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을지프리덤가디언’ 한미합동군사연습, 9월 인천아시안게임과 유엔총회, 10월 한미안보협의회의 악재들로 여전히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의 서광이 비치지 않고 있다.

진정 평화가 ‘밥’이고 통일이 ‘일자리’인가? 긴장과 대립, 분열과 분단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노동자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실천하고 있을까?

<통일뉴스>가 노동자들의 대표체인 민주노총의 신승철 위원장을 만나 그간의 노동자 통일운동을 평가하고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동자들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들어보았다. 대담은 9월 11일(목) 오후 2시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정성희 <통일뉴스> 기획위원(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진행했다. / 편집자 주


▲ <통일뉴스>와의 인터뷰에 응한 신승철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정성희 소장 : 먼저 6.15시대의 물꼬를 트는데 이바지한 1999년 8월 남북노동자축구대회 이후 지금까지 민주노총의 노동자 통일운동을 평가해주시겠습니까?

■ 신승철 위원장 : 1999년 8월 남북노동자 축구대회는 남쪽 노동자들에게 통일의 의제를 확산하는 중요한 계기였습니다. 분단된 나라에서 남쪽 노동자들이 북에 갈 수 있고 북쪽 노동자들과 만나 함께 어울릴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반공 이데올로기에 찌든 노동자들 속에서 화해와 교류협력, 자주적 평화통일에 대한 열망이 높아졌습니다. 또 노동자에게 통일은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하는 기회였지요.

남북교류사업 위주 노동자 통일운동의 한계

▲ 신승철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9월 11일 민주노총 위원장실에서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진행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그 이후 2000년 6.15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되고 각종 남북공동행사에 참여했으며 노동자 통일선봉대, 나아가 전국 각 지역의 노동자 통일실천단을 구성해 매년 전국을 돌면서 통일운동을 노동자들 속으로 확산해왔습니다. 한국노총과 함께 북측 조선직업총동맹(약칭 '직총')을 파트너로 남북노동자 교류사업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노동자 통일운동이 대중화되었지만, 남북노동자 교류사업이 계속 유지, 확대되지도 못했고 일상적 통일운동으로 질적 발전을 가져오지도 못했다고 봅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시절, 정부당국에 의해 허용된 교류사업을 위주로 노동자 통일운동이 전개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이 들어서 민간교류, 특히 남북노동자교류를 차단해온 지난 6년, 노동자 통일운동 자체도 약화되었습니다.

어떤 상황에도 평화와 통일 의제를 지속적으로 확산하는 질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민주노조운동은 정부 주도의 관제화를 경계했지만, 교류협력 중심의 통일운동 전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일상적인 노동자 자주평화통일운동의 중요성이 희석되고 평양으로 갈 수 있냐 없냐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교류가 차단된 이후에는 구호성 통일운동에 그치는 측면이 있습니다. 노동자 통일운동 역량을 축적하고 자주 평화 통일 의제가 노동자에게 무엇인지 깊이 깨닫고 실천하는 다양한 소재와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 정성희 소장 : 요즘 평화와 통일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이나 의식상태가 예전에 비해 저조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일까요? 노동자들이 고용임금문제와 경제발전문제와 평화통일문제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자주평화통일운동에의 관심과 참여를 높이는 좋은 방안이 없을까요?

■ 신승철 위원장 : 2012년 민주노총 통일위원회에서 전국적 샘플을 가지고 조합원 통일 의식조사를 한 바 있습니다. ‘평화와 통일’이 노동자대중 자신의 요구임은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러나 그 요구가 실천으로 외화되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반북의식’이 일정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남북노동자 자주교류가 차단된 2007년 이후 정권의 반북이데올로기 공세는 현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보지 않고 만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고 어떤 계기로 불신이 더 확대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은 경제주의, 통일운동은 정치군사주의

▲ "통일운동을 중시하는 활동가들은 계급운동을 부차시하고 계급운동을 중시하는 활동가들은 통일운동을 홀시하는 편향도 있었습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또 무엇보다 노동자들이 당면 투쟁에 피로가 쌓여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신자유주의에 맞선 투쟁이 경제투쟁에 머물고 통일운동은 교류협력이나 정치군사적 소재 위주로 전개되어 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가슴에 와닿게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통일운동을 중시하는 활동가들은 계급운동을 부차시하고 계급운동을 중시하는 활동가들은 통일운동을 홀시하는 편향도 있었습니다. 노동자의 당면 투쟁이 노동자 통일운동과 밀접히 결합하지 못하고 이분화된 것입니다.

