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2년 3월 6.15산악회 양주 불곡산 시산제에서 통일의 축원을 올리는 류기진 선생. [사진 - 류경완]

“해방 직후 공산주의 운동의 선구자들이 조국에 들어와 인민위원회와 당을 만드는데, 이런 조건에서 인민들의 분위기라는 건 이루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어요. 식민지 하의 공출과 징역,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아픔을 뒤로 하고 노동운동이 순조롭게 나아갑니다. 조국을 지켜야겠다는 청년들의 기운도 역동하죠. 인민들이 요구 조건을 호소하면 지도자들이 직접 내려와 토론하고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주영하 같은 분은 함경남도 도당위원장을 하며 흥남공장에 나와 있었고, 당 야간학교를 운영하며 노동자를 공부시켰어요. 한번은 정월 대보름에 명보극장에서 대중집회가 있었죠. 내무성에서 도민공동위원회에 대한 해설을 해도 소란하다가 주영하 동지가 들어서니 다들 앞으로 몰려가 쥐 죽은 듯이 경청하는 거예요. 함흥평야에는 큰 지주들이 많았는데, 그 지주들도 주영하 이야기만 들으면 내 토지를 조국에 다 바쳐도 속 시원하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인민들은 이렇게 일치했고, 청년들의 기분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요.” (<노동자의 힘> 기관지 51호 참조)

식민지 농가에서의 출생, 해방공간의 각성, 참전과 빨치산 투쟁, 수형과 전향공작 등 여느 장기수들과 유사한 궤적에서 특이한 선생의 이력은 5.16 쿠데타 정권의 특별조치로 7년여 만에 석방되어 더 큰 감옥 남쪽에서 50년 넘게 살았다는 점이다. 노가다와 두부공장 기술자, 구멍가게와 연탄배달 그리고 40년의 택시 운전으로 이어진 신산한 삶이었다. 그 와중에 부인과 사별하는 아픔을 겪고 재혼해서 세 아들과 손주들을 키우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 2003년 8월 대구 하계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통일기를 들고 응원하는 선생(중간 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 [사진제공 - 유기진]

선생은 ‘죽어서도 영원한’ 인민군 출신임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했다. 장교 교육을 받고 참전했으며, 빨치산 생활을 통해서도 ‘인민군으로서의 긍지와 책임’을 다했다. 중상을 입고 후퇴 명령을 따르다 고립되어 인민군복을 입은 채 붙잡혔다.

전쟁포로에 관한 제네바협정과 정전협정대로였다면 고향과 가족을 북에 두고 살지 않았을 것이다. 포로수용소가 아닌 청주형무소에서 재판도 없이 간수로부터 <특별조치법 31조> 위반으로 10년형을 선고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53년이 지난 2006년, 선생이 재판 판결문 등본을 요청하는 국방민원을 내자 육군본부는 이렇게 회신한다.“판결문 검색시스템 조회 결과 해당 자료가 없음을 회신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2011년 10월 6.15산악회 도봉산 산행에서, 현재 구속되어 있는 범민련남측본부 이규재 의장, 노수희 부의장 등과 함께. [사진 - 류경완]

지난 4월 15일 수유동 자택에서의 긴 인터뷰 마지막,
“남쪽의 자본주의 사회는 종교를 앞세운 돈벌이에 급급합니다. 자본가들의 호화로운 삶 이면에서 빚은 천조 원씩 증가하고 기만적인 선거공약, 복지 축소의 부담은 젊은이들과 노동자에 전가됩니다. 붕괴되는 농촌으로 이민족 문화가 유입되면서 민족 정체성이 훼손되고 도시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노예화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통탄할 일입니다.”

다음 날 세월호가 침몰했다. 304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채, 천안함과 마찬가지로 세월호의 진실 역시 넉 달 동안 차가운 진도 앞바다에 잠겨 있다.

▲ 2000년 8월 송환 비전향장기수 환송의 밤에서. [사진제공 - 유기진]

2000년 9월 2일 북으로 간 1차 송환 장기수 63명 중 세계 최장기수 김선명 선생 등 35명이 그 사이 세상을 떴다. 2001년 2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2차 송환을 주장했던 남쪽의 장기수 33명 중에서도 11분이 돌아가시고 현재 22명만이 생존해 있다.

선생은 2차 송환을 기다린다. 남쪽의 가족들과 함께.
“만일 나를 국민으로 생각했다면 재판도 없이 불법으로 감금한 것에 대해 국가가 사과하고 배상을 해야죠. 인민군으로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북으로 보내줘야 하구요.”

“1세기 동안 우리는 단 한 번도 자주주권국가로 살아본 적이 없다. 나는 후손들을 위해 무엇을 남겨줄 것인가? 그러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통일을 이루어 물려줘야겠다. 주권국가를 이뤄야겠다. 너무나 아름다워 놀랍기만 한 우리나라 강산을 그대로 전해주고 싶다.”(2001년 양심수후원회 역사기행에서)

모두 껴안는 통일을 꿈꾸는 선생. 건강히 북으로 돌아가 가족과 다시 만나고, 꿈에 그리던 고향과 함흥 만세교, 발룡산 벚꽃길을 거닐 날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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