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랑 / 21세기민족주의포럼 대표


프란체스코 교황이 4박5일 동안의 한국 방문을 마치고 바티칸으로 돌아갔다.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위선적이고 독선적이며 사치한 성직자들을 많이 보아온 우리는 그의 진솔하면서도 검소한 모습에 아연해지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그는 거기에서 머무르지 않았다. 이 땅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하고, 억울한 자, 소외된 자, 가난한 자들에게는 위로의 말을 잊지 않았고, 힘이 되어주기도 하였다. 그의 소통하는 자세, 낮은 데로 임하는 자세, 겸손하면서도 묵직한 언행은 정말 참다운 종교 지도자라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그의 진면목을 우리에게 보여 준 것은 그가 이 사회의 모순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그것의 해결을 위한 행동을 실천한다는 점이었다. 그가 찾은 사람들, 세월호 유가족, 일본군 위안부, 해군기지 반대 투쟁을 하는 강정마을 사람들, 송전탑 반대투쟁을 하는 밀양 주민들, 쌍용노동차 해고자들, 용산 참사 희생자 가족들은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집약해서 보여 줄 수 있는 희생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가 이러한 사람들을 모두 부르고 진정한 위로와 용기의 말을 했다는 것은 정말 이보다 더 진보적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우리는 왜 이런 지도자가 없을까 하는 생각까지 말하곤 한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생각이다. 우리는 교황 하면 대체로 제국주의의 대리인, 가진 자들의 대변인, 나아가서 독재정권의 지원자로 인식하여 왔다. 물론 우리 사회에서 많은 성직자들이 독재정권과 싸웠고, 이 사회의 정의와 평화를 위해 지금도 싸우고 있다. 하지만 1984년과 1989년의 교황 방문은 독재정권과 싸우던 민주세력에게는 정말 교황에 대해 좋게 생각하려야 할 수 없는 뼈아픈 기억을 남겨 준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문을 통해 오히려 이러한 지도자가 없음을 한탄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러한 격세지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프란체스코 교황은 개인적으로 훌륭한 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사람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필요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한다. 프란체스코 같은 분은 아마도 그렇게 오래 되지 않은 시기에는 백색 테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싸워오고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실천해 온 성직자들, 평신도들이 있었기에 이런 훌륭한 분이 교황에까지 오를 수 있었던 것이고, 그의 종교적 신념을 마음껏 실천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가톨릭 내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의 진보적 가치를 위한 꾸준한 노력과 희생의 결과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정말 인류에게 축복이요,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이런 훌륭한 교황이 나온다는 보장은 없다. 사악한 무리들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뜻에 맞는 교황을 세우기 위해 갖가지 공작을 벌일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역전시키는 것 역시 그들의 마음대로만 되지는 않다. 이 분이 교황의 자리에 오르고 그 지위를 유지하며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그만큼 인류사가 진전되었다는 것의 한 증거일 것이다. 그러므로 프란체스코 교황이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평화와 정의를 위한 인류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보아도 된다.

우리 사회로 눈을 돌려 보자. 그 동안의 수많은 투쟁과 희생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퇴보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거기에 나날이 심해져가는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낳은 살인적인 경쟁 풍토 속에서 사람들은 자아를 잃어버리는 듯한 모습도 보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방한한 프란체스코 교황은, 독재 정권의 옹호자도 아니요, 제국주의의 대리인도 아니고, 가진 자의 대변인도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소통 없는 정권에 경각심을 주고, 진정한 평화를 일깨워 주는 선지자였고,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억울한 자의 눈물을 닦아 주며 많은 이들에게 그들을 위해 살 것을 역설하는 사도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방문에 감동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프란체스코 교황이 말씀하시듯이 그의 한국 방문은 ‘신이 주신 축복’이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그의 진면목을 여실히 보여줄 수 있을 정도로 의로움을 위한 투쟁이 있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가 부른 많은 사람들은 평화를 위해서 정의를 위해서 진리를 위해서 싸웠고, 싸우는 사람들이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교황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을 필요도 없고, 그러한 편협한 사고에 머무르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물론 우리의 이전 사고는 많이 반성되어야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새로운 생각을 가져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 역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이해되고 반성되어야 한다. 나아가서 이제 우리도 프란체스코 교황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 지도자는 더 많은 대중을 향하고, 그들과 접촉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이 시대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는 민주주의와 민족통일, 민중생존권의 수호자, 실천자가 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우리 사회에도 그러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다. 그리고 그래야만 한다. 지금 우리 속에 그러한 지도자는 성장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직 우리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을 따름이다. 정치계든, 종교계든, 노동운동이든, 시민운동이든 우리는 그러한 지도자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러한 지도자는 지금까지의 기득권층이 하듯 공작에 의한 이미지 조작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의 피와 땀을 딛고 그 가운데서 탄생하는 것이다.

프란체스코 교황의 방문, 그것은 인류에, 우리 민족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준 것이고, 우리에게도 새로운 지도자가 탄생할 수 있다는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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