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영성가 김반아 박사와 AOK가 만났다. 김반아 선생님은 감성치유와 평화운동, 통일운동을 접목시킨 활동가로 9월 9일 로스앤젤레스에서 김박사가 제작, 감독한 다큐멘터리 <님의 소원>(Sacred Mission) 상영과 대담을 AOK(Action for One Korea) 주최로 가지게 되었다.

‘평화의 길, 통일의 길’ 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날 대담에서는 대를 이어 면면히 내려오는 김박사 집안의 평화와 통일에의 여정이 감동스럽게 펼쳐졌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최고의 금광왕으로 자신의 부를 아낌없이 털어 함께 잘사는 사회를 꿈꾸었던 외조부 이종만 선생, 오랜 해외 이민 생활을 접고 제주로 역이민해 영성가의 삶을 살다 지난해 작고한 어머니 일산 이남순 여사, 외조부와 어머니의 뒤를 이어 감성치유 영성가로서 활동하게 된 김반아 박사의 삶에는 지난 100년간 한국 현대사의 고난과 아픔, 분단 극복을 위한 희망이 절절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내고 있는 아드님 김인근 (미국명 이안 김)씨까지 포함하면 4대에 거쳐 분단 극복을 위한 삶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 외조부의 대동사상을 2세기에 접목시켜온 김반아 박사는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제주도로 역이민해 영성개발과 감성치유를 통한 평화통일의 길을 개척하고 있다. LA에서 가진 대담. [사진 - 정연진]
김반아 박사는 고등학교 3학년때 브라질로 가족이민을 갔고 다시 캐나다로, 그리고 미국으로 와서 시카고대 철학 석사, 하버드대 교육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감성치유와 영성계발을 연구했으며 3년 전 한국으로 역이민해 제주도에 둥지를 틀고 지구촌 곳곳을 오가며 ‘생명모성’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 이원영 미주중앙일보 논설위원이 김반아 박사와의 대담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심흥근 기자]
"제가 하버드 철학박사 출신이면 뭐 합니까. 어머니와의 갈등 하나 해결하지 못하는데 누구를 가르치겠습니까. 긴 시간 고민과 숙고 끝에 갈등의 저변에는 한국인의 어머니상이란 이름으로 위장된 ‘엄마 바이러스’가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성치유 전도사로서 반아 박사는 내면의 분단 치유가 통일의 첫걸음이라고 한다. '엄마'라는 이름에 강요되는 사회적 부담과 억압을 없애야 진정한 모성을 찾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감정 탯줄 자르기'(저술 중인 책 주제)에 나섰다.

▲ 반아님과 일선님은 모녀관계에서 영적 동반자의 관계로 거듭나 평화운동의 길에 함께 하게 되었다 [사진출처 - 김반아 박사 블로그]
반아 박사는 어머니에게 호를 하나 지으라 부탁했고, 영성가였던 어머니 이남순 여사는 '일선'이란 호를 지었다. 이후 반아 박사는 어머니를 '일선님'으로 부르며 영적 동반자의 관계를 형성하고 평화운동의 길을 같이 가는 동지가 되었다. 어머니의 ‘영세중립평화통일론’을 더욱 내면화 하여 ‘영성중립’ 평화통일론을 개척하고 있다.

“우리민족이 큰 역할을 해야 할 시점에와 있다”며 “우리 민족 앞에는 내면치유와 화해성장을 통해 한 뜻으로 뭉치면서 이 세계에 평화 메시지를 전달해야 할 사명감을 갖고 있다”고 김반아 박사는 강조한다.

북으로 간 ‘아름다운 부자’, 외조부 이종만 선생

▲ 4) 조선 최고의 금광왕이었던 이종만 선생 사진. [출처 - 김반아 박사 블로그]
여러 사업에서 숱한 실패를 딛고 27전 28기로 마침내 일제하에서 조선 최고의 금광왕으로 성공한 이종만 선생은 “일 하는 사람은 다 같이 잘 살자"라는 대동사상을 직접 실행에 옮긴 ‘아름다운 부자’였다.

