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의 3대 요소는 ‘형(形), 상(象), 색(色)’이다.
형(形)은 사물의 꼴을 말하고, 상(象)은 사물에 붙은 상징을 뜻하며, 색(色)은 사물의 존재감, 질감, 장식 따위를 총합한 개념이다.
모든 미술작품에 표현되어 있는 사물에는 상징이 붙어있다. 아무 상징이 없는 소재를 사용하는 경우는 없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그림 속에 표현되어 있는 상징을 시대의 흐름이나 개별적 정서에 맞게 이해하는 것이다.
상징은 뛰어난 화가라도 쉽게 만들지 못한다.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한번 만들어진 상징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상징은 두 가지 원리에 따라 만들어진다.
첫째, 고사(古事), 신화, 설화 같은 이야기 속에서 만들어진다.
이를테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사랑의 징표로 장미를 사용했다면 장미가 사랑의 상징이 되는 원리이다.
둘째, 생태적 특성에 따르는 것이다.
흔히,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간 것은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는 것은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라는 방법으로 사물이 가지고 있는 생태적 특성을 이용하여 상징을 만든다.
예를 들면, 연꽃이 탁하고 진흙이 있는 물에서 자라는 생태적 특성을 이용하여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고 출세하다’는 상징을 부여하는 것이다. 물고기가 눈을 뜨고 자는 생태적 특성을 이용하여 열쇠를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생태적 특성을 이용한 상징은 직관적이기는 하나 억지스러움이 있다. 사물을 보는 사람에 따라 혹은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다른 상징으로도 쉽게 변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그림의 상징은 위의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전혀 다른 방법을 쓴다.
그것은 문자유희를 이용한 상징법이다.
문자유희란 문자의 발음이나 뜻, 구조 따위를 이용하여 사물에 상징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게는 딱딱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데 이를 한자로 쓰면 등갑이라고 한다. 이 등갑이라는 한자는 일등이라는 말과 발음이 같다. 그래서 게는 과거시험에 일등으로 합격하라는 출세의 상징이 되었다. 연꽃이 핀 못에 청둥오리가 노니고 있는 그림인 [연지유압蓮池流鴨]은 연꽃의 연과 연달아의 연(聯)이 발음이 같고, 오리 압(鴨)자에 획 중에 갑(甲)이 있다는 이유로 향시와 전시에 연달아 일등으로 합격하기를 바라는 상징을 가진다.
이렇게 만들어진 상징은 그림 속에 표현된 사물의 생태적 특성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그래서 문자나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도무지 그 뜻을 알 수 없거나 엉뚱한 내용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한다.
이런 문자유희는 한자, 즉 글자를 읽고 쓰는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철저히 지식인의 문화이다.
한자는 중국의 글자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공통된 글자였다. 알파벳이나 로마문자가 유럽이나 영어의 공통적인 뿌리인 것과 같다.
한자는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용했고 고려와 조선의 중심문자였다. 모든 역사와 지혜와 철학은 한자로 기록되었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모두 한자를 쓰고 읽을 수 있었다. 양반보다는 선비가 더 넓은 개념이지만 낮은 관직이라도 얻으려면 한자를 읽고 쓸 수 있어야 한다.
조선 초기에 대략 10% 정도였던 양반호(兩班戶)는 정조 재임기간인 1783년에는 약 37%, 1853년에는 약 70%까지 늘었다. 양반호(兩班戶)와 양반인구는 다를 수 있다. 양반집에 기거하는 노비나 식솔들이 모두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평균 20~30% 정도의 오차를 인정하더라도 조선시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한자를 읽고 쓸 수 있었다는 것은 맞다. 전체 인구의 40~50% 정도가 한자를 읽고 쓸 수 있었던 18세기 전후에 문자유희의 상징법을 적용한 그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것은 흥미롭다.

