 행사함으로써 자국의 이해에 맞게, 또한 한일 간의 이해 충돌도 조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7~8위의 막강한 한국군 전력을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 따라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로 운용하는 이점도 누릴 수 있다. ‘북한 변화 유도’ 및 (무력)흡수통일을 노리며 대북 선제공격전략과 전력을 운용하는 한.미 양국의 군사전략적 이해도 보장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로서도 미국의 이해를 충족시켜줌으로써 미국의 총애를 받고 이를 바탕으로 국내 친미수구 기득권세력의 지지기반을 확고히 하여 장기집권의 기틀을 마련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2013년 5월 김관진 국방장관이 헤이글 미 국방장관에게 전작권 전환 조건의 재검토를 공식 제의했다고 한다. 이게 진실일까. 이 또한 사기극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13년 2월 20일 성 김 당시 주한미국대사는 “만약 한국 측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2015년으로 예정된 전시작전통제권을 전환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위의 게리 세이모어도 하루 전날 “박근혜 정부가 원한다면 (전작권 환수 연기를) 충분히 미 정부와 논의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에 앞서 2012년 7월에 미 국방부가 유력한 싱크탱크인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 의뢰하여 미 상원 군사위원회에 제출한 ‘아시아태평양 미군배치 전략보고서’에 따르면 전작권 전환 연기 환영 여부는 한국의 대선 결과에 달려있다고 전제하고 현재의 전작권 전환을 연기하라고 권고하고 있다.(진성준, 위 자료, 58~65쪽 참조)

진성준 의원은 “미 정부는 ‘조건에 의한 전작권 전환’ 요구를 해야 한다는 미의회 보고서의 내용을 접수하고도 ‘요구자 비용 부담 원칙’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작권의 원론적 전환을 고수”했다면서 “전작권 연기 대가로 기존부터 미측이 한측에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였던 한측의 MD(미사일 방어)편입, 한.미.일 삼각동맹 참여 등의 요구와 압력이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도입, 한미일 정보공유양해각서 체결이 실행단계에 들어서는 것을 보면 이런 전망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북핵.미사일 문제는 근본적으로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재연기로 해결할 수 없다. 오로지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과 비핵화, 군축을 통해서만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전시작전통제권을 갖고 있지 못하면 한반도 평화협정 당사자의 자격이 문제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들 문제의 해결에 주도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전시작전통제권을 되찾아야 한다. 이는 우리가 중국을 적대하는 미국 MD와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에 빠져들지 않는 길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 공약에 이어 군사안보 공약도 사기공약으로 만들지 않으려면 전작권 환수 재연기 방침을 철회하고, “2015년 전작권 전환 차질 없이 추진”이라는 자신의 공약을 그대로 이행해야 한다.


 
전 애국크리스챤청년연합 부의장

전 민족화해자주통일협의회 사무처장

전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사무처장

전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범국민대책위원회 정책위원장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미군문제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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