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풀뿌리 통일운동을 본격화하기 위한 AOK(Action for One Korea, 나라 안팎의 동포들이 함께 해나가는 풀뿌리 시민운동) 지역순회 강연을 위해 6월 6일 거창을 찾았다. 지역공동체에 기반을 둔 글로벌 시민운동을 한국에 시작하기 위해 나주에 이어 두 번째로 찾은 곳이었다.

해외 NGO 운동이 궁금한 거창 사람들

작년에 ‘함께하는 거창’ 시민단체에서 AOK의 글로벌액션(지구촌통일한마당, 정전 60주년을 기해 AOK가 기획한 행사로 세계 10개 지역을 구글화상회의로 실시간 연결하여 통일 염원을 묶어냄) 행사에 참여해 준 적이 있어, 거창은 더욱 반가운 곳이었다. 이번 일정을 위해 행사를 주관하게 될 심규환 회원에게 듣자니, 거창의 시민단체 사람들은 ‘해외NGO 운동’에 대해 듣고 싶다고 한다.

▲ 거창시민들과의 반갑고도 유쾌한 만남이 강연을 통해 이루어졌다. [자료사진 - 정연진]

해외의 NGO 운동이 궁금하다는 것은 거창 내에서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스스로 시민단체 활동이 활발해야, ‘우리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 해외에서는 어떠한 활동을 하고 있을지’ 자연스레 관심이 가지 않겠는가. 인구 4만 정도인 소도읍. 자신이 사는 고장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동서분주하는 아름답고 씩씩한 사람들. 거창 사람들과의 특별하고도 유쾌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심규환 회원이 운영하는 읍내 ‘수 학원’에서 열린 AOK 강연에는 역시나 대부분 거창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분들이 참석하셨다. ‘함께하는 거창,’ ‘생태환경 보전을 위한 시민모임인 ‘푸른산내들,’ ‘행동하는 언론 소비자 연대’ 등 지역의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는 분들이다.

▲ 일정을 주관한 심규환 AOK 회원이 연사소개를 하고 있다. 강연장으로 활용된 학원 내부가 산뜻하고 세련된 색상이다. [자료사진 - 정연진]

▲ AOK 통일박수를 치며 즐거워하는 참석자들 [자료사진 - 정연진]

분위기를 풀기위해 ‘통일박수’부터 시작했다. 통일박수는 작년에 LA 의 한 웃음치료 세미나에서 배웠던 건강박수에서 착안한 것이다. ‘하루 15초동안 크게 웃으며 박수치면 평균 수명이 이틀 연장된다’는 웃음치료 강사의 말에 조금 더 보태서 “우리 통일시대로 가기 위해서 하루 15초씩 크게 웃으며 박수칩시다. 왜냐하면 수명이 연장됩니다. 우리 생애 내에 통일을 이루기 위해 우리 모두 건강히 오래 살아야 하니까요”라고 AOK 방식으로 발전시킨 것이다. 박수치기를 함께 해보면 그 조직이 평소에 얼마나 유대가 끈끈한지, 또한 회원들 간에 어느 정도의 소통이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거창의 참석자들, 역시나 열정적으로 통일박수를 치신다. “우리들 손으로 통일을 이루고 통일나라를 보려면 모두가 건강하고 오래 살아야죠. 하루에 이 박수를 몇 번씩 해서 수명이 계속 연장되다보면, 그럼 영생을 얻을지도 몰라요. 그렇게 되면 교회를 다닐 필요가 없어질지도 모르니 목사님들은 긴장하셔야 합니다”하는 나의 넉살에 웃음바다가 되면서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

▲ 분단시대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거시적으로 역사를 보는 시각부터 기르자. 거창의 참석자들에게 강연하고 있는 필자. [사진 - 심규환]

통일을 생각하기 앞서 분단시대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거시적으로 역사를 보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내 말에 모두들 귀를 기울이신다. “통일신라-발해가 존재했던 시대를 ‘제1 남북국시대’로 봅시다. 현재 남한 북한 대립시기를 제2의 남북국 시대라 볼 수 있겠습니다. 제1 남북국시대는 260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자, 제2의 남북국시대는 얼마나 오래 지속될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앞으로 분단시대를 몇 년 안에 끝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나의 질문에 가장 많은 대답은 ‘5년에서 10년사이’였다. 역시 시민운동을 활발하게 벌이는 거창 시민답게 사고방식이 매우 긍정적이다. 분단시대가 그리 오래 가지 않으리라는 믿음, 바로 그것이 하나의 코리아를 이루기 위한 출발점이다.