제가 기아차노조 위원장 시절에 매향리투쟁이 있었는데, 매우 부담스런 일임에도 회의를 거쳐 조합원 파업대오를 결합시켰습니다. 조합원들이 평택 미군 이전 확장의 정치군사적 의미를 다 알고 참여한 것은 아니거든요. 화성공장 위로 날아다니는 미군 폭격기의 소음에 분노한 조합원들을 매향리 방문 파업 프로그램으로 인도하니까 그로 인해 많은 것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용임금문제와 경제발전문제와 평화통일문제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의 폭을 계속 넓혀야 하지만, 간부들은 몰라도 조합원들까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지역과 부문의 어떤 관련 현안이나 정세흐름의 어떤 계기를 포착해 조합원들에게 생동감있게 해설하고 다양한 수준의 실천을 유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통일의 상과 경로가 노동자들에게 선명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저는 정부 주도의 교류협력이나 통일을 반대합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재벌들도 통일을 얘기하는 상황입니다. 저들은 자본주의 흡수통일을 바랄 것입니다. 그러면서 민간교류는 막습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도 남북노동자 자주교류사업에 제약을 가했습니다.

어떤 통일? 어떻게? 노동자들 속에서 공론화돼야 합니다. 6.15공동선언 2항의 연합연방과 그 이후의 노동자의 삶, 노동자의 정치경제사회문화 생활이 생생하게 그려져야 노동자 통일운동이 더욱 활발해질 것입니다. 또 기층민중의 자주교류가 허용되거나 힘으로 쟁취해야 올바른 통일을 이룰 수 있습니다.

간부 역량 강화하고 일상적 실천 개발해야

▲ "노동법 개정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바꾸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간부역량을 강화하고 아래로부터 노동자 통일운동의 기반을 확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북교류가 차단된 이후 일부에서 '북에 갈 수도 없다’, '이제 뭐하냐’는 식의 패배감이 있었지만, 평화기행, 통일교과서와 강사단, 통일학교, 조선학교 지원 등으로 대중적 기반이 점차 확대되고 있습니다. 올해 노동자 통일선봉대가 300여명을 넘었습니다.

조선학교 지원사업은 ‘조선인 노동자 징용 문제’를 소재로 역사왜곡, 집단자위권, 위안부문제 등 일본 신군국주의 반대와 친일잔재 청산 투쟁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올해 양대노총이 일본을 방문, 징용 노동자 추모제에 참가한 바 있습니다. 이는 노동자 자주통일운동의 또 다른 중요 영역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 정성희 소장 : 요즘 대기업 공기업 노동조합이 임금인상,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파업투쟁을 전개하면 국민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상황입니다. 정권과 자본, 보수언론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영세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과의 격차를 악용하기 때문입니다. 국민들로부터 박수 받는 노동운동을 위해 비정규직과 함께하고 지역주민들과 함께하는 동시에 겨레의 염원, 평화통일에 함께해야 하지 않을까요?

■ 신승철 위원장 : 맞습니다. 사실 현재 한국경제의 구조, 노동유연화 등의 신자유주의 조치, 한반도의 평화위협과 분열분단을 그대로 두고 임금인상, 근로조건 유지, 노동법 개정만으로는 노동자들의 처지를 바꾸는데 근본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평화를 실현하고 남북경협과 북방경제, 통일민족경제로 나아가야 일자리도 생기고 임금인상도 가능한 번영의 터전이 마련됩니다. 그리고 진보정치의 힘을 기르고 외자-재벌 중심의 경제를 민주화해야 노동자, 민중이 정치와 경제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실천이 기업 울타리 안에서, 노조의 틀으로는 담보되기 어렵습니다. 민주노총 미래전략위에서 논의하는 내용인데, 다양한 진보적 가치와 의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노동자들이 공장이나 직장에서 지역이나 동네로 나가야 하며 주민들과 결합해 생활정치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주와 평화와 통일 의제의 실천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앞장서 지역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매년 5천여명이 참여하는 경남 창원 통일마라톤은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 대중적 지역통일운동의 모범사례입니다.

기업 울타리 벗어나 지역으로 나가야 대중적 통일운동 열린다

▲ "노동자들이 비정규-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진보정치의 혁신통합, 자주평화통일운동의 대중화로 지역운동에 적극 결합하는 경로를 밟아야 합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노동운동의 혁신과 발전을 위해서라도 조직된 노동자들이 비정규-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 진보정치의 혁신통합, 자주평화통일운동의 대중화, 이 세 가지 주제로 지역운동에 적극 결합하는 경로를 밟아야 합니다. 자기 호주머니 채우는 것에 머무는 노동운동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지역운동에 참여하는데 한 가지 유의할 점은, 비정규직운동, 진보정치운동만이 아니라 자주평화통일운동도 몇몇 운동꾼들이 일방적으로 선도하는 식이면 노동자들이 소외되고 소극화된다는 것입니다. 대중적 통일운동의 주체 형성과 실천방도를 강구하는 데 깊은 사색과 고뇌가 있어야겠지요.

