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대 (<디펜스21+> 편집장)


필자가 진행하는 팟캐스트 <진짜안보> 7월 23일분에 2008년 터진 원정화 간첩사건을 직접 취재해 온 월간 <신동아>의 한상진 기자가 출연하였다. 한 때 ‘한국판 마타하리 사건’으로 불린 이 사건을 취재한 한 기자는 올해 <신동아> 4,5,8월호에 연속으로 이 사건이 국가기관에 의해 조작되었음을 밝히는 취재 기사를 내보냈다. 그 끔찍한 내막을 듣고 필자는 감전되었다.

최초에 원정화를 내사한 전 경기도경 보안대장은 “원정화는 국가기관에 의해 만들어진 간첩”이라는 걸 증언했다. 그는 “원정화가 간첩이 아니다”라고 의견을 내자 경찰에서 좌천되고 결국 옷을 벗었다. 그 대신 특정 지역출신, 특정 대학교 인맥이 주요 요직을 싹쓸이하더니 원정화가 간첩으로 돌변했다는 것이다.

원정화가 간첩이 된 최초 증거는 북한 보위부 지도원에게 보냈다는 이메일인데 원정화는 이메일을 다룰 줄 몰라 내사 중이던 경기도경 소속의 경찰관이 한메일 계정을 만들어주었단다. 경찰이 만들어준 이메일로 간첩질을 한다? 그것도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경찰에서 다 알고 있는 이메일로?

더 황당한 건 원정화가 북한에 3차례 잠입하여 공작금을 받고 지령을 수수했다는 건데, 한 기자는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중국에서 북한 들어갈 때 동행했다는 여동생은 이를 부인하고 있고, 신기하게도 원정화가 출소한 이후 여동생 증언과 완벽히 일치하는 중국 내 행적을 이야기한다는 것이다. 한 기자가 직접 중국에 가서 그 여동생을 만나고 북한에 들어간 적 없다는 걸 확인했다.

가장 경악할 대목은 원정화는 자신에게 가해진 간첩 혐의가 기재된 공소장과 판결문 내용을 출소하고서도 몰랐다는 것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우선 조사받을 때마다 검찰은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원정화한테 먹여서 “항상 알딸딸한 상태로 구치소로 되돌아왔다”고 말한다. 그 다음엔 검찰이 불러주는 대로 무조건 인정했으니 재판이 끝나도록 자신이 인정한 혐의내용을 기억조차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 대신 원정화가 똑바로 기억하는 게 있다. “간첩 혐의 인정하면 김현희처럼 살게 해주겠다”는 수사기관의 회유다. 한편 국정원을 비롯한 정부기관은 이런 사실을 보도한 <신동아>에 대해 위협을 느꼈던지 다시 원정화를 동원하여 “나는 간첩이 맞다”고 언론 인터뷰에 내보내고 있다. 김현희가 “나는 테러리스트가 맞다”는 걸 말하기 위해 언론에 갑자기 출현하던 양상과 비슷하다.

그러면 원정화의 진짜 정체는 뭘까? 서푼짜리 정보원이다. 북한 쪽 정보를 얻기 위해 우리 정보기관도 활용하던 일종의 B급 소식통이다. 단지 먹고 살기위해 누구에게라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가련한 탈북 여인이다. 그런 연약한 여자가 장기간 수사기관에 구금되자 100명의 남한 기업인과 탈북자를 북송시킨 거물간첩으로 둔갑했다. 이 때문에 원정화와 가깝게 지내던 국군정보사 장교들까지 간첩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자 “억울하다”고 항변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이 사건은 필자가 접한 공안사건 중에 가장 치졸하고 적나라하게 조작된 사건이다. 너무 지저분해서 이루 필설로 형언하기조차 어렵다. 당시 대통령, 수원지검장, 기무사령관 등이 이에 관련되어 있다.

바로 2008년 촛불시위가 문제였다. 거의 멘붕에 빠진 대통령은 공안대책회의에서 국정원장과 검찰총장을 심하게 질책하며, “내가 몇 번 알아듣게 이야기했다. 저 촛불시위의 배후가 김대중인지, 북한인지 밝혀내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호통 쳤다. 그러자 얼마 후 이 사건이 터졌다.

그런데 여기에 재미를 붙였던지 국정원은 끊임없이 만들어진 간첩을 창조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대부분 조작된 간첩 사건이 가장 취약한 탈북 여성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서울시 유우성 간첩조작사건의 경우 그 여동생인 유가려를 국정원에 장기간 구금하면서 원정화와 유사하게 압박, 회유했다. 이와 또 다른 사건으로 최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에 방영된 “나는 간첩이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탈북 여성의 사연도 마찬가지다.

주로 20~40대 초반 여성을 국정원 합동심문소에 장기간 구금하면서 술을 먹이거나, 가족을 위해하겠다고 협박한다. 그런 다음 “말만 잘 들으면 김현희처럼 살게 해주겠다”는 회유 내용도 똑같다. 여성의 모성애를 자극하면서 때리고 윽박지르고 회유하는 걸 100일 정도 지속하다보면 가련한 탈북 여성들은 버텨내질 못한다. 그러면 법정에 가서 얼마든지 거짓 증언을 하게 된다.

필자는 최근 종편에서 탈북 여성들을 출현시켜 대담 프로를 진행하는 걸 보면 서글퍼진다. 저들은 저렇게 남한에서 북한에 대한 혐오감을 확산시키는 상품이 되었다. 얼마 안 되는 출연료와 감언이설에 저렇게 되어 필요하다면 간첩 그 이상도 된다. 이런 정보기관과 언론은 그 자체로 야만이다.

 

 
14~16대 국회 국방위원회 위원 보좌관

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국방전문위원

전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전 국무총리실 산하 비상기획위원회 혁신기획관

<디펜스21+>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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