하나의 코리아를 위해 동서가 융합되다

거창으로 향할 때 나주에서 거창으로 가야했는데 막상 교통편이 문제였다. 당연히 시외버스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시외버스 노선이 없다는 말에, “아니 나주서 거창까지 버스가 없다니, 이럴 수가...” 믿기지가 않았다.나주의 홍양현님에서 다시 한번 알아봐 달라고 하니, 정말로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광주에서 거창 가는 버스가 하루에 단 한 편 오전에 있다고... ‘세상에.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들이 평소에 얼마나 왕래가 없으면 시외버스 노선이 하나도 없다니.’
어디가나 짐을 많이 달고 다니는 내가 딱해 보였던지 나주의 홍양현씨가 마음씨 좋게도 차를 렌트해서 같이 가주기로 했다. 마침 양현씨 이외에도 3분이 동행하게 되었는데 나주에서 거창까지 동행한 4분 중에서 세 사람은 거창에는 ‘난생 처음’ 와본다는 것이다. 거창은 경상과 전라의 경계에 있는데도... 정말이지 경상과 전라는 서로 교류가 없나보다. 아, 멀고먼 경상과 전라여.

▲ 거창의 뒷풀이. 잔칫집이라는 한식집에서 식사후 정연탁님의 집 마당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하고 있다. 환상적인 뒷풀이는 잊히지 않을 것 같다. [사진 - 정연탁]

그런데 정말 기쁜 일이 일어났다. AOK 통일강연 때문에 나주 사람들과 거창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게 된 것이다. 생전 처음 거창을 방문하는 나주 분들 이야기를 거창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흐뭇하게 들어주었고, 강연장에서도 뒤풀이에서도 화기애애하게 함께 어울렸다.

뒤풀이에서는 세월호 추모집회에서 노래한 ‘가수’ 실력을 가진 분이 ‘아침이슬’을 통기타치며 불렀는데, 풀잎냄새가 싱그러운 초여름 밤, 함께 따라부르던 아침 이슬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거창의 주최측은 나주분들에게 하루 묵고 가시라 권했고 나주 분들은 거절하지 않으셨다. 그렇구 말구. 얼그렁, 설그렁 우리는 그렇게 서로 얽히고 설켜 어울려 살아야한다. 동서 갈등, 남남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서는 하나의 코리아도 있을 수 없을테니 말이다.

▲ 정연탁님 집 뒷풀이에서. 안주인의 빼어난 감각을 볼 수 있다. 후식용 포크를 옥잠화 이파리 위에 놓여있다. [사진 - 정연진]

▲ AOK 강연 참석자들이 통일손수건을 펼치고 활짝 웃고 있다. 바로 뒤이어 이어진 촛불집회를 준비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빠져서 아쉽다. 나주에서 나와 동행한 분들도 함박웃음을 웃으며 동참했다. [자료사진 - 정연진]

민간인 학살,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내딛고

거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한국전쟁 중에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 문제이다. 1951년 국군 11사단에 의해 저질러진 무차별한 학살은 보도연맹학살사건, 국민방위군사건과 함께 제 나라 군대의 총탄에 의해 수많은 민간인이 억울한 죽음을 당한 현대사의 아픈 상처이다.