그 당시 한자라는 문자는 최고급 가치였다.
한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은 과거 수천 년간 집적된 지혜와 경험을 배울 수 있었고 당대에 적용해 선진문물을 수용하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미래를 예견하고 설계할 수 있는 엄청난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이러한 당대의 최고급 가치를 이용해 상징을 만들고 적용한 것은 그림의 가치와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

▲ 위-변상벽의 고양이.
아래-김홍도의 고양이와 나비.
생태적 상징으로는 도저히 장수를 축원하는 그림인지를 알 수가 없다. 문자유희를 통해 원초적 욕망을 숨겼기 때문이다. 이런 상징법이 그림에 적용된 경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좀처럼 찾기 어렵다. 또한 문자유희를 통해 그림의 소재가 넓어졌고 상징과 관계없이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이중구조를 가진 독특한 그림이 되었다. [자료사진 - 심규섭]

또한 문자유희를 이용한 상징법은 사회공동체와 잘 부합한다.
동물적 인간과 사회적 인간이 있다. 원초적 본능과 사회적 본능도 있고 생물학적 생명과 사회적 생명이라는 개념도 있다. 인간이 사회공동체를 만든 것은 생존과 번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살인, 약탈, 폭행 따위의 범죄는 모두 사회공동체의 범죄이다. 사회공동체가 없다면 이런 범죄도 성립되지 않는다. 인간문명의 발전은 언제나 동물적 욕망과 사회적 욕망의 치열한 싸움에서 나온다. 동물적 욕망이 지배하는 사회는 망하고 사회적 욕망이 발전하는 사회는 진보한다. 동물적 욕망은 제어, 통제되어야 하고 사회적 욕망은 장려되어야 사회가 발전한다.
민화의 핵심 상징인 ‘부귀영화, 불로장생’은 사회적 욕망이라기보다는 동물적 욕망에 가깝다. ‘부귀영화’는 반사회적이다. 물질재부가 한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부귀영화를 바란다는 것은 독식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 사람이 많은 재부를 가지면 다른 많은 사람은 굶어야 한다. 사회적 욕망은 자기절제를 바탕으로 나누어 먹고자하는 것이다.
‘불로장생’은 반자연적이다. 자연의 모든 생명체는 태어나고 성장하며 늙고 죽는다. 이것은 자연의 질서이다. 늙지 않고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자연과 맞서는 일이고 자연의 질서에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사회적 욕망은 자연의 흐름을 따르면서 나이와 세대에 맞는 역할을 찾고 실천하는 것이다. 늙은이는 젊은이에게 지혜와 경험을 아낌없이 주어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바탕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출세를 하려는 욕망을 가진다. 이것은 돈과 권력이 목적이라기보다는 자신의 가치를 사회 속에서 구현하려는 의지의 발현이기 때문에 정당하다. 또한 건강하게 오래 살려는 욕망도 가지고 있다. 공동체가 발전하면 사람들의 질병은 현격히 줄고 수명은 늘어난다. 이것은 사회공동체는 집단지성이 발휘되기 때문에 천재지변의 위험과 살해, 전쟁의 위협, 질병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세는 그 특성상 권력과 재부를 동반할 수밖에 없고 무병장수는 노욕과 노망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 선비들은 이러한 반사회적이고 반자연적인 문제를 경계했다. 정당한 출세를 바라지만 그것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또한 무병장수의 욕망이 노욕(老慾)으로 발전하는 것을 두려워해서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출세를 바라는 그림에서 출세의 내용을 알기란 어렵다. 장수를 바라는 그림에서 장수에 대한 상징을 찾기 어렵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최고의 수단인 문자를 이용해 욕망을 숨겨서 동물적 욕망을 제어하고 통제하고자 한 것이다.

우리그림에서 회갑이나 고희를 축원하는 그림은 생각보다 많다.
흔히 모질도(耄耋圖)라고 부르는 그림이다. 우리말로 발음하면 묘접도(猫蝶圖)이고 풀이하면 고양이와 나비그림이 된다.
묘접도는 고양이와 나비, 국화, 패랭이꽃 따위를 소재로 한 그림인데 핵심은 고양이와 나비이다.
고양이를 뜻하는 한자인 묘는 70세를 늙은이를 뜻하는 중국의 모와 발음이 비슷하고, 나비를 뜻하는 접은 80세를 뜻하는 중국어와 발음이 비슷하다. 이건 순전히 선비들의 문자유희의 결과이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고양이와 나비를 그린 그림을 보고 장수축원의 의미를 알 길이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그림은 주로 문자를 아는 선비나 양반들 사이에서만 소통되었겠지만 글자를 모르는 사람에게도 설명을 통해 그 의미가 전달되었을 것이다.
어쨌든 김홍도, 변상벽 같은 화가들에 의해 많이 그려졌지만 비단, 화가들만의 소재는 아니다. 추사 김정희 같은 분도 어설픈 솜씨로 고양이를 그려 장수를 축원했다.

