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맞아 24일 오후 세월호 범국민대책위 등이 주최한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네 눈물을 기억하라'를 마친 참가자들이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로 행진하던 중 경찰의 저지로 광화문 광장에서 새벽까지 대치했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세월호 참사 100일째 되는 7월 24일 자정이 지나도록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요구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결국 한 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했다.

24일 오후 10시 30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11일째 단식 농성중인 광화문 광장으로, 청와대로 향하던 가족들과 시민들의 행진은 25일 새벽0시를 지나 101일째가 되어서야 광화문 광장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오후 10시 30분 프레스센터 앞 행진하려는 가족 및 시민들과 경찰 대치-10시 51분 경찰 1차 해산 종용방송-10시 59분 실신한 가족 태운 앰뷸런스가 경찰 차벽에 막혀 못나가는 상황 발생-11시 06분 가족과 일부 시민 차벽통과-11시 37분 서울파이낸스센터 빌딩에서 다시 대치-11시 43분 광화문 사거리 '폴리스라인 차단벽'-11시 52분 경찰 차단벽 풀고 올림-11시 58분 가족과 일부 시민 광화문 광장 농성장 진입-25일 0시 광화문 KT앞에서 폭우 속 대치-0시 30분 가족들 연좌농성-02시 이후 까지 계속.

도보로 5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가족과 시민들은 폭우속에 1시간 30분이 걸려 도착해야 했고 이 과정에 가족들의 실신과 시민들의 부상이 속출했다.

경찰은 시민의 교통불편을 운운하며 가족들을 불법집회 참가자로 연행하겠다는 경고방송을 거듭하고 가자지구에 설치됐을 법한 격리벽을 연상케하는 차량부착형의 신형 차단벽을 선보이기도 했다.

▲ 1천500여 명의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새벽 2시를 넘기도록 한치도 비켜서지 않고 청와대로 가겠다는 가족들의 행진을 보장하라고 주장했고, 잠시도 쉬지않고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외쳤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심신이 온전치 않은 가족들중 몇몇은 이미 광화문 광장 농성장으로 들어오기 전에 앰뷸런스로 실려갔고, 입고 있던 우비도 소용없을 만큼 쏟아지는 장대비 앞에서 오한과 극심한 피로를 호소했으나 가족들의 안전은 행진을 함께 한 시민들의 몫이었을 뿐, 경찰은 가족들과 시민들을 분리하고 행진을 막는 일 외에는 관심이 없었다.

1천500여 명의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에서 새벽 2시를 넘기도록 한치도 비켜서지 않고 청와대로 가겠다는 가족들의 행진을 보장하라고 주장했고, 잠시도 쉬지않고 세월호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특별법 제정을 외쳤다.

자신을 원불교 교도라고 밝힌 한 참가자는 "100이라는 숫자는 어떤 한 순환의 완성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101은 새로운 시작이다"라며, 뜨거운 연대의 정신으로 특별법 제정을 위해 가족들과 끝까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통해 지난 100일 동안 보아 온 청와대와 집권 여당은 무능과 무책임을 넘어 파렴치한 모습"이라며, "저들의 새로운 시작이란 안전한 사회를 꿈꾸는 세월호 가족들과 시민들의 배척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 세월호 범국민대책위는 세월호 참사 100일째를 맞는 24일 오후 7시 30분부터 서울광장에서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네 눈물을 기억하라'를 진행했다. 여기에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3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였다.[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이에 앞서, 세월호를 잊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며 특별법 제정을 위한 1천만 서명을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녔고 단식과 농성도 마다하지 않았던 가족 260여 명은 전날 오전 9시 안산 합동분향소를 출발해 광명시와 여의도 국회를 거쳐 지난 100일간 눈물로 걸어온 길을 서울광장에서 잠시 멈추고 시민들과 함께 했다.