거창에서는 얼마나 희생되었을까. 공비로 오해받은 사람들, 아니 공비와는 내통이 없는데도 일단 빨치산 출몰지역 민간인들은 군군에 의해 적으로 간주되었고 이들은 피난가는 것을 도와준다는 군인들 말에 속아 산속으로 끌려갔고 영문도 모른 채 무참히 살해되었다. 어린 아이와 여자들이 많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희생자만 700여명이 넘지만 사실 정확한 희생자 숫자를 어찌 알 수 있을까.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인간의 존엄성이 제 나라 군인들 총칼에 참혹하게 희생된 끔찍한 기억. 피붙이, 친구, 친척들이 그렇게 희생된 기억을 가슴에 묻고서 거창 사람들은 절망으로 가득찬 긴 세월을 어떻게 버티어냈을까.

십만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이 살해된 보도연맹사건에 비해 피해자의 규모는 훨씬 작지만 그래도 거창의 민간인학살이 유명한 까닭은 진실을 끝까지 밝혀내겠다는 올곧은 의지를 가지고 부당한 권력과 싸워온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으리라.

▲ 거창의 촛불집회는 마지막 한 명의 희생자를 되찾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 한다. [사진 - 정연탁]

현대사의 아픈 상처를 내딛고 밝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씩씩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 현재 거창에는 시민운동이 활발하다. 세월호 추모 집회도 다른 곳에서는 일찌감치 판을 거두었는데, 거창에서는 현재도 줄기차게 지속되고 있다. 마지막 단 한 명의 희생자를 거둘 때까지 매일 매일 계속하겠다는 의지이다.

▲ 2014년 6월 6일 내가 참석했던 거창에서의 세월호참사 추모집회 [사진 - 정연진]

꺼지지 않는 거창의 촛불, 이제 횃불을 꿈꾸어라

촛불은 전국 여기저기에서 시민들이 참여해야할 현안 문제가 있을 때 타오른다. 그러나 촛불은 쉽게 꺼지기도 한다. 이 시대를 밝히고는 사라지는 촛불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촛불이 이 시대를 이끄는 횃불로 커나갈 수 있을 것인가.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촛불에 시대정신을 담아내야한다.

▲ 거창사람들에게 AOK의 취지와 로고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 - 정연탁]

거창 사람들에게 AOK 의 로고를 설명할 때, ‘횃불을 닮은 나무’라고 소개했다. AOK는 당장 남북한이 악수하고 통일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풀뿌리시민이 주인이 되어 통일시대를 준비해나가자는 것이다. “통일시대는 시대를 밝히는 횃불 정신을 가지고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조급해 하지 말고 나무를 가꾸는 심정으로 한 걸음 한 걸음 함께 가야 합니다”하고 강조한다. 통일의 미래를 여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의 시대정신 아닐까.

그러나 절박한 이 시대의 과제이지만 당장 내 눈 앞에 달콤한 열매를 바라는 성급함이 아니라, 꽃피고 열매 맺을 날을 상상하며 씨를 심고 가꾸면서 우리의 땀과 노고를 땅에 묻어야 한다. 씨를 심는 것은 오늘의 나이지만 그 열매를 수확하는 것은 다음 세대가 될 것이라는 느긋함으로... 예전에 교과서에서 한국인의 덕목으로 배웠던 ‘은근과 끈기’ 지금은 웬만해서는 한국인들에게 찾을 수 없는 바로 그 은근과 끈기가 오늘날의 한국인들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 나주에서 거창으로 떠나는 길에 무등산이 차창너머 보인다. 희망의 햇살도 보인다. [사진 - 정연진]

아픈 역사의 상처를 딛고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본 사람들은 안다. 촛불이 언젠가는 시대를 밝히고 이끄는 횃불이 될 수 있으리라는 것을.

풀뿌리 시민들의 열망과 소망, 그들의 끈기와 지순함을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내어 우리들의 가슴 벅찬 미래, 통일시대로 나아가자. 시대정신을 촛불에 담아내어 그것을 키워갈 수 있다면 가능할 것이다. 어둠 속에서 빛을 밝히는 그대들이여, 함께 손잡고 걸어가자. 빛이 우리들에게 통일시대로 나아가는 희망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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