이종만은 조선에서 가장 큰 광업회사인 '대동광업주식회사'를 설립한 이후 본격적으로 사회사업을 시작했다. 대동광업에서 해마다 나오는 수백만원대의 이익금을 쏟아부어 교육사업과 문화사업, 자영농 육성사업을 왕성하게 전개했다.

일제의 수탈이 극심해지던 1937년, 조선 제일의 금광왕 이종만 선생은 기자회견을 갖고 충격적인 제안을 한다. 영평금광을 매각한 현 시가 500억원에 상당하는 자금으로 집단농지를 매입해 경작자에게 골고루 분배한 후 30년 후 영구히 경작하게 한다는 구상은 당시 소작료가 50%-70%에 달하던 식민지 조선을 떠들썩하게 만든 일대 사건이었다.

이종만은 그런 식으로 조선 토지를 몽땅 사들여 조선 농민 전체를 자영농으로 만들려는 원대한 포부를 지니고 있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이러한 갸륵한 부자의 토지가 불행히도 150만평에 불과하여 수혜자가 153호에 그치는 것은 매우 섭섭한 일’이라고 극찬할 정도였다고 한다.

다함께 잘사는 세상의 꿈을 위해 대동공업전문학교(현 김책공업대의 전신), 대동광산조합, 대동출판사 등 ‘대동콘체른’을 건설했다.

해방 후 이종만 선생은 1949년 평양에서 열린 통일회의에 참가했다가 대동사회 건설과 조국통일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북에 남는다. 북에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초대 의장, 중앙위원회 위원장, 최고 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내고 통일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1978년 작고, 자본가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힌다.

남,북이 함께 존경할 수 있는 인물을 찾기가 매우 힘든 한국 현대사에서 이종만 선생은 우리가 온전히 주목해야 할 인물이다.

▲ 북의 애국열사능에 묻힌 아버지 이종만 선생의 묘를 방문한 이남순 여사. [사진출처 - Sacred Mission ‘님의 소원’ 다큐, 유튜브 캡쳐]

▲ 북의 애국열사능에 묻힌 외할아버지 이종만 선생의 묘를 방문해 ‘할아버지는 나에게 등불이었다’라고 울먹이는 김반아 박사. [사진출처 - Sacred Mission ‘님의 소원’ 다큐, 유튜브 캡쳐]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일선 이남순 여사

김반아 박사의 모친 일선 이남순 여사는 캐나다로 이민가 살고 있을 때 부친이 북한에 생존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1975년 방북, 27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아버지 이종만 선생과 상봉한다. 아버지는 90을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3박4일간 깊은 대화를 통해 그의 대동사상과 민족의 평화통일에 대한 원대한 꿈이 자신에게로 숙명적으로 이어졌음을 깨닫게 된다.

이남순 일가는 방북 이후 수 년간 캐나다 동포사회에서 친북인사들에게 가해지는 혹독한 핍박에 힘든 고난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는 마침내 제주도가 남북평화 통일과 세계 평화의 못자리가 된다는 깨달음으로 2006년 제주도로 역이민해 평화운동에 투신하게 되었다.

▲ 이남순 여사의 회고록 <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2010. 정신세계원)의 표지.
"60년도 더 넘게 우리 민족을 갈라놓고 있는 이 거대한 장벽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감격과 다시 헤어짐의 쓰라림을 보면서 그 눈물에 함께 젖지 않는 동포가 어디 있겠는가!”

남북 분단의 아픔이 절절하게 기록된<나는 이렇게 평화가 되었다> 이남순 회고록은 이번 강연회에서도 거의 매진될 만큼 주목을 받았다. 몇 가지 가슴에 와닿는 문구를 옮겨본다.

남북의 모든 동포들의 소망은 다 같을 것이다. “갈라져 살지 말고 서로 싸우지 말고, 모두 하나가 되어 다 같이 사이좋게 잘 살아보자꾸나!” 이것 뿐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 모두의 진심이라면 하늘은 반드시 우리의 소망을 들어줄 것이다. 우리의 지극한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행복 없이는 남한의 행복이 있을 수 없다는 엄연한 진실을 우리기 깨달아야한다.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 

“남북의 영세중립평화통일론’의 핵심은 민중 중심의 통일이고 마음의 힘으로 이루는 통일이다.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는 순수한 인간의 본성에서 그리고 이제 다시 부활하는 민족혼의 불길에서, 그 근원적인 기운이 샘솟아 날 것이다."

