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가 끝난 지 나흘이 지나고 있지만 여·야와 정치권 모두가 그 평가를 둘러싸고 아직 설왕설래하다. 그만큼 승패를 따지기가 어렵다는 의미일 수 있다. 사실 단순 지표만 봐도 우열을 따지기가 쉽지 않다. 광역단체장 선거의 경우 총 17곳에서 새누리당이 8곳, 새정치민주연합이 9곳을 이겼다. 기초단체장 선거에서는 새누리당이 117곳을 차지했고 새정치민주연합은 80곳을 얻었다. 그런데 교육감 선거는 보수 대 진보 성향의 후보가 4 대 13으로 나타났다. 광역은 엇비슷했고, 기초는 여당 그리고 교육감은 진보가 우세했다. 전체적으로 봐 여·야 어디도 이겼다고 말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서는 ‘적절한 균형’이니 ‘절묘한 황금분할’이니 하는 평가가 나온다. 한마디로 ‘무승부’란 것이다. 과연 그럴까?

먼저, 새정치민주연합은 이기지 못했다. 호남권을 석권하고 서울·강원을 지킨 가운데 충청 4곳을 모두 승리했다. 그러나 경기와 인천에서 패배해 민심의 풍향계라 할 수 있는 수도권에서는 새누리당에 밀렸다. 그런데 승패의 문제를 떠나 가장 뼈아픈 부분은 국민으로부터 수권정당으로서 더 이상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투표율이 이를 반증한다. 이번 선거에서는 세월호 참사로 현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와 함께 유권자의 정권심판론이 비등했다. 이제 투표율 제고는 야당의 몫이엇다. 투표율 60%대를 기대했다. 그러기 위해선 유권자가 심판장인 투표소로 향해야 했다. 그런데 투표율은 56.8%에 머물렀다. 사전투표제가 실시됐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치에 훨씬 못 미쳤다. 이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유권자를 견인할 힘이 없었다는 것이다. 선거란 지지층 확보만이 아니라 그 지지층을 투표장에 오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유권자는 현 정부를 심판하고 싶어도 그 반대당이 대안세력이 되지 못하기에 멈칫한 것으로 봐야 한다.

아쉽게도, 진보정당은 존재감이 없었다. 세월호 참사와 유세 기간 중에도 진보의 가치가 요구됐지만 목소리는 불명확했고 국민은 외면했다. 이번 선거에서 진보의 기치를 내걸고 참여한 정당은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등이다. 그런데 진보정당은, 특히 2012년 통합진보당 사태와 그로 인한 분당, 2013년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과 통합진보당 해산 문제 등을 거치면서 고립화·주변화됐다. 이번 선거에서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진보정치는 초토화됐다. 인천과 울산의 진보구청장들은 모두 재선에 실패했고, 녹색당의 과천 첫 시장 도전도 한계에 부닥쳤다. 선거경쟁에 뛰어든 이들 진보정당은 유권자들에게 의미 있는 세력은커녕 존재감마저 부정됐다. 특히, 통합진보당은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후보자가 대의를 품고 사퇴를 해도 여론으로부터 선거보조금 ‘먹튀’ 논란과 함께 ‘야합’ 소릴 들어야 했다.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지 못할 경우 진보정당 수난사는 계속될 전망이다.

물론, 새누리당은 선방했다. 그렇다고 면죄부를 받은 건 아니다. 새누리당은 영남권을 방어한 가운데 경기를 사수했고, 인천을 탈환했다. 하지만 둘 다 아주 박빙이었다. 그러나 아성이라 할 수 있는 충청과 강원에서 패했고 무엇보다 같은 진영이라 할 보수 교육감들이 대패했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로 인한 선거 참패의 악몽에서 깨어났다고 회심의 미소를 짓는 건 자해행위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참사 후 국민의 안전보다 정권의 안전을 지키기에 급급했다. 유가족과 국민의 눈물은 아랑곳없이 대통령의 눈물을 닦아주자고 강변했다. 선거 후에도 이러한 행태가 나와선 안 된다. 야당이 세월호 참사로 인해 국민들의 정권심판론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면, 여당 역시 정권심판론도 가져가지 못할 정도로 무능하고 매력 없는 야당으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은 셈이다. 이제 정부·여당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을 어떻게 국가정책에 담을지 관건이다. 아울러 국무총리를 비롯한 개각과 청와대 참모진 개편에 눈길이 쏠린다. 인사 개편의 핵심에 있는 김기춘 비서실장의 거취가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올해 초만 해도 이번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일찍이 여당의 우세가 점쳐졌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60%를 넘어 고공행진을 하고 있었고, 당 지지도에서도 새누리당이 새정치민주연합을 월등히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선거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권심판론이 힘을 얻으면서 우세 축이 야당 쪽으로 기우는 듯했고, 여기에 지방선거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속설도 작용하는 듯했다. 그런데 선거 결과는 여·야가 비슷했다. 표심은 여·야 어느 쪽도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를 두고 비겼다고 하거나 그래서 지지 않았다고 우긴다면, 큰 오판이다. 표심의 본질은 여·야 정치권 모두에게 패배를 안겨준 것으로 봐야 한다. 어느 정당도 이기지 못했기에 패한 것이다. 패배했기에 모두가 겸허하게 성찰의 시기로 들어가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대안세력으로서 야성을 회복하고 진보정당은 뼈를 깎는 각성으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정권을 쥐고 있는 정부·여당이 중요하다. 세월호 실종자가 아직 바닷물 속에 있기에 참사는 끝나지 않았고 정권심판론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선거는 끝났지만 박근혜 정부가 선거 전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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