□ 정성희 소장 : 북미 또는 6자회담은 재개되지 않은 채 한미 합동군사훈련은 계속되고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는 재연기되며 미국 미사일방어체계의 일환으로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가 평택 미군기지에 배치될 상황입니다. 노동자들이 한반도 평화 실현을 위해 어떤 입장을 갖고 어떤 실천을 해야 합니까?

■ 신승철 위원장 : 민주노총은 올해 한미일 군사동맹 저지, 미국 미사일방어체제 동참 반대를 주요 평화투쟁으로 삼고 그 중간 고리로 집단적 자위권 등 일본 신군국주의를 반대하는 투쟁도 전개해왔습니다. 관련해 ‘2014년 평화소책자’를 제작해 배포한 바 있습니다.

쉽게 동참할 수 있는 풍부한 자주평화 실천방안 개발해야

▲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통일대박'을 노동자들이 지지하겠어요?"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그런데 이런 내용을 어떤 방법으로 조합원들에게까지 교육선전할 것인가 고민입니다. 경제주의 조합주의 사고가 만연한 조합원들이 자주평화문제를 자신의 요구로 받아들이게 하려면 더 풍부하고 더 대중적인 접근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도 전 세계에서 가장 전쟁을 많이 일으키는 나라는 미국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한반도에서 쉽게 전쟁이 일어나겠느냐는 안일한 인식도 작용하고 조합원들이 쉽게 동참할 수 있는 평화실천을 다양하게 개발,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측면도 있습니다.

□ 정성희 소장 :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을 주장하고 '통일준비위'를 구성했지만, 여전히 5.24조치 해제와 금강산관광 재개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신승철 위원장 : 박근혜 정권의 통일정책에 대해 평가는커녕, 더 이상 입에 담을 가치도 없다고 봅니다. 민주도 통일도 과정이 중요한데, '통일대박’은 결과만 있어요. 또 누구를 위한 '통일대박'인지 묻고 싶습니다. 명백히 자본 주도의 흡수통일을 지향하는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렇다면 빈부격차, 부정부패, 실업과 해고와 비정규직 같은 신자유주의 단계의 자본주의 병폐를 한반도 전체로 확장하겠다는 것이 아닙니까. 이런 '통일대박'을 노동자들이 지지하겠어요?

‘통일대박’, 신자유주의의 한반도화일 뿐

▲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 1천명의 노동자 통일응원단 '아리랑'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정성희 소장 :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인천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은 참가하고 응원단은 못온다고 하는데, 왜 그렇게 됐을까요? 응원단이 못오더라도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화해협력 분위기를 높이기 위해 노동자들은 무엇을 해야 합니까?

■ 신승철 위원장 : 북측 응원단이 오게 되면 인천 아시안 게임이 세계적 이목을 끌어 한국의 국제적 위상도 올라가고 남북 공동응원으로 민족화해 분위기가 고조되면 남북관계도 개선되고 이를 지렛대로 북미관계도 변화시킬 수 있는 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더구나 보도에 따르면, 인공기가 부담스러워 북측 응원단이 못오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경기장 이외 시내의 참가국기 게양을 취소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형제가 남보다 더 못하냐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비정치적 스포츠 분야에서 먼저 통일을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 단일팀 구성이나 공동 입장을 성사시키지 못할 망정, 북측 응원단도 못 오도록 하고 선수단 환영인사도 전투경찰로 차단벽을 치는 박근혜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처사를 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민주노총은 인천 아시안게임을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기운을 높이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입니다. 1천명의 노동자 통일응원단 '아리랑'을 조직하고 있습니다. 그 힘으로 민주노총 창립 20년, 분단 극복 70년에는 반드시 남북노동자 자주교류의 돌파구를 마련할 것입니다.

1천명 노동자 통일응원단 '아리랑' 조직할 것

▲ 인터뷰 후 신승철 위원장(왼쪽)과 정성희 소장이 함께했다. [사진-통일뉴스 박귀현 기자]

□ 정성희 소장 : 마지막으로 긴장과 대립에서 가장 큰 손해를 보고 평화와 통일에 가장 큰 이득을 보는 전국의 노동자와 그 가족에게 당부의 말씀을 해주십시요.

■ 신승철 위원장 : 평화와 통일은 노동자에게 ‘밥’ 입니다. 일자리의 창출과 안정도 평화와 통일에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생명존중의 목소리가 드높아졌는데, 생명은 평화를 통해 지켜지지 않습니까? 민주노총은 올 하반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해 총력 투쟁하겠지만,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도 열심히 실천해갈 것입니다. 이 땅의 생명과 평화를 사랑하는 노동형제들께서도 함께 해주시길 바랍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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