통일의 길에서 나의 금광은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김반아 여사는 온갖 사업의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금광왕으로 성공한 외할아버지 이종만 선생을 이야기하면서 “할아버지는 과학적 장비나 기술없이 육감을 가지고 금맥을 찾아낸 분이다. 나에게도 그렇게 금광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의 금광은 무엇일까’를 고민하다 보니 교육철학을 하게 되었고 인간의 영성계발에서 자신의 금광을 찾게 되었다는 것이다.

▲ ‘평화의 길, 통일의 길’을 만난 사람들의 표정에 평화로운 미소가 넘친다. 강연이 끝나고 남은 사람들이 김반아 박사와 함께 했다. 아래줄 가운데 만화가 이안 김.(김반아 박사의 아들) [사진 - 심흥근 기자]
사회적, 정치적인 통일 논의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개인적 차원, 영적인 차원에서의 통일은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적 정치적 통일을 이룰 수 있는 기반은 바로 우리들 내면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남북통일은 우리 개인들의 내면적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사회-정치적 통일이 일어나기 전에 마음의 통일, 즉 마음의 연결이 일어나야 한다’는 말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해외 동포들이 만들어갈 수 있는 남북 소통과 화해를 위한 ‘마음의 연결’이 우리에게 또 다른 금광 또는 에너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은 통일운동이 불 지펴지고 있어 이를 함께 할 때 삶의 의미와 보람이 느껴질 것이고 ‘내 마음 속의 통일’을 가져올 때 통일 미래가 일어날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반아 박사의 말이 긴 여운을 남긴다.

*에필로그:
해외동포들이 남과 북의 소통과 화합에 어떠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남순-김반아 여사가 2007년 판문점에서 만난 북측 장교와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 이남순-김반아 여사가 2007년 판문점에서 북측 장교와 나눈 대화 [사진출처 - Sacred Mission ‘님의 소원’, 유튜브 동영상 http://youtu.be/E2s4hFkfRZA?t=30m13s]
북한장교: 어무이, 판문점에 처음 오세요?
김반아: 지금 웃는 얼굴이 모두 영화에 들어갑니다.
북한 장교: 일없어요. 내 얼굴은 세계 곳곳에 안 가있는 나라가 없어요.
김반아: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북한장교: 내 이름은... 정철… 순 정철.
김반아: 저… 직위는 뭐라고 불러요?
북한 장교: 참모. 별 두알. 준장
김반아: 별 두알! 그럼 아주 높으신 분이네요.
북한장교: 그다지 높지 못해요. 근데 오마니 연세가 지금 어케 되기요?
이남순: 팔십 칠세 입니다.
북한장교: 어우~~, 여든 일곱! 제주도에? 제주도에 와서 살아요?... 제주도가 그렇게 경치가 좋다는데…
이남순: 인심도 좋고 공기도 좋고, 경치도 좋고…
북한장교: 빨리 통일이 되면 거기 가서, 날씨 구경하면서 낚시 한번… 북조선 사람들은 아~주 무서운 사람이라는거, 옛날엔 거저… 무슨… 뿔이 나오고, 얼굴이 시뻘겋고… (남에서) 그렇게 나쁜 선전만 했단 말이에요.
이남순: 그러니까 그걸 풀기 위해서는 웃는 얼굴을 많이 보낼 필요가 있어요.
북한장교: 어허, 그래요. 허허허… 할머니, 이제 제주도에 가면, 가서 “아, 우리 빨리 통일하자. 내 이번에 북에 가서 군대들이랑 만나보았는데… 정말 마음들이 좋다는거…”
이남순: 인제는 통일이야기 시작되었어요.
북한장교: (웃으며) 통일이 멀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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