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


북한은 7월 7일 ‘공화국 성명’ 형식을 빌어 오는 9월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하였다. 이번 성명은 김정은체제만이 아니라 대남관계에서는 처음으로 국가를 대표해 발표하는 최고 수준의 ‘공화국 정부성명’ 형식을 취한 점이나, 날짜를 김일성 주석 사망 20주기 전날이자 그가 남북정상회담 개최에 서명했다는 7월 7일을 기해 발표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여러 대남성명과는 무게와 의미가 남다르다.

7.7성명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

이 성명에서 북한은 “현시기 민족 앞에 가로놓인 난국을 타개하고 북남관계를 개선하며 자주통일의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열어 나가기 위해 ① 무모한 적대와 대결상태 종식, ② 외세의존 반대와 우리 민족끼리 해결 원칙, ③ 온 겨레가 지지하고 민족의 공동번영을 담보하는 합리적인 통일방안 지향, ④ 관계개선 분위기 조성 등 4개항의 입장을 천명하였다. 그리고 “당면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고 민족 단합의 분위기를 마련하기 위해 남조선의 인천에서 진행되는 제17차 아시아경기대회에 우리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하였다”면서, “우리의 이번 성의있는 조치는 냉각된 북남관계를 민족적 화해의 열기로 녹이고 전체 조선 민족의 통일의지를 내외에 과시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실 이 성명에서 북한이 천명한 4개항 입장은 북한이 일관되게 주장해왔던 대남요구이기도 하지만, 우리 정부 당국자의 주장대로 이는 북한의 되풀이된 ‘일방적’ 주장이기도 하다. 특히 “핵이 통일이나 남북관계 개선의 걸림돌이 아니고, 오히려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한다”는 북한의 주장은 남쪽 민간의 입장에서도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려운 주장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가 이 성명에서 주목할 사항은 북한 주장의 일방성이나 비합리성이 아니다. 주목할 것은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한 북한 입장의 진정성과 그를 위해 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구체적 행동이다. 더구나 이번 성명은 NPT(핵무기비확산조약) 탈퇴 등 중대사안일 경우에만 발표하던 ‘공화국 정부성명’의 형식을 취하고 있어 이 성명에 대한 북한의 의지와 진정성은 예사로 보기 어렵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 조선총련의 기관지 <조선신보>가 이번 공화국 성명에 대해 동북아의 질서재편을 염두에 두고 북남관계 개선을 호소한 것으로 매우 괄목할 만하고 진실성이 있다고 해석한 것도 으레 하는 말이 아니라고 봐야 한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응원단을 파견하겠다는 북한의 행동과 그 행동에 담긴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높이 평가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성의 있는’ 행동 앞에 언급한 4개항의 원칙적 입장은 현재로서는 ‘북한의 입장’일 뿐이고, 이는 남북이 만나서 상호 협의하고 조율해나가야 할 문제들이지 당장 시비를 가리자고 덤빌 문제가 아니다.

남북관계의 변곡점이 될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은 그동안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문제와 관련해서는 기본적으로 남측 정부의 태도를 보아가며 결정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특히 응원단 파견문제는 남측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의지를 보며 판단하겠다는 입장이 분명하였다. 이는 한미합동군사훈련과 같은 정치군사 문제 외에도, 북측 응원단에 대한 신변안전과 편의 제공 문제, 과거의 인공기 게양 논란이나 반북시위와 인공기 소각행위 등의 유사 사례 발생가능성과 이에 대한 우리 정부의 통제 의지, 그리고 아시안게임 폐막일이기도 한 10.4선언 발표 7주년의 남북공동기념행사 추진 문제 등 여러 가지 고려사항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북한은 이번 공화국 성명 발표를 통해 그간 남측 정부의 태도를 지켜보던 소극적 자세에서 벗어나 이러저러한 우려사항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선제적 행동에 나서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변화가 우리 정부의 대북압박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북한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점이다. 북한의 이런 변화는 아마도 최근 부분적으로 재개된 민간 접촉, 특히 용정에서의 문익환 목사 남북공동회고모임이나 개성에서의 겨레말큰사전과 겨레의숲 실무접촉 등에서의 남북간 논의가 매우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 분명하다.

이제 인천 아시안게임은 박근혜정부 시기 남북관계의 수준을 전반적으로 규정하는 가장 중대한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 분명해졌다. 그러나 이번 북측 공화국 성명과 관련된 우리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경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정부는 이번 공화국 성명을 기본적으로 “북한이 자신의 일방적인 주장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다만 인천 아시안게임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한다는 입장에서 “북한의 선수단, 그리고 응원단 참여에 필요한 사항을 국제관례에 따라서 준비”하겠다는 것이다. 또 남북단일팀, 남북 공동입장, 공동응원에 대해서도 남남갈등 등을 우려하여 부정적 입장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말해서 응원단 보내는 것은 아시안게임 성공에 도움이 되니 수용하지만, 그렇다고 ‘국제관례’ 이상의 기대나 요구는 하지 말고, 북측 응원 왔으니 그것만 하고 가라는 이야기라고 보인다. 즉 응원단 파견을 남북관계 개선의 ‘성의있는 조치’로 인정하기보다 아시안게임 성공의 요소로만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참으로 옹졸한 태도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북측이 응원단을 파견하기로 하였다고 하면, 우리 정부 역시 그에 맞게 이 기회가 남북관계 개선의 계기가 되도록 성의 있는 조처를 취하겠다고 답하면 되는 일이 아닌가?