▲ 장수축원/심규섭/디지털회화/2014. [자료사진 - 심규섭]

아무튼 이 그림은 변상벽의 묘접도를 바탕으로 변주한 그림이다.
변상벽의 고양이를 그대로 차용했다. 고양이 자료는 비교적 많은 편이라 다른 자세의 고양이를 그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변상벽의 고양이를 그대로 그린 것은 고양이에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변상벽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자 전통에 대한 연결 때문이었다.
변상벽은 숙종 때 도화서 화원을 지낸 분이다. 도화서에서 오를 수 있는 최고 품계인 종6품인 현감을 지냈다. 고양이와 닭을 잘 그려 변고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고양이를 잘 그렸다.
변상벽의 원본 그림에는 고양이 한마리가 웅크리고 있고 뒤쪽에는 국화가 그려져 있다. 국화는 군자의 꽃이니 군자의 인품으로 장수하기를 축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홍도의 [고양이와 나비] 그림에는 나비를 쫒는 고양이와 바위, 패랭이꽃, 제비꽃이 등장한다.
패랭이꽃은 마디가 있는 꽃이라 중국에서는 석죽화라 불린다. 그러니까 대나무의 마디와 이파리가 비슷하다 하여 군자의 상징이 되었다. 바위는 원래 선비의 지조와 절개를 뜻하지만 여기에서는 그냥 장수의 의미로 사용했다. 또한 제비꽃은 몽우리의 생김새가 여의봉과 같은 지팡이와 비슷해서 '원하는 것을 이루다'라는 뜻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이런 생태적 상징은 보조수단이다. 핵심적인 내용은 문자유희로 전달된다. 실제 김홍도나 변상벽이 생태적 상징을 염두에 두고 그렸는지 아니면 그림을 장식하기 위해 넣었는지는 자세히 살펴봐야 한다. 이를테면 핵심내용을 보조하는데 필요한 상징인지 아니면 단순히 장식을 위한 소재를 후대 사람들이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는 것인지를 말이다.
실제 후대로 내려오면서 그림에 대한 해석은 생태적 상징으로 기우는 경향이 많았다. 이것은 그림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민화와 같은 대중성을 의식해서 세속화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이번 장수축원 그림에는 여러 마리의 나비와 함께 멋진 바위, 국화, 장미, 원추리, 제비꽃을 그렸다. 장미는 회춘, 원추리는 부귀를 뜻하는데 이 그림에서는 상징이 아니라 그냥 장식용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장수축원에 대한 내용을 모르더라도 그림 자체의 완성도가 필요하다. 문자유희를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 보면 그냥 고양이와 나비를 그린 그림으로 볼 것이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으로 보아도 좋을 것이다.
선대의 그림이 수묵담채나 혹은 부분 채색기법을 사용한데 반해 이번 그림은 진하고 선명한 진채방식을 사용했다. 배경은 전통 그대로 밝은 황색으로 처리했다.

문자유희에 따르면 묘접도는 70~80세까지 장수하라는 의미이다. 조선시대에는 평균수명이 40세 전후였다. 70~80세면 평균의 두 배에 이르는 엄청난 수명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100세 시대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그림을 잘못 이해하면 오히려 일찍 죽으라는 것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과거의 전통은 언제나 현재로 재해석하여 수렴되어야 한다. 그래야 영속성을 가진다.
100세 시대라는 말은 보험사나 병원 따위에서 만들어낸 지극히 상업적인 말이다. 병원에서 인공호흡기를 달고 100세를 산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사회활동, 즉 사회적 가치를 만들 수 없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죽은 상태와 다를 바 없다.
실제 그림에서의 장수축원은 생물학적 수명이 아니라 사회적 수명을 뜻하는 것이다.
변상벽과 김홍도의 묘접도에는 국화와 패랭이꽃이 나온다. 국화는 인격적 완성을 뜻하고, 패랭이는 지조와 절개의 상징이다. 다시 말해, 인격적 완성은 사회적 활동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고, 지조와 절개도 치열한 사회활동의 산물이다.
문자 속에 오래 사는 욕망을 감춘 것은 부끄러운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 부끄러움은 바로 노욕(老慾)이다. 노욕은 늙은이의 반사회적이고 반자연적인 욕심일 것이다. 사회적 수명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이런 욕심을 경계하기 위해 국화와 패랭이꽃을 넣었을 것이다.
그런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아름다운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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