24일 오후 7시 30분부터 시작된 '세월호 참사 100일 추모 시낭송 그리고 음악회-네 눈물을 기억하라'가 진행된 서울광장에는 가족들의 호소에 감응한 3만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가족들과 같이 울고 함께 특별법 제정을 외쳤으며, 늦게 온 장맛비마저 잠시 선선한 바람을 보내며 쾌적한 시간을 허락했다.

가수 김장훈 씨는 "오늘의 아픔을 기억하고 다짐하며 이 노래를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가족들을 위로했고 휴대폰 영상으로 남아있는 단원고 이보미 학생의 노래 '거위의 꿈'을 무대위에서 듀엣으로 함께 불러주었고, 이 모습을 본 가족들은 가셔지지 않는 그리움에 애처로운 눈물을 흘렸다.

연극인 류성림 씨는 낭송극 '초혼'을 공연하면서 전광판에 글로 표현되는 아이들의 대사에 호응하면서 "험한 세상에 태어나게 해서, 많이 외롭게 해서, 담배 계속 피워서 미안하다"며 호소력있는 음성으로 참가한 가족들과 시민들의 마음을 울렸다.

전광판에 적히는 아이들이 말이 보이자 여기저기서 숨죽여 흐느끼던 참가자들은 가족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류성림 씨의 낭송이 시작되자 걷잡을 수 없이 오열해 공연이 잠시 멈출 정도였다.

성우 안현서 씨가 도종환 시인의 산문 '엄마'를 낭송하자 가족들은 마치 100일간 억눌렀던 온갖 감정이 되살아나는 듯 통곡했고 함께하던 참가자들은 고개숙여 광장의 잔디만 뜯고 괜히 허공만 쳐다볼 뿐이었다.

잊혀질 것 같은 두려움, 안타깝고 억울하며, 분하고 또 그리운 모든 감정이 한 순간 폭발한, 자식잃은 어미의 몸부림이었다.

▲ 김병권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앞으로 "특별법 제정을 위한 1천만 서명운동을 계속하고, 국회·광화문 농성과 단식은 계속하지만 다른 실천활동을 위해 위원장 등 몇몇은 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성실 씨는 아들 동혁 군이 마지막 문자메시지에서 "내 동생 어떻게 하지"라며 걱정했던 그 여동생과 함께 무대에 올라 "너희들 영정사진들고 1박2일동안 행진하는 걸 너와 네 친구들이 안쓰러워할 것 같아 이런 상황이 씁쓸하다"며, "그래도 서명, 도보행진, 단식, 집회에 참여하면서 진심어린 국민의 관심과 애정을 보고 있다"고 참가 시민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김 씨는 아들에게 다짐하듯 "자책감에 죄스러워하지만은 않겠다. 너희들과 우리의 고통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당당하게 말했지만 "보고싶고 그립다"며 끝내 울음을 터뜨려 안타까움을 더했다.

김병권 세월호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 대책위원회 위원장(고 김빛나라 양 아버지)는 "1박2일간 50km를 걸어 이곳까지 왔다"며 "이 고통을 견디는 이유는 사랑하는 아이가 왜 죽었는지 알기 위해서"라고 강조했다.

김병권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위해 350만 명이 서명을 해주었지만 아직 성과가 없다. 단식도 11일 진행했다.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면서 "고통스럽지만 더 힘을 내겠다. 그래서 반드시 진실을 규명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특별법 제정을 위한 1천만 서명운동을 계속하고, 국회·광화문 농성과 단식은 계속하지만 다른 실천활동을 위해 위원장 등 몇몇은 해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무대에 오른 '자전거 탄 풍경'은 "하고 싶은 네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잘 살기보다는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했던 아빠가 미안하다"고 노래했으며, 가수 이승환 씨는 "그렇게 잊어버리면 산 사람들의 세상은 안전하겠는가. 네 눈물, 네 웃음, 네 꿈을 결코 잊지 않겠다고,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자"라며 온몸으로 위로와 희망을 열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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