우리 정부에 대한 기대

어쨌거나 정부는 이번 북측의 응원단 파견 결정과 관련하여 이를 남북관계 개선과 긴장완화의 계기로 삼기 위해 몇 가지 조처를 적극 검토해야 할 것이다.

우선 정부는 기존의 지자체 대북접촉 금지를 해제하여 남북체육위원회와 별도로 인천시와 북한이 선수단 및 응원단 파견에 따른 편의 제공, 공동응원과 예술공연 등 부대행사 추진 등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길을 열어야 한다.

또한 정부는 아시안게임에서의 남북 공동응원을 적절한 수준에서 허용, 지원해야 한다. 남북 단일팀은 물리적으로 어렵고, 또 남북 공동입장도 남북이 정치적으로 협의할 문제이니 당장 결정하기는 어려운 문제이다. 물론 남북이 하나의 공동응원단을 구성하는 것도 현재로서는 불가능한 일이고, 또 동일한 응원레퍼토리를 연습할 시간도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공동응원 역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남측에서 별도의 민간 공동응원단을 조직하여 지정된 몇 개의 경기에 북측 응원단과 함께 하나의 공간에서 응원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는 정부와 인천시가 행정적 편의와 지원만 제공하면 되는 일이다. 공동응원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아시안게임을 아시아 평화의 축제만이 아니라 민족화해의 축제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와 세계를 상대로 남북이 공동으로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 더한 평화의 메시지, 민족화해의 메시지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정부는 아시안게임 폐막일인 10월 4일이 10.4선언 발표 7주년인 점을 고려하여 북측이 참가하는 인천에서의 10.4선언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전향적으로 허용해야 할 것이다. 북측 대표단이 응원단 등과 함께 인천에 내려와 있는 조건에서 10.4남북공동기념행사를 못하게 하는 것은 모처럼 조성된 남북화해의 계기를 다시 남북 갈등의 장으로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6.15선언과 10.4선언을 존중한다는 정부의 입장이 분명하다면 10.4선언 기념 남북공동행사를 굳이 막아야 할 이유가 없다. 북측 대표단의 신변안전과 남측 내부의 갈등 등을 고려하여 행사의 수준과 규모는 얼마든지 협의, 조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북한의 응원단 파견 결정을 계기로 민간 차원에서는 공동응원단 조직만이 아니라 전국의 주요 지역별로 남과 북의 경기를 응원하는 ‘민족화해 가두응원’을 조직하여 아시안게임을 통해 이루어지는 민족화해의 기운을 전국적 차원으로 확산시켜나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남북 사이의 실질적인 화해분위기 조성은 민간의 절제되고 성숙한 남북 공동응원, 그리고 10.4 남북공동 기념행사 추진 등을 통해 더욱 확대되어나갈 것이다. 물론 이는 정부가 ‘배제와 제한’을 넘어서는 민간과의 새로운 관계 정립에 나서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서의 성공적인 민족화해의 실험은 광복 70년인 2015년의 남북관계를 다시 제2의 6.15통일시대로 만들어가는 중요한 시발점이 될 것이다. 정부가 소리(小利)에만 얽매여 이번 북측 응원단 파견을 아시안게임 흥행 성공에만 활용할 것이 아니라, 이를 남북관계 개선의 큰 기회로 만들어가는 대범한 국면운용술을 보여주기를 우리는 진심으로 기대한다.


 
이승환은 1958년 경북 포항에 태어나, 고려대 경제학과, 경남대 북한대학원(정치학 석사)을 거쳐 경남대 대학원 정치외교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승환은 통일맞이 정책위원장, 열린정책연구원 정치아카데미 소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시민평화포럼 공동대표이며, 또한 민화협 집행위원장,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지난 15년여에 걸쳐 남북 민간교류 활동을 전개해왔으며,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6.15남북공동행사 등을 진행해왔다.

그가 쓴 글로는 “문익환, 김일성 주석을 설득하다”(창작과비평, 통권 143호, 2009), “6월항쟁 20년,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변화와 통일담론”(창작과비평, 통권 137호, 2008), “2000년 이후 대북정책담론 연구”(북한대학원, 2008) 등이 있다.

개인 블로그 http://blog.naver.com/lsh2k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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